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얻은 것들
여행으로 얻은 것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페이지만 읽을 뿐이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처럼 여행은 우리에게 수많은 의미와 배움으로 다가온다.
단순성(꽃잎 그림 작가 백은하)
“지난여름, 강릉에서 8살 딸아이와 한 달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마친 후 깨달은 건 삶에서 필요한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행 중에는 총 7벌의 옷을 매일 세탁해 입으면서도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는 옷장을 열 때마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분명 몇 배의 옷이 더 걸려 있는데도 말이다. 강릉에서의 생활 패턴도 그랬다. 오전에는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바다로 나가는 단순한 하루 일과 속에서 우리는 풍성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그린 그림은 서울에서 수 개월에 거쳐 작업한 것보다 양도 많고 만족도도 높다. 딸과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단순한 생활 패턴 덕이었다. 요즘 나는 옷과 책 등 ‘불필요한 아까운’ 것들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이 단순성은 물건의 단순화를 넘어 삶의 태도와 방식이란 것을 서서히 터득 중이다. 앞으로의 삶은 좀 더 단순하고 좀 더 강력해질 것이다. 그래야 창작도 육아도 동시에 흡족할 수 있겠다.”
술의 참맛(에미레이트항공 스튜어디스 한지은)
“나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여자다. 그러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그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술을 맛보며 비로소(!) 술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특히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는 ‘내 인생의 술’을 만났다. 크로아티아의 국민 맥주로 통하는 카를로바코(Karlova?ko) 맥주와 스플릿의 작은 와인 바에서 찾아낸 스파클링 화이트와인 베랄다(Veralda)가 바로 그것.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맥주, 아카시아 향이 입안에서 퍼지는 와인에 제대로 취향을 저격당하고 말았다. 햇살 좋은 날씨, 아름다운 풍경,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맛있는 술과 음식이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정성훈 찾기(글로벌 HR 매니저 정성훈)
“내게 여행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친구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오래전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올해는 특히 과거의 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행을 계획했다. 15년 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생활했던 호주 퍼스, 그리고 호주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를 여행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만남, 여행을 통해 난 또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La vita e Bella!”
예술적 영감(서양화가 홍지연)
“한글 읽기를 성공할 무렵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크레파스나 붓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한마디로 내 인생은 그림으로만 점철된 ‘단조로움’ 자체였다. 버리거나 바꿀 수 없는 이생이기에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1년이 넘는 장기여행을 떠나곤 했다. 시작은 늘 편도 티켓 한 장. 천천히 육로로 이동하며 이집트, 시리아, 인도, 캄보디아 등 40여 개국을 여행했고, 자연스레 낯선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삶에 섞여들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여행하며 나는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덕분에 끝없어 보이던 단조로운 작업의 괴로움을 이겨냈고, 더욱 활기차게 새로운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일상, 그것의 소중함(피부과 전문의 김홍석)
“매번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 낯설고 새로운 세상이 그곳에서 사는 현지인에게는 일상이라는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간혹 우리는 익숙함에 가려 일상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그리고 무언가로부터 탈출하고자 여행을 떠난다. 내가 그곳에서 느끼는 즐거움만큼이나 그들도 내일상으로 들어온다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테지. 결국 나는 여행을 통해 오히려 내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
서핑(네이버 플랫폼커머스cell 매니저 윤소영)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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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열광하는지 모른채 살던 내가 여행으로 알게 된 것은 서핑의 재미. 하와이와 태국, 인도네시아 발리 등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서핑은 정말이지 딱 ‘내 스타일’의 해양스포츠였고, 흠뻑 빠져들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고른다!”
자기확신(한복문화활동가 권미루)
“한복을 입고 여행할 수 있을까? 처음 한복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하지만 ‘불가능’, ‘다른 세상 이야기’라 여겼던 것이 곧 ‘가능’, ‘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그저 한 발자국 뗐을 뿐인데 말이다. 의심과 불명확성이 시도와 행동을 통해 ‘리얼 월드’로 바뀌면서 삶의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학교를 졸업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정답이라 여겼다. 내가 만든 테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삼류인생’이라며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그랬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한 치의 변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두려웠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의 묘미가 ‘변수’인 것처럼 살아가는 과정도 변수의 연속임을 안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은 백이면 백 사람마다 다르다. 아니, 당연히 달라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내게는 한복과 여행이 그랬다. 내게 솔직해지니 ‘나’다운 삶을 지향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세상도 이해하고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핏빛 증명사진(포토그래퍼 유정열)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면 입산 허가증인 퍼밋을 받아야 한다. 준비물은 증명사진. 포카라의 사진관 ‘퀵포토’를 찾아가니 주인할머니가 오래된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부들부들 떨며 셔터를 누른다. 초점 나간 사진, 그러나 퍼밋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트레킹 내내 비가 내렸고 고산증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가까스로 트레킹을 마치고 하산 신고를 위해 퍼밋을 꺼냈는데, 이게 누군가? 내 증명사진은 살해당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입산 신고를 할 때 얼굴에 찍은 도장이 빗물에 붉게 번진 것이다. 관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인증을 해줬고, 나는 벌건 피를 흘리면서 살아 돌아온 여행자가 되었다. 이국에서 처음 찍은 증명사진은 지금도 피를 흘리며 내 책장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천사(SRT매거진 기자 이현화)
“스물셋, 처음 ‘해외’에 나갔다. 행선지는 영국 런던. 물론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Charlie’s Angels(미녀 삼총사)가 될 줄은. 1년 동안 머문 테리네 홈에는 스위스 소녀 레티샤와 터키 모델 교즈데가 있었고, 또래였던 우리 셋은 곧 식구이자 ‘절친’이 됐다. 아, 피카딜리서커스와 옥스퍼드 스트리트, 워털루와 코벤트가든을 발톱 빠지게 돌아다니던 우리의 마지막 소녀 시절이여! 레티샤는 소르본대학에 진학하고, 교즈데는 가업을 돕고, 나는 잡지를 만들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소녀들의 수다는 식을 줄 몰랐다. 마침내 6년 뒤, 터키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재회했다. 아쉽게도 서로의 결혼식에 초대하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우리는 교즈데의 신혼집에서 마치 어제 만난 듯 비눗방울처럼 영롱한 일주일을 보냈다. 서울에서의 다음을 기약한 지 벌써 3년. 레티샤는 국제변호사가 됐고, 교즈데는 엄마가 됐고, 나는 여전히 한 달 살이 인생이다. 다음에 만날 땐, 우린 또 어떤 소녀가 되어 있을까.”
마마(여행작가 ‘쨍쨍’ 최순자)
“나는 아이가 없다. 교사 시절엔 우리 반 아이들을 내 자식이라 여기며 지냈다. 학교를 떠나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을 여행할 때였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되었던 체팔루에서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다 한 아이를 만났고, 우연찮게 그 아이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던 알렉시오는 나와 시간을 보내며 정이 꽤 든 모양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자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빼려 할수록 더 힘을 줘 내손을 꼬옥(!) 잡았다. 옆에 있던 아이의 아빠가 내게 말했다. “순자, 너를 마마로 생각하는 모양이야!” 음, 내 생전 마마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마마라니….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나도 힘주어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백시스터즈(의정부백병원 총무팀장 백지은)
“적지 않은 나이에 의학전문대학에 들어간 동생이 4년의 힘든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됐다. 1년에 딱 두 번의 휴가를 받는 그녀와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시작된 여행이 올해로 4년째. 하루 종일 잠만 자도 모자랄 금쪽같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피곤을 무릅쓰고서라도 여행을 떠난다. 일상탈출이 여행의 첫 번째 즐거움이라면, 뜨거운 피(血)로 연결된 사랑(愛)를 확인하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낯선 땅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안심이 되는지! 우리는 그렇게 프랑스, 크로아티아, 체코, 터키, 베트남, 중국 등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또 다른 여행을 계획 중이다. 내년 목적지는 이탈리아 피렌체와 친케테레. 기다려, 백시스터즈가 간다!”
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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