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수 이야기
전국 각지 국수 중 딱 다섯 그릇의 이야기
가루 형태의 곡물을 반죽해 길게 뽑은 국수. 전국 어디를 가도 지역 특색이 반영된 국수 한둘은 꼭 있다. 제주의 고기국수가 그렇고, 전라도 팥칼국수가 그렇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국수 중 딱 다섯 그릇을 골랐다. 국수 한 그릇에 지역의 역사가,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다 담겨 있다.
할매들의 야무진 손맛, 대구 칼국수
대구는 1970년대 칼국숫집이 번성했고 1980년대 말까지 전국에서 생산되는 건면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제면의 도시였다. 지금도 전국에서 면 소비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힌다. 특히 서문시장에는 칼국숫집이 즐비한 국수골목이 있고, 약전시장 뒤도 그렇다. 전통적인 대구 칼국수는 면발이 얇고 국물은 멸치 계열로 안동국수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대구의 칼국수는 모두 할머니들이 주름잡았다. 그중 대구 3대 칼국숫집으로 경주할매국수와 동곡원조할매손칼국수, 명덕할매칼국수가 꼽히는데 얼마 전 대구백화점 부근의 경주할매국수가 문을 닫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동곡원조할매손칼국수
요즘은 손칼국수도 흔치 않지만 가마솥에 삶는 손칼국수는 더욱 귀하다. 동곡원조할매손칼국수 입구에 들어서면 장작불에 올린 큰 가마솥 하나가 눈에 띈다. 이 집 손칼국수는 반죽을 숙성시켜 자른 국수 가락을 이 가마솥에 넣어 삶는다. 이후 국수를 건져 찬물에 헹구고 다시 국수 삶던 물에 토렴을 하듯 면발을 데운다. 육수는 따로 만들지 않는다. 면을 삶은 물을 국수 국물로 쓴다. 면수를 따로 요청해 맛보니 구수하다. 테이블에 등장한 손칼국수는 참깨·양념장·호박도 놓여 있지만 수북하게 덮인 김 가루가 압권이다. 김은 기름과 소금으로 양념한 김이 아니고 생김을 일일이 숯불에 구운 것이다. 짭조름한 양념간장과 향긋한 김 냄새, 보드라운 면발이 잘 어울린다.
- 시간 10:00~21:00(첫째 주 월요일 휴무)
- 주소 대구 달성군 하빈면 달구벌대로55길 97-5
- 문의 053-582-0278
- 가는 방법 SRT 동대구역에서 차로 1시간 거리
면 따로 국물 따로, 구포국수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지역에서 국수 하면 지금은 밀면이 가장 유명하지만, 한때는 마른 밀국수인 소면이 인기를 구가했다. 덜 퍼지고 쫄깃한 면발의 구포국수가 그러했다. 1970년대 구포역을 통해 부산 주변 곡물은 물론 북한 지역의 밀가루 등이 경상남도 일대로 퍼져나가면서 구포시장 주변에 20여 개가 넘는 국수공장과 많은 국숫집이 성업했다. 이제는 구포연합식품이라는 국수공장 한 곳만 구포에 남았고, 김해와 창원 일대에 구포국수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몇몇 국수공장이 있을 뿐이다. 구포에서는 소면을 쫄깃하게 삶아 고명을 올리고 멸치를 진하게 우린 국물을 면 위에 부어 먹었다. 진한 멸치국물과 쫄깃한 면발 맛이 재조명되면서 전통 스타일의 구포국수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김해 대동할매국수(055-335-6439)와 부산 구포촌국수 등이 그곳이다.
구포촌국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앞에 자리한 구포촌국수는 국수 한 가지 메뉴만 고집한다. 그래서 주문할 때 보통·곱빼기·왕·대왕 중에서 고른다. 구포촌국수는 구포국수의 전통 스타일인 면과 멸치국물을 담은 주전자를 따로 내준다. 부추·김·단무지·양념장이 올라간 국수 위에 진하게 우린 멸치육수를 양껏 부어 먹는다. 이 집 단골들은 멸치육수 애호가가 많다. 그래서 국수를 먹으면서도 컵에 멸치국물을 따로 담아 먹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쫄깃하고 탄탄한 면은 소면보다 두꺼운 중면으로 구포연합식품에서 들여온다.
- 시간 10:30~19:00
- 주소 부산 금정구 남산로 35
- 문의 051-515-1751
- 가는방법 SRT 부산역에서 차로 50분 거리
바닷마을 국수, 포항 모리국수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구룡포의 어부들은 뱃일을 마치고 부두로 돌아와 독특한 해물칼국수를 먹곤 했다. 생선과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끓인 국물에 두툼한 칼국수 면이 담긴 이 국수를 구룡포에서는 모리국수라고 부른다. 모리국수라는 이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숲을 뜻하는 일본어 모리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모두 모이가(모여서)’ 먹는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모리국수는 냄비째 투박하게 나온다. 모두 모여서 먹기 좋게 양이 꽤나 푸짐하다. 구룡포항 주변에는 모리국숫집이 많다. 생면을 사용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두툼한 칼국수 건면을 쓰는 집도 있다.
까꾸네모리국수
까꾸네모리국수의 주인장 이옥순 할머니는 40여 년 넘게 모리국수만 끓여왔다. 할머니 혼자 운영해서 테이블도 세 개뿐인 작은 국숫집이다. 인원에 따라 모리국수를 주문하면 건새우를 끓인 기본 국물에 고춧가루 양념을 풀고 아귀·홍합·콩나물·칼국수를 넣어 끓인다. 테이블에 내기 전 고춧가루를 한 번 더 뿌려서 벌겋지만 많이 맵지는 않다. 국물이 흥건하지 않기 때문에 면을 먼저 건져 먹는 것이 좋다. 시원하면서도 걸쭉한 국물 맛이 잘 스며든 면은 1933년 창업한 대구의 풍국면이다. 구룡포 스타일로 모리국수를 즐기고 싶다면 구룡포 막걸리를 곁들여보기를 추천한다. 주문은 2인이 기본이며, 양이 많아 남기기 십상이다. 주문할 때 적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하는 것도 남기지 않는 방법이다.
- 시간 10:30~19:00
- 주소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호미로 239-13
- 문의 054-276-2298
수수한 국물과 보드라운 면발, 안동국수
안동은 영덕에서 넘어오는 고등어를 독특하게 탄생시킨 간고등어의 고장이다. 간고등어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안동 지역에도 독특한 국수 문화가 있다. 탄탄하고 쫄깃한 면발을 좋아한다면 안동국수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맑은 국물 속에 얇은 면발은 안동국수의 특징이자 선비같이 점잖은 매력이 느껴진다. 비결은 밀가루 반죽에 콩가루를 넣어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안동 지역에서는 이 부드러운 면을 계절에 따라 다른 스타일로 즐긴다. 여름철에는 삶은 국수를 찬물에 씻어 건진 건진국수로, 겨울에는 국수를 끓인 국물에 애호박·배추 등 채소를 넣은 제물국수로 먹는다.
옥동손국수
국수를 주문하면 쌈채소, 10여 가지 반찬, 밥이 먼저 등장한다. 이것이 옥동손국수의 스케일이다. 옥동손국수는 안동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국수 반죽은 밀가루와 콩가루를 7대 3으로 섞어 반죽한 다음 하루 정도 숙성시켜 홍두깨로 얇게 민다. 하늘하늘한 면발을 만들기 위해서다. 옥동손국수는 멸치·다시마·양파를 넣어 맑게 끓인 국물에 애호박·지단·김·배추 등을 올려 정갈하게 등장한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국물을 맛보면 심심하니, 따로 내주는 양념장을 기호에 따라 넣어 먹으면 된다. 주인의 솜씨가 느껴지는 양념장은 직접 담근 간장으로 만든다. 보통 국숫집 반찬은 김치가 기본이건만 옥동손국수는 조를 넣은 밥과 반찬이 풍성하고 모두 알차다. 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쌈밥을 먹고 나온 기분이 들 정도다.
- 시간 11:00~22:00
- 주소 경북 안동시 복주1길 51
- 문의 054-855-2308
장맛의 스펙트럼, 강원도 장칼국수
막국수 못지않게 강원도를 대표하는 국수, 바로 장칼국수다. 간장·고추장·된장 등 장문화가 발달한 강릉·속초·양양 등지의 칼국수는 멸치를 기본으로 한 국물에 장을 넣는다. 보통 이 지역에서 손칼국수라고 부르는 메뉴는 대부분 장칼국수다. 다만 고추장과 된장의 양에 따라 칼칼하거나 구수한 맛이 나뉜다. 지역마다 칼국숫집마다 된장과 고추장의 비율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강릉·속초 지역은 된장과 고추장을 섞고, 양양은 고추장을 많이 쓰는 편이고, 원주는 된장을 더 많이 쓰는 편이다. 국수 애호가라면 강원도 지역마다 장맛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속초 왕박골식당
모름지기 칼국수는 칼로 직접 썰어야 맛이다. 그래야 매끈하지 않은 투박한 면발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속초시 장사동에 자리한 왕박골식당은 두툼하고 탄력 있는 면발에서 주인의 손맛이 느껴진다. 이 집 장칼국수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데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넣어 벌겋다. 칼국수와 어우러진 건더기인 감자와 호박 이외에도 소라를 건져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면발을 받쳐주는 국물 맛은 탁하지 않고 개운하다. 손칼국수에 어울리는 최적의 국물이다.
- 시간 10:00~20:00(첫째·셋째 월요일 휴무)
- 주소 강원 속초시 중앙로 431
- 문의 033-632-5524
글 문경옥 사진 임익순 참고도서 '음식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