욕망의 공허함 '데블 인사이드'
1997년 미국에서 초연된 연극 <데블 인사이드>가 국내 관객과의 첫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초연 당시 기괴한 블랙 코미디로 평가받았던 <데블 인사이드>는 2006년 브로드웨이 연극 <래빗 홀>로 퓰리처상을 거머쥐면서 유명해진 미국 작가 데이비드 린지 어베이르(David Lidsay-Abaire)의 등단작이다. <데블 인사이드>의 국내 제작은 관객들에게 신뢰를 쌓아 온 극단 맨씨어터가 맡았다. 극단 맨씨어터는 전작 <프로즌>으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낸 김광보 연출과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확고한 색깔의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욕망의 허무함을 그리는 <데블 인사이드>는 올여름 관객들에게 어떤 질문과 해답을 던질까.
현실과 환상 사이의 기괴한 이야기
<데블 인사이드>는 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진은 엄마 슬레이터 부인이 운영하는 세탁소 일을 도와주면서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다. 진이 등장하는 첫 장면 역시 늦잠을 자 수업에 늦을까 허둥대는, 그다지 도드라질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펼쳐지는데, 하나 특별한 게 있다면 오늘이 바로 그의 스물한 번째 생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 조금 특별한 날에 진은 엄마에게 잔혹한 고백을 듣게 된다. “아들아, 네 아버지는 살해당했단다. 등을 흉기에 찔리고, 발은 잘린 채 배수로에 버려져 있었어.” 진은 지난 14년 동안 줄곧 아빠가 심장마비로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진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슬레이터 부인의 당부다. “심장마비라고 한 건 네가 나쁜 꿈을 꾸지 않을까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진실을 말하려고 14년을 기다려 왔어. 이제 너도 스물한 살이야. 어엿한 남자가 된 거지. 아버지의 복수를 해줬으면 한다.”
이런 내용대로라면 앞으로 잔혹 복수극이 전개될 것 같지만, 뒤이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진이 지하철에서 마주친 같은 반 학생 케이틀린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믿을 수 없는 비극의 진실을 알게 된 진은 평소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케이틀린에게 온 정신을 쏟으려고 하는데, 불행히도 케이틀린은 그녀가 수강 중인 러시아 문학 담당 교수에게 빠져있고 이야기는 다시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우연으로 얽히고 설킨 관계
<데블 인사이드>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여섯 명이다. 스물한 번째 생일에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알게 되는 진, 자신의 남편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고된 삶을 버텨온 슬레이터 부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에 빠져 사는 러시아 문학 교수 칼, 흠모하는 대상을 향해 집착에 가까운 애착을 보이는 케이틀린, 스스로 특별할 게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철물점 주인 브래드, 베일에 싸인 의문투성이 화가 릴리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여섯 명은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해 분리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과거와 현재의 삶 속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진은 같은 러시아 문학 수업을 듣는 케이틀린에게 호감을 품고 있고, 케이틀린은 문학 교수인 칼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느낀다. 칼은 자신과 관련 없는 브래드를 살인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칼과 관련이 있는 릴리는 어쩌다 브래드의 집에 잠시 머무는 중이다. 고장 난 나침반을 고치기 위해 브래드의 철물점을 방문한 슬레이터 부인은 그곳에서 릴리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공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이들 모두 14년 전에 벌어진 광기 어린 살인 사건에 얽혀 있는 관계라는 것이 드러난다. 김광보 연출은 어이없는 우연과 필연으로 묶여있는 <데블 인사이드>의 주인공들은 욕망, 또는 집착이라는 연결 고리로 엮인 인물들이라고 설명한다. 욕망과 집착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별 무리 없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음에도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서 오직 그것이 있어야만 불행한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집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전하는 게 이번 공연의 연출 포인트. 나아가 관객들에게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반추하게 하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MINI INTERVIEW 김광보 연출
한국 공연 각색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1997년에 쓰인 작품이다 보니 이야기의 바탕에 밀레니엄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 하지만 세기말을 무난히 넘긴 현재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각색한 부분은 없다.
스릴러, 공포, 코미디가 혼재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어떤 컨셉의 연출을 할 것인가.
<데블 인사이드>는 줄거리 자체에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고 작품 전반에 실체 없는 공포가 깔려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미디라 생각하고 접근하고 있다. 뭔가에 깜짝 놀라고 나서 스스로 어이없어 나오는 웃음, 등장인물들은 더없이 진지한데 그 난장판이 우스워서 나오는 웃음, 그리고 과장된 상황들이 주는 웃음 등 한마디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웃음이 나오도록 유도할 생각이다. 우리끼리는 변태 연극이라고 하는데, 아마 정말 희한한 연극이 다 있구나 싶을 거다.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가장 힌트가 되는 인물이 있다면?
<데블 인사이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인물은 ‘진’이다. 진은 운명의 굴레 속에 존재하지만, 그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순진한 인물이다. 관객들이 가장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 가장 현실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라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 나간다. 불행하든 행복하든 삶은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수행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무대 세트에 대한 팁을 준다면.
무대 세트는 작품 구상에서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이다. 대본에 영화적인 기법이 많이 쓰인 데다 짧게 이어진 장면들이 빠르게 전환돼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줬다. 배우들이 등퇴장을 할 때,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만화처럼 차원 이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낼 것이다. 또 무대를 분할해 사용하지만, 기존의 작품들처럼 배우들이 약속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글 배경희, 사진제공 극단 맨씨어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