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라에서 쓴 편지
이곳에 선 나는, 나의 내일이 어디로 도착할지 내가 너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지 않아졌다.
너에게 편지를 써
하늘에서 떨어진 하얀 눈은 오갈 데 없이
여기에 다 누운 것 같아
은나라 나무의 발목을 덮은 눈을 바라보며
나는 너에게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어
참 오랜 시간이 우리를 지났어
나는 언제나 널 기다리고
너는 여전히 날 기다리게 해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여기 은나라의 나무들은 추위를 불평하지 않아
가지에 은빛 얼음이 거꾸로 매달려도 몸을 흔들지 않아
나는 은나라의 나무 같아
얼굴에 은빛 방울이 자꾸만 맺혀도 고개를 숙이진 않아
이제 너를 기다리지 않을 거야
나는 은나라의 나무 같을 거야
너 없는 내가 있었듯
나는 혼자 서 있을 거야
화이트 카펫 위를 달리면 함백산 신비로운 설경 한가운데 놓이다
‘크게 밝다’라는 뜻의 함백(咸白)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놓인 해발 1572.9m의 산이다. |
일 때문에 들른 강원도였다. 함백산은 처음의 목적지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이곳에 오려고 강원도에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함백산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원도의 겨울은 누구나 알아 줄만큼 이르게 오고 춥기로 소문났는데 간 날이 그러했다. 일찍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쌓여 설원이 되어 있었다. 강원도 정선에 고한이라는 동네가 있다. 강원랜드 스몰카지노, 하이 원리조트, 삼탄아트마인이 자리한 곳이다. 그런데 고한 주민 에게 ‘정선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가 어디입니까?’ 물으면 대다수가 함백산을 일러주곤 했다. 고한에 온 것이 오늘 처음이 아닌데도 함백산은 한 번도 가볼 생각을 못했더랬다. 산이란 보통 등산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등산을 할 정도로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이날은 누가 허락이라도 하듯 시간의 틈이 꽤 깊었다. 더군다나 함백산은 정상에 이르는 만항재까지 차로 갈 수 있다지 않은가.
오대산 (五臺山·1563m)·설악산(雪嶽山·1708m)·태백산(太白 山·1567m)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 속하는 고봉이다. 만항재는 함백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고개로 두 곳의 고도차는 약 240m에 불과하다. 이곳까지 오르는 고갯길은 고원 드라이브의 정수로 꼽힌다. 고마운 마음으로 화이트 카펫 위를 달리면 이내 만항재 하늘숲에 당도한다. 숲은 국유림 2271㏊ 규모에 소나무, 낙엽송, 신갈나무 등 혼합림으로 조성되어 드넓고 깊다. 뾰족한 낙엽송 머리에 흰 눈이 소담스럽게 내려 앉았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눈과 가슴에 저장된 이미지가 내내 선명하다. 하늘숲은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로 뒤덮이 고, 해마다 야생화축제가 열린다. 겨울에는 모든 나무가 온몸으로 눈을 받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아는 이들은 하늘숲의 새벽 시간을 으뜸으로 친다. 하늘숲에 자주 안개가 몰려와 몽환적이라고.
함백산 부근은 국내 유수의 탄전지대로 1970년대 탄광촌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2001년 삼척탄좌가 폐광했다. 현재의 삼탄아트마인이다. 더 이상 석탄을 실어 나르지 않지만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해 많은 사람이 걸음하고 있다. 갤러리, 스튜디오, 예술체험 관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카페에서는 광부들이 먹던 도시 락을 주문할 수도 있다. 삼탄아트마인과 더불어 국내 5대 적멸보궁(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암자나 사찰) 의 하나인 정암사(淨巖寺)는 코스처럼 이어진다. 둘 다 함백산과 가깝다. 정암사는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 로서, 문화재자료 제32호인 정암사적멸보궁과 보물 제410호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둘러볼 수 있다. 산림청은 2018년 12월 추천 ‘국유림 명품숲’으로 강원도 영월군 일대 ‘함백산 하늘숲’을 선정했다. 설경 한가운데 놓인 신비로운 경험을 많은 사람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두에 말했듯 등산에 대한 부담이 있다면 내려놓아도 된다. 만항재가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해발 1330m)이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는 3km 남짓, 기자는 정상에 가보진 않았지만 걸어서 한 시간 거리라고 하니 가보신 분들은 독자엽서나 SNS로 인증해 주면 좋겠다.
글 정상미 사진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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