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한라산으로 가자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기쁜 일도 있었겠고 힘든 일도 있었겠지만 늘 그렇듯 돌아보면 후회만 가득하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후회 따위의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기엔 정신이 번쩍 드는 겨울 산행이 제격이다. 그래서일까. 유독 많은 사람이 치친 영혼을 달래기 위해 겨울 산을 찾는다. 어찌 보면 백년도 못 사는 인생, 무에 그리 아등바등하면서 살고 있는지 산을 올라보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온 세상이 얼어붙는 겨울. 일 년 내내 땀 흘린 모든 것들은 잠시 성장을 멈추고 안으로 움츠러들어 다시 꽃 피울 봄을 위해 스스로를 보듬는다. 후회만 가득하다고 해도 괜찮다. 이 겨울에 나를 잘 보듬고 다독이다보면 다시 꽃 피울 봄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겨울의 한라산은 겨울왕국으로 변한다 |
겨울에는 한라산 영실이라고 전해라~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눈꽃 핀 겨울산행에 대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은 바로 한라산. 일 년 내내 기다린 한라산 눈꽃산행이다. 그런데 어쩌지? 한라산을 오르는 탐방로만 줄잡아 6개다. 관음사 탐방로, 성판악 탐방로, 돈내코 탐방로, 어리목 탐방로, 영실 탐방로, 어승생악 탐방로는 저마다의 황홀한 경치를 자랑하며 나에게로 오라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말한다. 겨울 한라산은 영실이라고. 영실 탐방로는 영실 휴게소에서 시작해 영실기암, 윗세오름을 거쳐 한라산 남벽분기점에 이르는 약 7.9km로 성판악탐방로나 관음사탐방로 코스에 비해 등산 거리도 짧고 초반 능선을 제외하면 큰 어려움 없이 초보자도 쉽게 한라산을 오를 수 있다. 영실 탐방로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짧은 등산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오름과 한라산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연 휴식제에 따라 한라산 정상 탐방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풍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영실 탐방로를 걷다 보면 그런 아쉬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 된다.
영실탐방로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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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탐방로에서는 감탄사가 연신 쏟아져 나온다. |
애 달고 애달픈 풍경, 영실기암(靈室奇巖)
확실히 영실 탐방로는 달랐다. 본디 등산이라는 것이 정상까지 가파르고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하는 것이거늘 영실은 입구에서 출발한지 30분을 지나면 바로 능선이 나타나고 시야는 탁 트인다. 앞에는 눈 덮인 겨울왕국 한라산이 버티고 있고 뒤로는 제주의 크고 작은 오름이 능선 아래로 펼쳐진다. 상고대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걸어가는 풍경은 신이 내린 풍경인가 싶다. 연신 쏟아지는 감탄사는 이미 쌓인 눈보다 더 많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이하게 생긴 수백 개의 기암절벽 ‘오백나한’과 수많은 바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병풍바위’가 있는 영실(靈室)의 풍광은 석가여래가 설법을 하던 영산(靈山)과 비슷하다고 하여 영실이라 부른다고 하더니 가히 절경이다. 이렇게 멋진 풍경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문대 할망의 설화가 마음을 울린다.
영실기암 |
설문대 할망에게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에게 죽을 먹이기 위해 큰 가마솥에 죽을 끓이다가 실수로 설문대 할망이 솥에 빠져 죽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여느 때 보다 더 맛있는 죽을 먹었고 가장 마지막에 죽을 푸던 막내가 뼈다귀를 발견했다. 엄마의 고기를 먹은 형제와 같이 살 수 없다며 울부짖던 막내는 차귀도로 가서 바위가 되었고 나머지 499명의 형제는 한라산으로 올라가 바위가 되었다. 그래서 이 바위들을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고 부르고 있다. 애 달고 애달픈 설화 때문인지 바위를 쳐다보는 마음은 절로 숙연해졌다. 오백장군들은 한라산인 엄마의 몸에 제 몸을 기대어 봄이면 붉은 봄꽃이 장관을 이루고, 여름이면 구름이 몰려오고, 가을이면 만산홍엽의 단풍이, 겨울이면 눈꽃이 피어 천년이고 만년이고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자지왓 |
한라산 고지대의 들판, 선작지왓
영실 기암을 지나면 영실기암에 감탄한 것도 잠시 화려한 상고대가 연출되는 구상나무 군락지가 또 다른 감동을 선물한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사는 나무로 한라산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언뜻 보면 죽은 나무처럼 보이는 구상나무지만 해마다 겨울이면 눈꽃 옷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 풍경 앞에 인간의 백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윗세오름까지 더 이상 가파른 길은 없다. 평지라고 해도 좋을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바로 선작지왓이다. 서 있다는 의미의 ‘선’, 돌의 ‘작지’, 들판을 의미하는 ‘왓’이 합쳐서 만들어진 제주 말이다.
한라산의 광활한 평원 ‘선작지왓’ |
구상나무 군락지 |
한라산 중턱 고산에 펼쳐진 믿기 힘든 대 평원은 봄에는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뒤덮으며 산상화원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겨울이면 눈 덮인 설원의 광활한 대평원이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는 선경(仙景) 앞에 절로 혼이 나간다. 맑고 화창했던 날씨는 어느새 다시 눈보라가 치며 순식간에 눈앞의 한라산마저도 지워버렸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화창해지며 한라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덕을 부리는 한라산의 날씨와 마주해야 하는 겨울 산행. 그 변덕 앞에 무심(無心)하라 내 안의 목소리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한라산이 곧 나요, 내가 곧 한라산이었다.
영실탐방로 대피소 |
한라산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산220-1
전화번호 : 064-713-9950
입장료 : 무료
주차료 : 승용 \1,800 경형 \1,000 버스 \3,700 이륜 \500
탐방로 : 관음사탐방로(총거리 9.1KM / 관음사지구야영장-정상) / 돈내코탐방로(총거리 6.71KM / 돈내코탐방안내소-남벽문기점) / 석굴암탐방로(총거리 1.74KM / 충혼묘지주차장 – 석굴암) / 성판악탐방로(총거리 9.77KM / 성판악탐방안내소 – 정상) / 어리목탐방로(총거리 6.5KM / 어리목탐방안내소-남벽분기점) / 어승생악탐방로(945M / 어리목탐방안내소-어승생악) / 영실탐방로(총길이 7.92KM / 영실탐방안내소-남벽분기점) / 호구산추천코스(총길이 7.04KM / 용소마을-당항마을)
한라산 홈페이지 : http://www.hallasan.go.kr/
Tip. 영실입구에서 등산로가 있는 입구까지 약2.5km 정도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영실입구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전용택시가 운영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한라산 탐방이 통제될 수 있으며 등산 코스별 입산 및 하산 통제 시간이 있으니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확인하자.
에디터 정해경 포토그래퍼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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