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율 자랑한 프랑스가 드라마틱한 상승을 이뤄낸 비결
강신욱 통계청장에 따르면 올해 합계 출산율이 1.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율이 2.1명인데, 그 절반도 안되는 수치로 떨어져 인구 감소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측인데요.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보다 현실적인 출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출산율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나라는 한국말고도 많습니다. 출산율 하락의 늪에서 효과적으로 탈출한 국가로는 흔히 프랑스를 꼽는데요. 1993년 1.65명까지 떨어진 출산율에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2010년에는 합계 출산율을 2.03명까지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과연 프랑스는 어떤 정책을 폈기에 이렇게 드라마틱한 출산율 상승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때 되면 알아서 수당 지급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있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겠죠. 프랑스는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더 많은 액수의 육아 수당을 지급하는데요. 이 정도는 한국에서도 하고 있지 않냐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올해 9월부터는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가정의 만 5세 이하의 아동 1명당 매월 10만 원의 수당을 총 72개월간 지급하는 아동수당 제도가 새로이 도입되기도 했죠.
프랑스는 지급되는 수당의 범위와 액수, 지급 방법이 한국과 조금 다릅니다. 16세 이하의 자녀가 두 명 이하인 경우 113.15유로, 세 자녀는 258.12유로, 네 자녀는 403.09유로를 모든 가정에 매달 지급하는데요. 신생아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또 따로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 만 3세가 될 때까지는 1명당 매달 160유로가량을 국가에서 별도로 지원한다고 하니 자녀 1명당 총 지원금액도 한국보다 많겠죠. 부양 자녀가 2명 이상인 경우 별도의 신청 없이도 자동 지급된다는 것도 큰 메리트입니다. 한국의 경우 본인 가정의 소득수준과 재산을 직접 계산해 혜택의 대상인지 알아봐야 하고 때맞춰 신청해야 수당이 지급되는 데 반해, 프랑스의 가족수당은 출산, 보육, 취학 등 거의 모든 시점에 맞춰 알아서 지급되니까요.
교육은 모두 국가책임
최근 국내 사립유치원의 비리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죠. 유치원을 믿고 비싼 원비를 내며 자녀를 보냈던 부모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프랑스에서는 이런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과정이 사실상 무료인데다 유치원의 99%가 공립이고, 감시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서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립 유치원 예산의 절반은 국가가 대고, 40%는 지자체에서 담당하며 지역 교육청이 철저히 통제한다고 하는데요. 연간 계획에 따라 예산을 빠듯하게 할당하고, 집행도 교육청이 직접 담당합니다. 특별활동 등으로 인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면 학부모 회의까지 거쳐야 하니, 유치원 예산을 빼돌릴 궁리를 하는 시간에 투잡을 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실제로 프랑스 유치원 선생님들은 "공책 한 권도 승인받고 사야 한다"라며 불편을 호소할 정도라고 합니다.
경력단절 방지! 탄탄한 육아제도
현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겠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죽어라 취준해서 회사에 들어갔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사회에 내 자리는 없어진다면? 사랑스러운 아이가 주는 기쁨과는 별개로 내 인생은 뭘까? 하는 생각,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우려해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는데요. 우선 쓸 수 있는 휴직 기간의 길이가 한국에 비해 현저히 깁니다.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육아 휴직 기간은 1년이죠. 그나마도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는 육아 휴직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퇴직을 유도하는 등 편법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육아휴직은 최대 3년까지 가능하고 그 기간 동안 매달 512유로(약 65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요. 자녀의 질병, 사고, 장애의 경우 1년간 연장도 가능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여성에게는 3년 동안 매달 340유로를 사회보장기금에서 지급한다고 하네요.
육아휴직을 여성만 사용할 수 있다면 불공평하겠죠? 여기서 약간 놀라운 사실 하나. 법적으로 남성이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한국이 52.6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긴 축에 속합니다. 그러면 뭐 하나요, 사회적 분위기상 사용할 수가 없는데요. 한국에서 남성 육아휴직의 실제 사용 비율은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아직 전체 육아휴직의 8%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프랑스 남성들은 자신 있게 육아휴직을 신청한다고 하는데요. 프랑스는 남성의 62%가 육아 휴직을 사용하며, 고용주가 육아휴직과 관련한 기록을 제출할 의무가 없어서 실제 휴직률은 이보다 높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혼외 출생 자녀도 적극 지원
한가지 더 눈여겨볼 지점은 결혼하지 않은 커플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아직 미혼부모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데요. 프랑스는 시민 연대협약(PACS)이라는 제도를 마련해,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커플들이 모든 혜택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협약을 맺은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결혼한 커플의 아이들과 똑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요. 이 제도의 도입 이후 1994년에는 37.2%에 그쳤던 혼외 출산율이 2015년 56.7%로 올랐다고 합니다. 낙태를 금지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낙태율이 줄어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정책을 살펴보고 나니 단순히 자녀당 수당만 지급하거나 결혼과 출산을 압박하는 정책으로는 인구 절벽을 결코 피해 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도 힘들고요. 실제로 2016년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의 분포도를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 지도'에 많은 여성들은 "내가 가축이냐"라며 분노하기도 했는데요.
아이는 낳기만 한다고 저절로 자라서 국가를 위한 일꾼이 되지는 않죠. 아이를 낳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모여 국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OECD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현실 육아의 고충을 반영한 보다 효율적인 대책이 하루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