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집사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시마시마 에브리데이」
1만 시간의 법칙 #2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뭔가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 날 반겨주면 좋겠다!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뭔가를 키우려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지만 고양이와 한 공간에 오래 있으면 가려움증이 도지는 현실 속에서 키우는 것은 무리. 그러니 대리만족이라도 좀 해보자! 오늘의 1시간은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상상하며 보내보자.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나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보면 저절로 입가가 풀어지고 엄마 미소가 떠오르면서 아구아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예쁘다, 참 예쁘고 귀엽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 소위 집사들은 툴툴댄다. 저런 사진 속의 예쁨은 잠시뿐이야! 그거야 당연하지. 사진 속의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들은 물지도, 짖지도 않고, 털을 내뿜지도 않으며 화장실도 안 가는걸.
그러니 실상이 많이 다를 거라고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인지는 확 와닿지 않는다. 그런 현실에 이게 바로 집사의 리얼 라이프야! 라고 실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시마시마 에브리데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면서 시마시마는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궁금했는데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라고 한다.
일본의 여류만화가 TONO는 아주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만화가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독특하고 특이한 것들이어서(기괴한 쪽은 아니지만) 이게 바로 부조리극이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이건 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니 궁금하시면 그녀의 작품을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그런 TONO는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무려 9마리의 고양이를 키운 그녀가 각자 개성이 다른 고양이들과 보낸 재미있는 일상이 담겨 있다. 보고 있으면 정말 그녀의 생활이 눈앞에 그려진다. 집사의 삶도 결코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면서 말이다.
천차만별 고양이의 개성, 그 모든 것을 맞추는 위대한 집사의 탄생
그녀는 모두 9마리의 고양이를 길렀다. 그런데 어찌나 성격이며 취향이며 하는 짓이 다 다른지 놀라울 정도다. 사람이랑 같이 목욕하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 시마, 음침하고 어두운 성격으로 살육 취미가 있으며 여자애 주제에 발소리를 쿵쿵 내면서 다니는 고양이 싯뽀, 수술하고 나서 마취가 풀리자마자 고정해놓은 실밥을 모두 뜯어버리는 성격 있는 냥냥이 등등. 각자의 성격이 워낙 다르다보니 별난 에피소드들도 많다.
ⓒTONO/씨네21 |
집에서는 같이 키우는 고양이에게 구박받고 괴롭힘을 당해서 집사들이 매번 사랑해주고 더 신경 써주고 감싸주는 애가 집 밖에 나가면 남의 집 고양이를 옥상에서 밀어서 떨어뜨리고, 쥐를 잡아다가 집사들에게 가져다주는가 하면 가끔은 반쯤 죽은 참새도 물어와서 집사들을 기함하게 한다.
자신에게 늘 언제나 24시간 집중해주기를 바라기에 집사들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싶으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집사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고양이들은 불철주야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한다. 벽이나 가구를 박박 긁어서 맨션 값도 좀 떨어뜨려 주고, 책상이나 식탁 위에서 달리기를 해서 와장창 쿵쾅 사고를 치고, 사료를 먹고 그 먹은 에너지로 자라난 털을 사방에 뿌리고 다니고, 벽장에 들어가서 이불을 털투성이로 만들기도 하고. 집사가 잠시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집사는 이 모든 것을 인내하고 감수하며 청소하고 빨래하고 사료를 사오고 이불을 털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이 책에 실린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집사라는 건 하늘이 내린 직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전생에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오로지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렇게까지 아낌없이 바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심지어 그것도 좋아서! 자기 손으로 데려온 고양이 때문에! 박애란 이런 것이다, 라는 말이 뼛속 깊이 와 닿는다.
애묘인의 옆에는 반드시 애묘인이 있게 마련!
이 책에서는 TONO와 그 고양이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애묘인들의 일상도 담고 있다. 음침하고 자학하는 취미가 있는 고양이 히데키와 그 히데키의 편애를 받고 있는 주인 사토다. 5.5킬로그램이나 되는 고양이를 무릎 꿇은 자세에서 무릎 위에 얹고 12시간씩 보내는 그녀. 우와, 생각만 해도 다리가 저리는 느낌인데 그게 사랑이란다. 잘 때도 고양이를 배에 얹고 자던 그녀는 결국 허리병으로 병원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이렇게 우긴다. “의사가 고양이를 몸 위에 올려놔선 안 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안타깝지만 그녀는 이미 불치병인가보다. 안타까움의 묵념을. 좀 더 허리가 아파 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심지어 히데키는 정말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TONO가 장난삼아서 “히데키는 고도비만인걸” 이라고 말하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단다! 집사들은 모두 광분하여 세계 멸망이냐고 떠들어댔다고 하는데…, 오오 이 정도라면 역시 알아들으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게 맞긴 한가보다.
그 외에도 TONO의 여동생인 미쓰루의 육아+결혼 생활+직장 근무+고양이 뒷바라지라는 하드한 일상이라든가(사람이 이렇게 하면서도 용케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키우던 고양이 고론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병원에서 대성통곡하는 바람에 감동한 의사가 밤새워 고양이를 돌보게 만드는 아버지라든가(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결말에 헉. 속았다!), 고양이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거리낌 없이 고양이랑 같이 욕조에 들어가는 어머니라든가(털!!! 그 털이 둥둥 떠 있는 욕조!!!) 그녀를 둘러싼 애묘인들의 생활 역시 즐겁고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다. 고양이들이 여러 가지 타입이 있듯이 집사들 역시 여러 가지 타입이 있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고양이에 대한 무한애정을 보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리얼해서 좀더 감동적이다. 물론 몇몇 에피소드는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 알아듣고 있는 고양이, 하지만 모르는 척을 하는 것뿐?
집사들의 삶은 고달프다. 사람이라면 말을 하면 알아듣지만, 고양이들은 정말 알아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을 한다(고양이를 대해본 사람이라면 이 주장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람들이 안 놀아주면 일부러 책장 위 같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쪽으로 토한다든지. 놀아달라고 했는데 집사의 반응이 영 아니라면 일부러 보란 듯이 비닐 같은 재질 위에서 쉬를 한다. 혼내면 쉬를 뿌리면서 도망간다…. 또 종종 예고 없이 갑자기 토하기도 하는데 카펫이나 이불 위에 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걸 받아내야 하기도 하고….
ⓒTONO/씨네21 |
ⓒTONO/씨네21 |
어째서 다 알아들으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느냐고? 그게 더 편한 삶을 사는 방법이란 걸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
현실의 고양이를 볼 때도 종종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예뻐하는 사람에게는 차갑게 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엉겨붙고 그러다가 분위기가 영 안 좋다 싶어지면 선심쓰듯이! 도도한 발걸음으로 자길 예뻐하는 사람 곁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손을 뻗어야 만질 수 있는 아주 오묘한 거리를 두고. 컵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면 일부러 컵만 건드리고 지나가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내 손등 위에 와서 길게 엎드린다거나. 이 정도쯤 되면 이건 일부러 그러는 거지. 전부 알아들으면서 말이지.
물론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이 없는 건 아니다. 같이 밤 산책을 나갔다가 주인이 택시를 타고 놀러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헤어진 그 자리에서 차가운 몸에 목이 쉰 채로 가만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시마의 일상이나, 목욕하고 나온 주인과 함께 침대에 들어가는 하나의 에피소드, 바구니 안에 길게 누운 채로 한쪽 발만 살짝 밖으로 내뻗는다거나 봉지에서 굴러 떨어진 감자를 베개 대신 베고 누운 모델 같은 포즈의 시마 이야기 등등은 보기만 해도 오옷! 그래그래! 이런 장면을 꿈꾸는 거지! 라며 공감을 사기 충분하다. 다만 그 에피소드 앞뒤로 너무나 일상의 하드함이 펼쳐지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
하지만 생각해보면 고양이와 집사는 일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힘든 일도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귀엽고 좋은 장면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고 귀엽던 시절만 있는 것 역시 아니다(5.5킬로그램의 거묘 히데키를 떠올려보자).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고양이를 키우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 그럼 나는… 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다. 역시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우는 일에는 여러 가지 생각해야할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TONO 역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면서 가출해서 사라진 고양이도 있고, 수명이 다 되어서 죽어버린 아이도 있었다. 가출한 아이는 끊임없이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꿈꾸고, 죽어버린 아이를 위해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 아픔이 사그라드는 그날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써놓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주는 묵직한 책임감에 대해서는 모두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반려동물
고양이와의 일상을 재미있게 담은 이 책을 보면서 주변에 있는 여러 집사들에게 들은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역시 이 책의 에피소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고 있는 주인을 깨우기 위해서 손톱으로 책꽂이의 책을 떨어뜨리는 고양이라든가, 새끼를 자랑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로 하나씩 하나씩 새끼를 물어다놓으면서 자랑하는 고양이라든가. 고양이 관련 에피소드들은 정말 재미있고 놀라운 것이 많아서 들어도 들어도 늘 새로운 기분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니 시마나 하나, 피오레가 곁에서 우다다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한 생명이 주는 즐거운 일상을 맛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반려동물을 들이겠지만 그때가 되면 다시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겠지. 나와 인연이 된 이 반려동물을 위해서 내가 어떤 각오를 해야 하고, 나의 어떤 것을 양보하고 어떤 것을 서로 맞추어 나가야 하는지. 그 정도의 각오와 책임감을 감수하면서까지 키우게 될 그 반려동물이 어떤 동물이 될지 왠지 기대되는 봄날이다.
ⓒTONO/씨네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