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보이에서 지원 스태프까지…오현규, 묵묵히 벤투호를 흡수했다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낸 축구대표팀에는 27번째 선수가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예비 명단으로 간 공격수 오현규(21, 수원 삼성)였다.
오현규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고심끝에 카타르 도하로 데려왔다. 부상으로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대체자 가능성이 있었다. 손흥민이 안와 골절으로 아물지 않았지만, 정신력과 안면 보호 마스크를 앞세워 뛰기로 결정하면서 오현규의 26명 합류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물론 극적 반전 가능성도 있었다. 황희찬(울버햄턴)의 허벅지 뒷근육(햄스트링)이 쉽게 낫지 않았고 벤투 감독도 우루과이와의 경기 하루 전까지 오현규의 최종 명단 합류 여부를 놓고 따졌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냥 두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황희찬의 상태가 좋아지리라는 믿음에서다.
꿈꿨던 월드컵을 벤치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지만, 오현규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어 있던 지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알 에글라 훈련장에서는 훈련 파트너로 몸을 던졌다. 대신 형들, 특히 손흥민, 황희찬 등 형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살폈다.
도하 입성 후 유니폼을 입고 기념사진 촬영에서 등번호가 없이 찍은 뒤 26명이 찍기 위해 자연스럽게 비켜주자 김영권(울산 현대) 등이 "같이 찍자"라며 위로 아닌 독려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벤투 감독은 오현규를 조용히 불러 훈련 방법부터 몸 관리 등을 전수했다고 했다. 시즌을 마감한 상황에서 합류해 긴장도를 높여야 했고 실전을 치르는 형들을 위해 평소 훈련보다 강도를 높이다가 허벅지 근육에 경련이 올 정도였다고 한다. 우루과이전 준비 과정에서 오현규가 훈련을 하루 빠졌던 것도 그 스스로 출전한다고 생각하고 훈련 리듬을 형들과 같이 가져갔다가 통증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오현규는 형들의 경기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해 경기 전 훈련에서는 연습복을 입고 골대 근처에서 형들이 슈팅한 볼을 찾아 돌려주는 '볼 보이'를 자처했다. 직접 볼을 주으러 가는 수고도 마다치 않았다.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슈팅하라고 볼을 주워 얼른 뿌려주는 일을 마다치 않았다.
행정(?)적인 일도 했다. 포르투갈전을 2-1 역전승을 거둔 뒤 손흥민이 울고 있자 휴대 전화를 들고 뛰어가 가나-우루과이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알림이' 역할도 마다치 않았다. 주장이 팀의 중심이기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더라도 조금만 늦게 흘리기를 바란 것이다.
8강 진출 여부가 달렸던 브라질과 16강전에서도 골대 근처에서 볼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같이 있던 지원 스태프와 웃으면서도 손흥민, 황희찬, 조규성(전북 현대) 등이 슈팅 동작을 눈으로 계속 넣었다고 한다.
대표팀 관계자는 "(오)현규는 숙소에서 선배 선수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수험생 같더라. 본인만의 비밀 노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배 공격수들의 장점만 다 썼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어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브라질도 마찬가지였다. 상대 같은 포지션 선수들의 움직임 등을 꼼꼼히 보더라. TV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관전 집중력이 대단했다. 본인 스스로도 26명 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외부에서 본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더라"라고 말했다.
16강 진출을 밖에서 기뻐한 오현규였다. 손흥민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오)현규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저 때문에 와서 희생한 선수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라며 "최종 명단에 들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월드컵에 함께 한 선수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현규는 내년 9월 예정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나 2024년 1월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에 중요하게 활용될 자원이다. 사실 김천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쳐 연령별 대표팀보다는 A대표팀에서 활용하는 것이 맞는 측면도 있다. 차기 사령탑이 오현규를 어느 대표팀에서 활용할 것인지 중요한 숙제가 주어졌다.
[스포티비뉴스=도하(카타르), 월드컵 특별취재팀 이성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