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커피' 스페셜한 고집
커피 리브레 서필훈 대표 인터뷰 #1
스페셜티, 큐그레이더, 커핑 등등 요즘 거리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단어들이다. 주요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들도 별도의 프리미엄 커피샵을 오픈하면서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철학과 브랜드로 일찌감치 탄탄한 입지를 쌓아가고 있는 커피덕후(?)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대한민국 큐그레이더 1호인 커피 리브레의 서필훈 대표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그를 만나보기 위해 요즘 핫하다는 연남동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연남동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하고 동네주민에게 욕 한 사발을 듣는 것으로 연남동 무식자의 신고식을 마친 후 (정말 몰랐어요;;) 카페 리브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커피 리브레 사무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연남동 주택가에 생뚱맞게 있는 사무실이었지만 영화 ‘나초 리브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레슬링 마스크 모양의 간판 덕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연남동 주택가에 위치한 커피리브레 간판. 정말 생뚱맞지않은가?
서 대표가 즉석에서 내려주는 이디오피아 예가체프를 마시며 커피 리브레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Coffee with Face
커피 리브레의 회사 모토는 원래 ‘우린 아마 안될거야(We could probably not)’였다. 매일 같이 실패하고 돈도 못벌고 뭐 하나 잘 되는게 없었으니... 어쨌거나 모토대로 늘 100% 달성하는 리브레였다. 반어적인 의미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리브레가 가고자 하는 길은 성공이 보이는 길, 안전하고 안일하고 보장된 길이 아니라 스스로 실패할 것을 알면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른 길을 가겠다 뭐 이런 거를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아요. 거창하게 우리는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기겠어!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면서…”
커피리브레의 심장과도 같은 로스팅 기계 앞에서 한 컷!
이렇듯 패기 넘쳤던 모토가 바뀌었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안정적인 기반(수익구조 같은)의 시스템들이 갖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직원들이 더 마음 편하게 일하고 커피에 집중할 수 있어야 좋은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지금은 ‘Coffee with Face’다. 얼굴 있는 커피. 얼굴이라는 건 아이덴티티고 리브레는 아이덴티티가 있는 커피를 사용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커피를 추출할 때 그 관계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 사람들의 노고와 품질에 대한 헌신 같은 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자는 결의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뭐 망하면 나 혼자 에이씨 망했네~ 딴 거 하자. 근데 이제는 우리 직원들이 스물몇명인데 그렇게 하는 건 인간으로서 할 짓은 아니다 그런 생각 했어요.”
고집쟁이 리브레
서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음 가는 어떤 대상에 대해 노력과 영감을 불어넣어 그 대상을 한 차원 높은 것으로 진화시키는 데에 매력을 느낀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일반적인 경영 마인드로는 이해하기 힘든 고집들로 가득했다. 품질의 정점에 있는 생두만을 선택하겠다는 고집, 신선도를 위해 3~5배 비싼 냉장 컨테이너에 대한 고집, 로스팅 후 일주일된 원두를 폐기하는 고집이 바로 그것들이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그러한 눈높이와 정성을 목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문득 그 고집들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맛있다고들 하는 '로스팅한지 일주일된 원두'를 왜 폐기하는 걸까? 서대표는 '당장이 맛있는 타이밍이지만, 고객이 언제 마실지 모르니까...'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경영 마인드는 달나라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고객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아까운 원두가 전부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장애인 바리스타 실무 교육을 위해 기부되고 있다.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곳에 쓰여지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힌 재활용 아닌가!
“저 혼자 만족하는 거죠 ‘우와 너무 기분 좋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저는 어차피 큰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고, 제가 시작한 게 돈도 중요하지만 돈 때문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거에 있어서는 한번도 흔들린 적 없는 거 같아요”
리브레의 고집결정체. 라벨과 바닥엔 농장정보와 로스팅 날짜가 있다.
한 번은 로스팅이 잘못돼서 하루 전에 볶은 3천만원 어치 원두를 다 버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상태로 판매됐어도 90%의 사람들은 ‘맛있네’ 하고 먹었을 수준이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유일하게 관심갖고 있는 커피에 대해 3천만원 때문에 안좋은 마음으로 대하거나 스스로를 속이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고 했다.
“저는, 그 3천만원이 왜 중요하지 않겠어요. 나는 돈도 하나도 없는데, 나는 정말 아직도 50만원 짜리 고시원같은 원룸에서 살고 있고 16년 된 차를 타고 다니고 옷도 막 아무렇게 입고…..”
귀차니스트 리브레
카페 리브레에서 판매되는 커피 메뉴는 전부 4,000원 균일가다. 메뉴가 많진 않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우유나 얼음이 들어간 커피 가격은 재료비를 감안해서라도 달라야 정상일 것 같았다.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게도 ‘귀찮음’ 때문이라고 했다. 애당초 로스팅만 하다가 카페를 오픈한 이유를 들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간다.
“로스팅도 추출도 모두 요리의 과정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그냥 놓아버리고 납품만 하는 건 성이 안차는거야. 우리가 생각한 생두 구매부터 로스팅하고 추출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커피 맛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곳이면 돼요. 하루 5만원만 벌자! 그러면 뭐 4500원 5500원을 할 게 뭐가 있어요……”
커리 리브레의 메뉴판에도 적혀있듯이 이게 전부다
지금도 커피 메뉴는 딱 네 가지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유명한 식당들과 같은 이유라고 했다. 맛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서대표의 취향도 한 몫 했겠지만 커피 맛을 아는 이들을 향한 리브레의 또 하나의 고집이기도 했다.
“저는 그냥 이 세상 사람이 전부 제 고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작품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한테 칭찬받고 싶지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아 뭐 그냥 유명하다니까’ 이런 사람이 주는 칭찬에는…… 물론 커피를 사주셔서 감사하지만 저한테는…..”
한국, 리트머스, 호구...
‘뭐든지 꽂히면 불타오르는’ 나라답게 세계 원두 경매에서도 한국은 싹쓸이에 가까운 활약을 보인다고 한다. 요즈음 한국의 원두커피 시장은 어떤 상황일까? 서대표는 이해하기 쉽게 주변 나라들과 비교해 주었다. 경제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일본은 여전히 앞선 시장이고 소비도 많지만 지금은 침체기고, 중국은 품질은 부족하지만 원두시장이 본격화되는 도입기고, 한국은 지난 수 년간 그래왔듯이 성장기라고 했다.
“ 한국 사람들 굉장히 똑똑하고 또 집중력도 좋고 그래서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그냥 경제하고 비슷한 거 같아요. 지금 한국 경제는 사실 약간 시원찮지만 커피는 지난 7-8년 동안 엄청 빠르게 성장했죠. 한국 시장이 이제 중국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 시장, 즉 리트머스 시장 같은 성격이라고 해서 해외에서도 정말 많이 와요.“
전세계에서 모여든 샘플 원두. 리브레의 눈높이를 통과할 수 있을지……
세계 커피 업계에서 바라보는 한국 시장은 ‘일단 돈 될 것 같은’, ‘돈은 좀 있는데 커피는 잘 모르는 거 같은’ 이미지라고 했다. 실제 호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원두, 장비 등등 엄청난 소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의 수준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결국 수준이라는 것이 대중의 눈높이에 따라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 믹스커피가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던 시절엔 관련 상품과 산업이 발달했듯이 원두, 더 나아가 스페셜티 시장도 대중의 눈높이 변화에 따라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도토루라던가 이런거 너무 일찍 들어와서 망한거야. 근데 이제 스타벅스가 1999년에 오픈했는데 그 쯤되니까 이제 눈높이가 맞으니까 빵 터진거에요. 그런 거처럼 이 눈높이가 높아지지 않으면은 들어오는 것들 중에서 흡수 되는 거도 적고 그런거죠.”
커핑 수업과 책
아직은 생소한 커핑(Cupping)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맛보기’다. 커핑수업은 커피맛을 보고 평가하는 것을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마치 와인 감별하는 소믈리에처럼. 국영수처럼 평가해야하는 과목도 있다고 했다. Acidity, body, flavor, clean cup, taste 등등. 수업은 학생(?)들이 평가한 맛에 대해 서대표가 코멘트하고 바로잡아주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수업 잠깐 들었다고 혀에 봉침 맞은 장금이처럼 미각이 깨어나진 않기 때문이다. 미각은 철저한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저는 초콜릿이나 와인에 대해서 감별 능력이 없어요. 많이 먹어보지 않았고 훈련받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해야 되는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나는 커피맛은 잘 모르겠어’라고 하는데, 그건 많이 안먹어봐서 그런 거에요. 그렇게 ‘나는 미각에 굉장히 둔한 거 같다’는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 먹을거구 자기가 좋아하는 삼겹살집 가자고 할거구…. 그건 미각이 다 있다는 거에요. 커피쪽으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고 발달하지 못한 거에요.”
커핑(Cupping) 수업장면 (출처: 서필훈 대표 페이스북)
서대표가 4년에 걸쳐(이 대목에서 서대표의 깊은 한숨이...) 감수한 ‘커피 생두’라는 책에서 꼭 읽었으면 하는 파트에 대해 추천을 부탁했더니 의외로 긴 답변이 나왔다.
“그게 정말 재배하는것부터 유전자, 식물학적 기원, 거름주는법, 가지치기 같은 것부터 가공하고 선적하는 전 과정이 나와있어요. 어떻게보면 ‘내가 그거 가지치기 하는 걸 왜 배워?’ ‘퇴비 주는 걸 왜 배워?’ 사실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커피 특히 스페셜티 커피하는 사람, 재료가 좋아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가공’서부터는 최소한 보셔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스페셜티 커피라는 것은 보통 ‘산지의 좋은 재료들이 한 잔의 컵에 이르기까지 표현된 커피’라고 정의하는데, 그렇다면 그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걸 우리는 과연 좋은 재료라고 해야하는거고 어떤 케어 속에서 만들어야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스페셜티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내내 서대표의 말 중에는 두 단어가 말버릇처럼 자주 등장 했다. 그것은 ‘어떤’과 ‘더’. 그것은 어쩌면, 안정된 기존의 틀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어떤’것을 추구하고 세상의 눈높이를 초월한 최고의 커피를 위해 항상 ‘더!’를 외치는 그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입에 밴 단어가 아닐런지...
‘어떤’과 ‘더’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오는 커피 리브레의 원두
서필훈 대표의 커피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는 그의 글에서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