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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테일러콘텐츠

'붉은 단심' 핏빛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었다면

[붉은 단심]은 1500년대 초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 이후의 상황에 영감을 얻은 픽션 사극이다. 이 시기가 배경인 사극이 없던 건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제작되지 않았다. 어떤 역사적 요소를 재해석했을까 하는 궁금함 반, 사극 마니아의 2022년 첫 사극이라는 반가움 반의 마음으로 시청을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속 시원한 전개나 달콤한 애정신은 거의 없고, 기대한 것보다 엄숙하고 진지하고 슬프다. 그리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가슴을 쥐어뜯으며 볼 게 분명한 이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이태의 아버지는 조강지처를 지키기 위해 좌의정 박계원(장혁)과 공신들에게 기꺼이 실권을 넘기고 허수아비 왕이 된다. 세자 이태(이준)는 신하들의 세상이 된 조선을 바꾸려 자신의 혼인으로 세력을 키우려 하지만, 오히려 어머니를 잃고 예비 장인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그 상황에서 이태가 할 수 있던 건 죽을 위기에 처한 정혼자 유정(강한나)을 몰래 빼돌린 후 지켜주는 것뿐이다. 7년 후, 세자의 자존심마저 버리며 왕이 된 이태는 공신 세력을 분열시키려 한다. 공석이 된 중전 자리를 놓고 대신들이 경쟁하게 하려던 그의 계획은 유정이 궁에 들어오면서 틀어진다. 이태를 철저하게 감시한 박계원이 이태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여인, 유정을 협박해 자신의 조카 자격으로 이태의 후궁이 되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정적이 된 상황에서, 이태와 유정은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아야 한다.

이미지: KBS

[붉은 단심]은 “사랑하는 연인이 정적이 된다면, 왕은 사랑과 권력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라는 비극적 설정으로 시청자를 홀린다. 특히 중심인물 세 명은 사랑과 권력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한다. 이태는 박계원을 밀어내기 위해 사랑 대신 권력을 택하고, 박계원은 그런 이태를 누르기 위해 사랑이란 감정을 이용하며, 유정은 사랑을 위해 죽어도 오고 싶지 않았던 궁궐에 돌아온다. 비정한 권력 쟁탈전에서 사랑이 가장 강한 무기이자 최대의 약점이 된 것이다. 개연성을 포기할 만큼 이야기가 파격적으로 전개되지 않는 이상, 이 싸움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서두르지 않는다. 속도를 조절하면서 인물 간 감정이 쌓이고 충돌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그 덕분에 시청자는 이태와 유정이 7년간 계속 만나왔고, 연인을 지키기 위해선 자신의 마음을 거스르는 일도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박계원이 이태의 변화를 우려하며 왕권을 억제하는 이유와 대의를 위해 그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가 초반에 감정 쌓기와 맥락 설명에 공들이는 건 어찌 보면 위험한 선택이다. 빠른 전개와 통쾌한 한방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엔 더 그렇다. 그렇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이해할 만큼 충분한 맥락을 설명함으로써, 드라마는 남은 회차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준비를 마쳤다.

이미지: KBS

[붉은 단심]의 긴장감을 쌓아올리는 데는 시각 요소의 역할이 크다. 화면 구성과 편집은 세련되고, 회차별 클라이맥스에선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의상과 장신구는 공들인 만큼 아름답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촬영한 풍경은 절로 감탄이 나온다. 눈에 가장 띄는 요소는 색이다. 최근 나온 한국 사극들의 밝고 맑고 청량한 색감과 비교하면, [붉은 단심]의 색은 매우 뚜렷하고 대비도 강하다. 특히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의 시작을 알린 6회 엔딩에선 화면을 붉게 물들이는 과감함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이태와 유정을 연기하는 이준과 강한나는 권력과 생존,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인을 잘 표현한다. 사극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장혁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박계원이란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이 드라마에는 시청자의 무조건적 호감과 지지를 얻을 만한 인물이 없다. 통치보단 생존에 급급한 왕 이태, 비뚤어진 대의에 모든 걸 건 박계원은 물론이고 유정마저 연인의 목에 칼을 겨누기로 결심하며 시청자의 반감을 살 위협을 무릅쓴다. 연기로 캐릭터의 상황을 설명하고 선택을 이해시키는 게 배우의 몫이라면, 세 배우는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지난주 방영한 6회에서 유정이 이태의 여인으로 살기 위해 중전이 되기로 마음먹으면서 [붉은 단심]은 본격 전개를 위한 판을 완성했다. 이제 모든 캐릭터가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서로를 공격하는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정의 활약이 가장 궁금하다. 과연 이태와 박계원의 대립 구도에서 유정이 어떤 파란을 일으킬까? 앞으로의 이야기에 기대를 품고, 이 핏빛 사랑의 흐름의 기꺼이 빠져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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