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월 매출 5천 골인한 청년 “축구화 벗고 장사에 목숨 걸었죠”
불타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부자(父子)가 있다. 오로지 열정과 끈기만으로, 노량진에서 시작해 중랑구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역전우동 망우역점·노량진점 박준영(27), 박강용(54) 점주다. 매장에 들어서자, 이들 부자는 선하면서도 굳은 의지를 담은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 왔다.
저희는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매장에서만큼은 철저하게‘비즈니스 패밀리’가 된답니다. (박준영 점주)
두 점주는 2018년 12월 역전우동 노량진점을 양수받아 운영을 시작했고, 성업 끝에 2020년 3월 동일 브랜드 매장을 망우역에 오픈하여 이끌어오고 있다. 역전우동 노량진점이 부자의 합작품이라면, 망우역점은 박준영 점주의 독립 운영이라는 야망이 깃든 두 번째 터전인 셈이다.
“두 매장 최고 매출은 월 1억이 넘어요. 특히 코로나 이후 배달 매출이 많이 올랐죠. 역전우동 브랜드에서 저희 지점이 전국 배달 매출 상위권을 기록하는 중입니다.”(박준영 점주)
사뭇 진지한 얼굴로 주방을 지휘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들 부자는 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근처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역전우동 노량진점 박강용 점주(왼쪽), 망우역점 박준영 점주(오른쪽)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촬영하였습니다.) |
◇ 12년간 축구화 신던 ‘축구 엘리트 아들’과 ‘매니저 아버지’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예전부터 박강용 점주에게 아들 박준영 점주는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그가 자랑스레 내보인 사진에는 과거, 박준영 점주가 축구 유망주로서 구장을 활기차게 누비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9살 때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내 밑에서 축구 한 번 안 해볼래?’ 하셨죠. 처음엔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계속 저를 스카우트하러 오셨어요. 그분이 지금 저의 큰 스승이시죠. 그분과는 요즘에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어요.”(박준영 점주)
어려서부터 의지가 남달랐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작정 ‘축구 시켜달라’며 떼를 썼다고 한다. 당시 중견 규모 IT 사업체를 운영하던 박강용 점주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아들의 ‘매니저’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박준영 점주는 구리부양초, 중앙대 부속중학교, 백암고등학교, 제주국제대학교 대표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며 축구 유망주로 활약했다. 그가 발목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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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축구에 올인했어요. 아버지는 제게 올인하셨죠. 제게 확신이 있으셨거든요. ‘얘는 무조건 된다’ 싶으셨나 봐요.”(박준영 점주)
“정말로 잘했어요. 아들이 끈기도 있고, 무엇보다 축구에 소질이 넘쳤으니까요. 그런데 발목을 다치면서 더는 축구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중, 고등학교 때 입은 부상이 그만 덧나버렸죠.”(박강용 점주)
◇ 축구 소년, 밤도깨비 야시장의 요술에 빠지다
박준영 점주가 12년간 한 몸처럼 신고 다녔던 축구화를 미련 없이 벗어던질 수 있었던 계기는 그가 우연히 서울 여의도 밤도깨비 야시장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청년들이 땀 흘리며 음식을 만들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길게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푸드트럭이 그를 매료시켰다. 하루 5시간 장사로 일 매출 1,500만 원을 내는 쉬림프 앤 스테이크 푸드트럭이었다.
“당장 일을 배우고 싶어서, 그 트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사실, 그때는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시기라 ‘뭐든 경험해보자’는 마인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해외로 나가 이것저것 겪어보면서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귀국했을 때, 야시장을 만나게 된 거죠.”(박준영 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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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점주는 푸드트럭 창업을 결심하고 곧바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부모님께 제출했다. 구체적인 계획서를 받아든 부모님은 선뜻 사업자금을 빌려주었다. 그는 21살이 되던 해, 3천만 원으로 사촌 형과 함께 여의도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첫 번째 사업인 ‘멕시칸 타코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하루 최고 480만 원, 월 5천만 원까지 (매출이) 나왔죠. 그때 처음으로 재미있게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요식업에 승부를 걸어야겠다’ 생각했죠. 축구와는 전혀 다른 길이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보람을 느꼈거든요.”(박준영 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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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마드 청년 사업가의 ‘역전 포인트’…정착을 결심하기까지
2016년부터 햇수로 4년 동안, 박준영 점주의 푸드트럭은 성업했다. 개인 행사부터 기업, 스포츠 행사 현장까지, 그의 트럭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푸드트럭에는 분명한 한계점이 있었다.
“갈수록 힘들었어요. 트럭에 매번 짐을 실어야 하는 것부터, 비나 눈이 오면 손님이 얼마나 올지 아예 짐작할 수가 없다는 점도 스트레스였고요. 어느 순간 ‘매장을 차려야겠다’고 자연스레 결심했죠.”(박준영 점주)
매장 창업을 결심한 순간부터 주말에는 푸드트럭을 운영을, 평일에는 ‘장사 잘 되는 식당’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해당 매장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매일 다른 매장에서 설거지부터 요리 보조, 서빙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겪으며 경험치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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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코 맛본 우동 국물에 가맹점 창업 결심
“왜 역전우동이냐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늘 같아요. ‘국물맛’이죠.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의 국물 맛을 낼 수 있는 건 역전우동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들과 창업을 준비할 때, 우연히 역전우동 강남 매장에서 국물을 맛봤는데, 맛이 정말 괜찮았어요.”(박강용 점주)
박강용 점주는 일명 ‘우동 마니아’였다. 소싯적 일본에 건너가 살면서부터 우동 맛에 푹 빠졌고, 그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족들과 ‘우동 맛 기행’을 다니곤 했던 것. 궁극의 목표가 ‘우동 국물 납품 사업가’였을 정도로 우동을 사랑했다. 2018년 겨울, 우연히 역전우동의 맛을 본 박강용 점주는 사업을 구상하던 아들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아버지가 제안하셨을 때)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그땐 더본코리아에 대해 전혀 몰랐거든요. 홍콩반점은 알아도 회사가 어딘지는 몰랐었죠. 그런데 회사를 깊이 조사할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본코리아의 여러 브랜드 중에서도 역전우동이 특히 수익률 대비 폐업률이 현저히 낮았고, (창업)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기회라고 생각했죠.”(박준영 점주)
두 점주는 2019년 당시 매출 부진에 시달리던 ‘역전우동 노량진점’을 양수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지 못했던 노량진점을 부활시키기 위해 부자는 부지런히 노력했다. 노후 된 시설을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 보수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 결과, 60만 원에 그쳤던 일 매출이 120~130만 원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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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의 열정에 아버지의 지략을 더하다
폐업 위기였던 노량진점을 되살리고, 이어 망우역점까지 잇달아 성업시킨 데에는 박준영, 박강용 점주의 ‘부자 케미’가 한몫했다.
“박준영 점주가 정말 꼼꼼한 성격이에요.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예를 들면, 토핑의 위치라던가, 재료의 위치는 일하는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런 부분도 고민하죠. 어떻게 하면 손님에게 더 맛있게 드릴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요. 마케팅 측면에서도, 배달 어플에 댓글을 정말 성심성의껏 달아드리려 노력해요. 손님들이 그런 서비스에 얼마나 예민한지 (아들이) 아는 거죠.” (박강용 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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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꼼꼼하고, 아버지는 호쾌하다. 박강용 점주는 어떤 일이든, 그것이 실패라고 할지라도 부딪히며 성장하는 것이라 믿는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다. 박준영 점주의 편에 서서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조력자이자,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탓에 이제는 둘도 없는 동업자가 되었다.
“저는 꼼꼼한 편이지만, 가끔 중요한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푸드트럭 운영할 때 제일 중요한 ‘포스기기’를 놓고 오는 등.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게 부탁드리면 언제나 도움이 되어주셨어요. 하시던 일이 무엇이든 당장 제쳐두고 저를 위해 달려오셨죠.” (박준영 점주)
역전우동 망우역점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박준영 점주 |
◇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 부자(父子)의 꿈은 ‘다점포 부자 되기’
박준영 점주는 외식업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3가지를 ‘재무관리’, ‘마케팅’, ‘노무관리’로 꼽았다. 마케팅은 트렌드를 잘 읽는 박준영 점주가 도맡고 있고, 그 외 코스트 조절이나 직원 관리에는 아버지인 박강용 점주의 노련함이 빛을 발할 때가 많다.
“힘을 합하면 세상에 못해낼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은 회의 문화가 있어요. 박준영 점주가 축구 할 때부터, 그러니까 제가 매니저로서 가족들과 함께 경기 분석하면서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요즘에도 아내와 며느리 등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매장 운영이나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요.” (박강용 점주)
저는 아버지가, 아버지는 제가 필요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죠.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는 창업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들이 없었다면 역전우동 노량진점도, 망우역점도 없었을 거예요.아마도 혼자 하는 일을 했겠죠. 푸드트럭을 운영할 때부터 저는 (아들에게)해준 게 없었어요. 일손이 급할 때 도와줄 뿐이었지, 사업 선정부터 기획까지 스스로 힘으로 이뤄낸 것이었어요. 정말 기특하죠.
이들 가족은 쉬는 날에도 쉬지 않는다. 박준영 점주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성공한 사업가’, ‘자영업 잘하는 법’을 찾으며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힘쓰고, 박강용 점주는 다른 지역의 상권을 분석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래의 3번째, 4번째 터전을 계획하기 위함이다. 늘 친구처럼 아옹다옹하다가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때로는 합리적인 사업의 길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인생의 동업자 부자는 오늘도 힘차게 셔터를 올린다.
솔 · 직 · 대 · 담 · 한 Q & A
Q. 현재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주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A. 정말 꼼꼼한 사전 준비 없이는 창업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웃음) 모든 서비스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이 일은 특히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거든요. 자신을 오롯이 투자해야지 간신히 길이 보여요. 저희는 매일 6시간도 못 자면서 일하지만, 그만큼 대가도 따르고 목표가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거죠.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모든 게 다 불확실하잖아요. 창업을 생각하신다면 더 불안할 텐데, 그럴수록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박강용 점주)
꼼꼼한 사전 준비란, 상권 분석부터죠. 저는 여기 망우역점을 오픈하기 전 거의 두 달간 주변 일대를 관찰했어요. 누가 오는지, 어떤 사람이 어떤 가게에 얼마나 머무는지 조사하고, 기록하고, 수치화했죠. 더본코리아에서 창업을 결심한 이유도, 수익의 안정성과 프랜차이즈 로열티 측면에서 조건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에요. (박준영 점주)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5년 안에 제가 운영하는 매장을 10개까지 늘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더본코리아 브랜드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역전우동을 만나기 전 정말 다양한 음식점을 경험했어요. 그중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많았죠. 그런데 문제 해결에 있어서 ‘본사의 탁상공론’에 그친다는 인상을 받기 일쑤였어요. 반면에 더본코리아는 문제가 있다면 그 즉시 해결해주시려고 노력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급한 일이 있어서 연락드려도 항상 (연락이) 잘 되었고요. 그런 부분이 점주 입장에서는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죠. (박준영 점주)
좋은 직원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매장을 운영하고 싶어요. 이웃 가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요. 우리 망우역점이 들어오고 나서 주변 상권이 살아났어요. 제가 부동산을 공부하는 이유죠. 물론 이런 부분들은 본사에서도 많이 가이드를 도와주시는 편이에요. 저희가 앞으로도 더본코리아와 함께 하고 싶은 이유죠. 신뢰가 가기 때문이에요. 제가 아들인 박준영 점주를 믿듯, 본사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이 고스란히 매출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박강용 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