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죄가 없다? "마사지 말라" vs "착시현상일 뿐"
[이슈톡톡] 불붙은 통계청장 교체 논란
청와대가 지난 26일 단행한 통계청장 인사가 문책성 논란에 휩싸였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27일 이임식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게 심혈을 기울였다”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 윗선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 등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 뉴스1 |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의 효용성을 두고 여야가 연일 거친 공방을 벌이던 차에 각종 논의의 근거 자료를 생산하는 통계청 수장이 바뀐 것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청와대는 “통상적 인사”라며 경질 논란을 일축했다. 그러나 전임 통계청장인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상적 인사권 행사였다고 해도 논란을 뻔히 짐작했을 텐데 왜 이때 (인사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시기의 적절성 문제를 제기했다.
소득분배지표(5분위배율) 추이. 국가통계포털(KOSIS) 캡처 |
표본 설계 따라 소득주도성장 결과 갈린다?
통계청장 교체 논란은 통계청이 지난 23일 발표한 2018년 2분기(4∼6월)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의 표본 설계 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당 조사에서는 소득 양극화 정도를 나타내는 분배지표(5분위배율)가 5.23배로, 같은 분기 기준 2008년(5.24배) 이후 10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유한국당 등은 이를 근거로 ‘소득주도성장 무용론’을 내세웠다. 현 정부가 저소득층 소득 증대를 핵심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구했는데,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지적한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
여권의 시각은 달랐다. 해당 조사의 표본 설계 기준이 달라졌기에, 앞선 분배지표 수치와 단순 비교해 내놓은 해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통계청이 정확도 향상을 위해 지난해 조사에서 5500가구였던 표본 수를 올해부터 8000가구로 늘렸는데, 고령화 등 사회 변화의 여파로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인 1인·고령 가구가 이전보다 표본에 많이 포함됐다. 여권은 이로 인해 분배지표가 악화한 듯한 착시현상이 나타났다는 입장이다. 실제 같은 8000가구 표본이 적용된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의 5분위배율은 5.95배로, 2분기(5.23배)에는 그 수치가 낮아진 셈이다. 통계청도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전년도와 올해의 통계수치를 직접 비교해 결과를 해석하는 것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연합뉴스 |
野 “불이야 소리친 사람 나무라...코드 인사”
황 전 청장 경질 의혹은 이날 정치권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보수야당은 청와대가 통계청을 상대로 ‘징계성 인사’를 내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 김성태 위원장은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나라 경제가 불난 마당에 불낸 사람이 아니라 ‘불이야’ 소리친 사람을 나무라는 꼴”이라고,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마음에 안 든다고 통계청장을 바꾸는 걸 보니 향후 통계청 발표가 어떨지 걱정된다”고 각각 비판했다. 같은 당 주호영 의원도 정무위 회의에서 “국가통계는 신뢰와 정직이 생명인데, 통계를 소위 ‘마사지’하기 시작하면 국가 경제는 망하게 된다”라고,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예결특위 회의에서 “통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통계청장을 바꾼다면 문제”라고 각각 거들었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 청와대 제공 |
황 전 청장을 대체한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의 인선 배경에도 의혹의 눈초리가 이어졌다. 강 신임 청장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원 시절 8000가구 표본 설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고 이날 밝히면서다. 이에 보수야당 측에서는 강 신임 청장이 소득주도성장과 결을 달리하는 조사 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청와대가 이를 눈여겨보고 소위 ‘코드 인사’를 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與 “통계청장은 정무직…적극 해명했어야”
여권에서는 통계청이 표본 설계 변화가 분배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해석 오류의 여지를 남겼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예결특위에서 “조사표본을 늘리면서 빈곤층이 많이 포함된 표본이 추출됐다”며 “이런 부분들에 대한 설명과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조사된 5분위배율이 2003년 관련 통계 산출 이래로 가장 높은 5.95배로 나타나 이미 한 차례 ‘소득 분배 최악 수준’ 논란이 있었음에도 통계청이 이번 논란 전까지 8000가구 표본과 관련한 해명을 소홀히 했다는 뜻이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 연합뉴스 |
이날 언론 보도를 통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5월 재정전략회의에서 통계청 발표를 두고 “자료만 툭 던져 놓으면 결과를 왜곡 해석할 수 있다”며 질책했다고 알려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을 지낸 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장도 이와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황 전 청장과 대학동기였음을 밝히며 “보수언론과 보수당은 일제히 ‘고용·소득통계가 나빠졌기 때문에 화풀이 차원에서 경질했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명백한 왜곡”이라며 “통계청장은 차관급으로 정무직이다. 늘공(전문가)들이야 데이터와 통계로만 말을 해야 하겠지만 정무직인 통계청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데이터와 통계 해석에 대해 설명하고 나섰서야 했는데 계동향조사 등을 적극적으로 국정홍보 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