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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배신,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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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스틸. 사진INEW

속상하다. 최애(最愛 : 가장 사랑함) 조합의 슬픈 결과물이다. 배우와 캐릭터의 부조화, 미적지근한 장르적 쾌감, 소중한 만큼 빛나진 못한 워맨스다.


화려한 출연진, 스케일과 들인 노력에 비해 끝까지 시원하게 터지지 못한 해양 액션까지, 여러모로 높은 기대감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구간이 없다. 민망한 전반전, 지루한 중반부를 온 힘을 다해 수습하기 바쁜, 아쉬운 ‘밀수’(감독 류승완)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 ‘충무로의 히트메이커’이자 ‘범죄극 장인’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다.


70년대 어촌에서 소도시로 변모 하고 있는 ‘군천’. 평화롭던 이 바닷가 마을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해녀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을 찾던 승부사 ‘춘자’(김혜수)는 바다 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의 세계를 알게 되고, 해녀들의 리더 ‘진숙’(염정아)을 끌어들인다.


위험한 일임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린 ‘진숙’은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조인성)를 만나게 되면서 확 커진 밀수판에 발을 담군다.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 여기에 과거 숨은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거대한 밀수판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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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스틸. 사진INEW

장르적 특성상 빈약한 서사는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영화의 필수 요소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묘미, 액션 쾌감이다. 아쉽게도 이 중 단 하나도 시원하게 터지는 구간이 없다.


사실상 원톱 주연인 김혜수는 (지금까지 그 어떤 캐릭터든 완벽한 완성도를 보여온 그녀이지만) 이번 만큼은 모든 면에서 ‘투머치’다.


현대극이 아닌 70년대 배경, 그것도 어촌 생계형 ‘해녀’라는 점에서 그녀의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한 비주얼은 미스매치다. ‘날것’을 표현했다지만, 특유의 어투와 제스처, 그간 ‘타짜’ ‘도둑들’ 등에서 봐온 극적인 연기와 섹시미도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묵직한 존재감, 과장된 표현들이 시너지를 내기 보단 부조화를 이룬다.


염정아는 자연스럽다. 비주얼부터 말투, 눈빛 등 모든 면에서 캐릭터에 스며든다. 다만, (분량과는 별개로) 예상보다 비중이 적어 투톱이라 볼 수 없고, 소극적인 캐릭터로 기대 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다. 두 배우가 가진 극강의 에너지에 비해 빈약한 워맨스, 예상보다 묽은 케미다.


조인성 박정민은 딱 예상했던 그 모습, 그 연기를 보여준다. 그저 무난한 존재감이다. 딱 한 구간 액션 장면에서 반짝 활약을 펼치지만, 그 강렬함은 지속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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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스틸. 사진INEW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수확은 고민시다. 초반부 과장된 연기가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빛을 발휘하더니, 마지막은 거의 독무대다. 제대로 꽃을 피운 ‘일당백’ 막내다.


작품은 충무로에서 여전히 귀중한 여성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지만, 아쉽게도 그 전형성에서, 고질적 강박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여성과 남성을 단순하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해놓고, 그 갈등 양상 역시 단순하게만 다뤄 박진감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속고 속이는 재미가 부족하고, 밀당 지수는 낮다.


톱 배우, 스타 감독, 대자본이 만났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무난함이다. 어떤 면에서든 더 터지고 또 터져도 놀랍지 않을 조합과 무기들을 갖췄지만, 어느 구간도 화끈하게 터지질 못한다. 사활을 건 마지막 30분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긴 하지만, 적잖은 실망감을 모두 달랠 정도는 아니다.


높은 기대는 늘 독이 되길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그것을 뛰어 넘는, 혹은 만족시킬 작품을 기다린다. 화려한 전적의 ‘베테랑’들이 뭉쳤기에. 이제는 관객들도 ‘베테랑’들이 넘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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