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의 박준영 변호사
지난해 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파산 위기에 처한 한 변호사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올해 초 재심 전문 변호사의 사연을 다룬 영화 <재심>이 개봉했다. 모두 한 남자의 얘기다.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는 박준영 변호사의 욕심은 모두를 웃게 하는 힘이 담겼다.
박준영 변호사는 기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사진은 보정하되 인터뷰 내용은 꾸미지 말 것. 현재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35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가장 한이 남는 사건이었다”라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재심을 맡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그는 “대통령의 한이 맺힌 사건을 맡았는데 당연히 많은 분이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나아가 정부와 언론의 눈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번 재심을 계기로 여러모로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다”라면서 포부를 밝혔다.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삶과 일에 대한 강한 욕심. 그는 “인생을 위한 사욕이 있어야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 자신의 일을 통해 승진을 한다든가 좀 더 높은 수익을 거두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전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지난해 파산 변호사란 꼬리표(?)를 달고 세상에 드러난 박준영 변호사에겐 독특한 이력이 있다. 한 소녀를 폭행하고 살인한 이유로 가출 청소년 5명이 가짜 살인자가 된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사건’과 지적장애인 3명이 슈퍼마켓 할머니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강도가 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 등 억울한 사건만 맡는 재심 전문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그의 활약상은 영화<재심>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영화는 미성년자 소년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뒤 경찰의 강압적 수사로 억울하게 징역살이를 한 일화를 다룬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처럼 자신의 업적으로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은 욕심과 정의를 지키려는 직업적 정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인 박준영 변호사. 이는 가장 인간적인 본능, 순수에 가까운 사욕이 이뤄낸 성과였다.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은 지난 1990년 부산 사상구 엄궁동의 갈대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 1급 시각장애인과 그의 친구가 부녀자를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 결국 그들은 21년이라는 긴 세월 옥살이를 했다. 이후 하나둘씩 당시 사건에 개입한 경찰의 조작 의혹이 드러나며 재심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Q 스케줄 잡기가 어려웠다.
나의 주 수입원은 강연료이기 때문에 한 달 평균 15회 이상 전국을 돌며 강연을 진행한다. 지난해 많은 분께 후원도 받았지만 재심 과정엔 끝없이 돈이 든다. 우선 내가 자식이 세 명이라 가정에 생활비도 줘야 하고 재심 취재 과정에 쓰일 수많은 비용,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의뢰인 대부분이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생활비도 지원해준다. 넉넉잡아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정말 하루가 모자랄 정도지만 업무 외에 시간을 쪼개서라도 강연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더욱 많은 재심을 맡아 억울한 누명을 쓴 자들을 도울 수 있으니까.
Q 지난해 5억 원이 넘는 큰 액수의 후원금을 받았는데 이후 어떻게 쓰였는가?
당시 파산 변호사라는 슬로건으로 스토리 펀딩을 진행했는데 파산을 한 건 아니었고 파산 위기까지갈 정도로 힘들었다(웃음). 실제 변호사가 파산하면 변호사 자격이 정지된다. 절박한 상황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친분이 있는 기자와 포털 사이트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상 후원액을 훌쩍 넘어 5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받았고 포털 사이트의 진행비와 함께 진행한 기자에게도 몫이 돌아갔다. 후원금을 기부한 사람들에게도 당시 발간한 책을 선물로 전했는데 이 금액만 해도 8000만 원이 넘는다. 전국을 돌며 진행한 파산 콘서트마저 후원금으로 충당해서 수중에 남은 후원금은 2억 원이 조금 안 됐다. 앞서 말했듯이 재심 사건을 맡으려면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또 후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후 유명세를 떨치며 수많은 사건 요청이 들어왔고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사건을 수임해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거절했다.
Q 다른 사건을 수임하면 해결되는데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날 응원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사건을 맡게 될지 몰라서 거절했다. 그들의 정성을 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만 이전부터 사건을 맡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막연한 나만의 기대에서 비롯됐다. 재심을 맡아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면 언론과 대중이 나를 크게 인정해줄 거로 생각했다. 그러면 돈 많은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주변 눈치 안 보고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꿈꿔왔다. 결론적으로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집의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내가 걸어온 길을 믿었다. 재심을 성공으로 이끌어 얻는 보람이 컸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해 법조 비리 사건이 많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그 반작용이 내겐 이득이 됐다. 법이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사연이 알려졌고 스토리 펀딩을 알리는 힘이 됐다.
Q 수많은 재심을 맡은 변호사치고 사무실이 넓진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지원해준 공간이다. 어차피 난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 없다. 물론 이곳 외에도 무상으로 사무실을 제공하겠다는 복지재단도 있었지만 이곳이 가장 부담이 덜했다.
Q 업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술로 푼다. 주량은 기분 좋게 2병까지 마시고 안주가 좋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웃음). 요즘엔 술 마실 시간이 많이 없는 게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의 재심이 진행 중이라 바쁘다. 기자님도 보지 않았는가? 조금 전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눈 남성이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Q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린 미래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지난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공익적인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인정 받는 사람이 되자는 미래를 그렸다. 물론 이렇게 흐를 줄 몰랐다. 고졸 자격으로 사법 시험을 통과한 독특한 내 이력은 법조계에 들어선 순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인맥과 학벌이 전혀 없는 상태라 사건 수임이 힘들었고 고집도 강해서 영업도 안 했다. 물론 한국의 영업 방식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성격상 체질에 맞지 않아서 국선 변호를 맡기 시작했다. 다행히 운명적인 사건(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사건)을 만나 승리했고 그때부터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꾸준히 이런 사건을 맡으면 계속해서 주변에 인정받을수 있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Q 욕심과 인정, 재심 변호사가 꺼내기엔 쉽지 않은 단어다.
나도 사욕을 갖고 산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봤을 때 ‘나도 저렇게 알려진 사람과 똑같구나 혹은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사욕은 열정의 근거가 되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욕이 있어야 한번 날도 세워 보고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공익적으로만 살다 보면 한계에 부딪힌다. 누구나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려면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이때 사욕이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Q 당신의 가장 큰 무기는 솔직함이다.
그게 어필이 된다는 게 웃기는 사회 아닌가?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거다. 나는 지금 이런 내 행동이 세상에 통한다는 걸 잘 알고, 이것 때문에 수익을 얻고 있다. 여전히 많은 곳에서 나를 찾고 있어서 아직까진 안정적이다. 워낙 독보적인 캐릭터니까(웃음). 그러나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언제까지 인기를 끌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경쟁자가 등장해 선의의 경쟁을 펼쳤으면 좋겠다, 하하하.
Q 재심을 맡으면서 깨달은게 많을 듯하다.
재심을 맡다 보면 태어났을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 혜택을 받지 못한 자들과 누가 봐도 풍족하게 살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권력을 앞세우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자연스레 내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보인다.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지내다 보면 내가 겪는 불편함도 사치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난 내 집을 마련하는 욕심을 버렸다. 현재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55만 원의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고 있지만 크게 부족함을 못 느낀다. 물론 자식이 3명이라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근사한 곳에 살면서 돈을 펑펑 쓰고 산다면 과연 힘든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무조건 삶의 기준에서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그게 가장 큰 욕심 일지 모른다. 버릴 수 없다면 그걸 응용해 삶의 불을 지펴 주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기준의 사욕을 찾아 정진해보자.
Q 하루를 시작할 때 스스로 거는 주문이 있는가?
따로 그런 건 없지만 재심 사건으로 인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질 때 힘을 얻는다.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면서 희망을 얻을 때 달라지는 그들의 삶과 표정. 그것만 있으면 일에 대한 내 욕구는 충족된다. 적어도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도 하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직업은 변호사, 수입원은 강연료
박준영 변호사의 사무실은 혼자 간신히 지나가는 길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서류 더미가 방을 가득 메웠다. 기자보다 먼저 그를 만나러 온 듯한 한 중년의 의뢰인이 넓은 휴게실이 있다며 기자를 안내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직접 타서 건네줬다.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눈 뒤 박준영 변호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텁텁한 인생에 부드러운 ‘솔직함’ 한 스푼
기자는 방금 전 커피까지 타준 남자가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억울하게 긴 시간을 보낸 피해자인 줄 알아 차리지 못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눴다. 21년 전 식당에서 먹었던 300원짜리 라면이 이젠 3000원 이듯 세상이 너무도 달라졌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중년의 남자.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나친 겸손과 양보만으로 헤쳐 나가긴 어렵다. 흐름에 익숙해져야 한다. 박준영 변호사는 그 흐름을 미리 깨닫고 그곳에 탑승했다. 탑승권은 ‘자신에게 솔직 해질 것’. 그가 던진 혜안이다.
글 유재기 사진 손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