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생활의 현실을 보여주마 「백성귀족」
1만 시간의 법칙 #1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일이든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꼭 골인 지점이 존재하는 일을 해야 할까? 그냥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안 되는 걸까. 하루에 딱 1시간.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 목적을 가지고 달리는 대신에, 한숨 돌리면서 느긋하게 나만 생각하는 1시간을 통해 내일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의 에너지를 충전해보자.
번잡하고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자. 땅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바쁠 것 없이 느긋하고 한가롭게, 내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한 대로 거두고, 하늘과 땅과 자연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자. 도시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귀농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럴까? 먼 곳에서 조그맣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 맘대로?” ―――그래. 이게 정답이다. 누구 맘대로.
농촌은 도시에 비해서 편하다? 한가롭다? 뿌린 만큼 거둔다?? 이게 얼마나 철없는 소리인지를 알게 하고, 그럼 진짜 농촌은 어떤데? 라는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주는 책, 그것이 바로 「백성귀족」이다. 덤으로 만화다. 그런데 무지막지할 정도로 리얼이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만화책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여류 만화가 아라카와 히로무. 그녀는 잡지연재 중 출산을 했음에도 단 한 회도 휴재가 없었다는 에피소드로도 유명하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이 책에 있었다. 만화가가 되기 전 약 7년간 홋카이도에서 농업에 종사했던 그녀. 어린 시절부터 육체노동과 빡빡한 농사 스케줄로 단련된 그녀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삼시세끼는 저리가라, 이게 바로 리얼 농촌이다!
ⓒ아라카와 히로무, (주)사이언스북스 |
「백성귀족」은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려낸, 웃음과 상식, 부조리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농촌 만화다.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만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2016년 1월 현재 3권까지 발매되었다.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 리얼한 농촌 이야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 그런 것은 씨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농사일은 연중무휴이며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은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낸 피땀 어린 산물을 천재지변이 쓸어가기도 하고, 잘 익어서 수확해야지 생각하면 야수형 도둑들이 싹 먹어치우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인간형 도둑들이 밭을 통째로 털어가기도 한다. 열심히 소를 키워서 우유를 생산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산조정 통보가 오면 열심히 짠 우유를 그대로 내다버려야만 한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농촌에서는 해당되지 않나보다. 이런 부조리함이 있나?! 농촌생활, 역시 쉽지 않다. 삼시세끼 속에 등장했던 그런 꿈같은 생활은 역시 TV에서만 가능했나보다.
당신이 어떤 장르를 좋아하든 여기엔 다 있습니다!
ⓒ아라카와 히로무, (주)사이언스북스 |
그녀의 유쾌한 일상은 결코 한 가지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피범벅이 된 사슴 뒷다리가 현관에 굴러다니는 호러물(동네 사냥꾼 아저씨의 선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연어가 밭에서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판타지물(태풍으로 인해 개울이 범람하여 연어가 밭으로 밀려올라옴)이 되기도 하며, 고기로 처분하기 위해 가축운반차로 옮기는 도중, 차로 올라가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가 등장하는 감동 드라마(오래 키운 소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한다)일 때가 있는가 하면, 돌돌 말아놓은 목초 위에 가만히 앉아서 평화롭게 울타리 밖에서 양을 구경하는 곰을 향해 총을 겨누는 헌터가 등장하는 비극물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어떤 장르를 좋아하든 맞춤형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정말 지루할 시간이 없이 다양한 장르를 오간다. 그 속에 사람에 대한 휴머니즘도, 동물을 향한 따스한 마음도 존재하며, 저절로 입가에 미소 지어지는 이야기가 한 가득 존재한다. 저런 농촌 생활은 사양이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도 한번쯤은 저렇게 살아보고 싶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리얼한 스토리가 가지는 마력이다.
애들은 좀 한가하지 않을까?!
엄청나게 바쁜 일상을 보내는 어른들에 비해, 농촌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 않을까? 이곳 어른들의 생활을 보면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시간도 없어 보이니 말이다. 훗. 그럴 리가. 농업 고등학교의 일상도 만만치 않다.홋카이도 농업 고등학교 출신인 그녀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어른들만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농촌에서는 애어른 구별도 없다! 어리다고 봐주는 것도 없는 농고의 무시무시함이 펼쳐진다.
일단 면적이 100헥타르(30만평이 넘는 크기임)가 넘는지라 정문에서 학교 건물이 안 보일 지경인 학교에서 보내는 생활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1미터씩 눈이 와도 씩씩하게 눈을 치우면서 매일 아침 축사에 가서 동물들을 돌보고, 수업을 듣는 사이사이에 난무하는 각종 실습과 부활동 등으로 인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육체노동으로 채우고 있으면서도,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서 집안일(즉 농사일)을 돕다가 학교로 돌아와서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단련이 되다보니 저런 어른들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선행학습의 무시무시함은 이런 곳에서도 발휘되는가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육체노동으로 꽉 채우는 바람에 나름 평화로운 사춘기를 보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데에 쓸 여력을 모두 육체노동으로 발산하게 만드는 훌륭한 교육법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이런 농업 고등학교 에피소드는 그녀의 최신작인 「은수저」에서 보다 자세하게 만나볼 수 있다.
ⓒ아라카와 히로무, (주)사이언스북스 |
괴짜 유전자의 무시무시함?!
ⓒ아라카와 히로무, (주)사이언스북스 |
가족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라 할 수 있다. 홍수로 무너진 다리를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콱 밟아서 뛰어넘는 것쯤은 대수롭지도 않은 아버지의 각종 일화부터,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지고도 느긋하게 앉아서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전지전능한 능력을 자랑하면서도 “내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된 줄 아니?”를 외치는 완벽한 슈퍼맘 어머니, 60세의 나이에도 운전을 배워서 트랙터를 몰고 다니시는 할머니 등등 타고난 DNA의 우월함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우애 좋은 가족뿐 아니라, 물물교환을 통해 먹거리를 나누는 이웃들의 모습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쌍문동 사람들을 연상하게 한다. 어느새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이웃 간의 정은 품앗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하루 24시간을 빼곡하게 채운 밭일과 소돌보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피로에 지쳐서 쓰러지면 옆 사람이 대신해주기 위한 것이니 과연 이웃간의 정이 맞나?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만.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른다?
실제로 겪었던 많은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게 엮어낸 이야기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겁게 웃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일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해야겠다. 태풍이 불어도, 우박이 떨어져도 어쨌든 출근을 하면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잖아?” 오늘도 좋은 교훈을 얻고 마음도 힐링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 가지의 아쉬움만을 제외한다면. 노후에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은 이 책을 읽고 깨끗하게 접었다. 이제 새로운 노후 계획을 세워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