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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그 주관과 객관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

맛은 주관적이지만 미슐랭, 와인 평가 등 객관적 시도는 논란을 불러일으킴

서울신문

2024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4위에 선정된 스페인 ‘퀴퀘 다코스타’ 레스토랑의 음식. 파인다이닝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감상하는 것처럼 지휘자와 연주자의 약력과 히스토리를 알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덕에 맛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짐을 느낀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음식과 맛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장면을 심심찮게 현장에서 체감하기 때문이다. 출연한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놓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새삼 입맛은 주관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각자의 경험과 기호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게 맛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적으로 맛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하나의 음식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때 그 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고수를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우리 요리에 마늘이 빠지지 않듯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중동 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다. 하지만 고수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고수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누 냄새가 나서 도저히 입에 대지 못한다고 한다. 분명 고수를 처음 맛봤을 때는 역한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고수에 포함된 알데하이드라는 성분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이 성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유전자가 있다 보니 반응이 엇갈리는 것이다. 맛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맛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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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4위에 선정된 스페인 ‘퀴퀘 다코스타’ 레스토랑의 음식. 파인다이닝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감상하는 것처럼 지휘자와 연주자의 약력과 히스토리를 알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맛에는 객관적인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논란은 많지만 그 위상으로 인해 인정받는 ‘미슐랭 가이드’가 그 예다.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 평가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태국, 일본과 같은 지역에서는 미슐랭의 평가 방식이 현지의 음식 문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는다.


비슷한 예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가 있다. 미슐랭 가이드와 함께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레스토랑 평가 리스트 중 하나지만 유럽과 북미의 레스토랑이 주로 상위에 선정되며 서구 중심의 맛 평가가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공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늘 제기된다. 이처럼 특정 문화권의 맛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음식을 평가하려는 시도는 객관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적 다양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면서 쉽게 논란거리가 된다. 기준이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해도 그 기준이 현지의 맛이나 대중의 인식과 괴리된 결과를 가져올 때 쉽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와인도 주관성과 객관성이 혼재하는 흥미로운 세계이다. 와인 평가에는 일정한 규칙과 기준이 있지만 여전히 개인적인 기호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맛이 강렬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섬세하고 부드러운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도입한 100점 만점 평가는 와인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으로 인식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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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퀴퀘 다코스타’ 레스토랑의 와인들. 와인 평가에는 일정한 규칙과 기준이 있지만 개인적인 기호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파커의 기준이 구세계 와인보다 신세계 와인, 즉 더 강하고 진한 향을 가진 와인에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의 다양한 와인 스타일이 파커의 입맛에 맞추어져 와인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 현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다른 와인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와인 평가라는 객관적인 시스템이 평론가의 개인적 취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많은 맛에 대한 콘텐츠 홍수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평가를 절대적인 맛의 기준으로 삼을지, 아니면 개개인의 입맛을 중요하게 여길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유명 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이 대단히 정교하고 정제된 맛을 선보이더라도 대중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고기와 야채의 익힘 정도가 어느 정도가 돼야 잘 익은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시대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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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파인다이닝을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라고 생각해 보자.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따분한 옛날 음악인 데다가 다른 지휘자, 연주자라고 해도 매 공연이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며 즐기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나올 수 있지만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것처럼 아는 만큼 맛볼 수 있는 장르도 있다. 맛이 있다 없다는 음악이 좋다 나쁘다를 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맛의 주관성과 객관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께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 중요한 건 맛에 대한 일차원적 반응, 즉 입맛에 맞다 아니다보다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낯선 맛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운 경험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단순히 누가 정한 리스트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기준을 갖고 맛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는 것은 음식을 먹는 일을 풍부하고 다채로운 경험으로 만들어 준다. 각자의 고유한 맛을 발견하고 서로의 맛에 대해 존중할 때 우리는 한층 더 맛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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