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 ‘뷰맛집’ 광치기해변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올레 1코스 끝에서 만나는 광치기해변 썰물때면 비경 드러내/외계행성 불시착한 듯 용머리해안·산방산 어우러지는 풍경 장관/월령리 선인장마을엔 하얀풍력발전기 어우러지는 동화속 풍경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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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과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파도가 조각했나 보다. 길쭉한 명란 덩어리를 차례로 늘어놓은 듯, 주름진 너럭바위들이 끝없이 펼쳐진 기묘한 풍경엔 억겁의 세월이 여지없이 지문처럼 박혔다. 그리고 뜨겁게 흐르고 흐르다 바닥까지 투명한 차갑고 푸른 바닷물을 끌어안고 멈춘 용암의 흔적들. 종달리 해안도로 따라 시원한 바람 맞으며 신나게 달려 광치기해변으로 들어서니 수십만 년 전 자연이 빚은 위대한 작품, 성산일출봉이 눈앞에 선 풍경이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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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1코스에서 만나는 광치기해변
아름다운 제주 올레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를 꼽으라면 1, 2코스다. 길을 따라 주변에 우도,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등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들이 몰려 있어서다. 그중 1코스는 14.6㎞, 약 4~5시간 걸리며 오름과 바다가 이어진다.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머리를 닮은 말미오름을 거쳐 새알을 닮은 알오름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검은 돌담을 두른 푸른 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어 종달리사무소∼종달리 옛 소금밭∼목화휴게소∼성산갑문입구∼수마포까지 평탄한 코스가 이어지며 길 끝에서 광치기해변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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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으로 내려서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이끼가 낀 높낮이가 다른 너럭바위가 저 멀리 성산일출봉 바로 앞까지 드넓게 이어진 풍경에 동공이 확장되고 가슴도 시원하게 활짝 열린다. ‘광치기’는 썰물 때 드러나는 빌레(너럭바위)가 넓다는 뜻을 지닌 제주 방언. 제주를 자주 찾는 여행자도 광치기해변의 매력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밀물 때는 별 볼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바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썰물 때면 바닷물에 가려 있던 비경이 서서히 드러나며 녹색 이끼를 담은 기기묘묘한 암반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지는 마법이 시작된다. 따라서 물때를 잘 맞추는 것이 광치기해변 여행의 중요 포인트. 펄펄 끓던 용암이 흐르다 차가운 바다와 만나 빠르게 굳어지며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독특한 지질구조를 만들어냈다. 해변 모래 역시 현무암이 풍화작용으로 잘게 부서진 것으로 검은색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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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행자가 멋진 일출을 보려고 새벽부터 성산일출봉에 오르지만 사실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광치기해변이다. 새벽이면 성산일출봉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고요한 제주 바다 위로 힘차게 떠오르는 일출을 만날 수 있다. 광치기 해변에선 성산일출봉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저녁노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해변으로 내려서기 전에 만나는 벤치에 앉으면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이 함께 담기는 멋진 인생샷을 얻는다. 해변을 끝까지 걸어가면 성산일출봉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대신 아픈 상처도 마주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 진지가 선명해서다. 수마포에도 이런 동굴 진지가 23개나 발견된다. 그래도 코앞에서 보는 성산일출봉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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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행성 닮은 용머리해안
성산일출봉은 화산활동 때 뜨거운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 습기를 많이 머금어 끈끈한 성질을 띤 화산재가 층을 이루면서 쌓여 성산일출봉을 만들었다. 2007년 성산일출봉, 한라산, 거문오름용암동굴계가 포함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또 2010년에는 산방산, 수월봉, 우도, 용머리해안 등 12곳이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지질공원 타이틀을 달았다. 그중 광치기해변과 성산일출봉처럼 독특한 지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용머리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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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상선전시관과 검은모래해변을 지나 용머리해안 입구로 들어서자 해녀들이 새벽에 건져 올린 싱싱한 멍게와 해삼이 좌판에 깔려 활기가 넘친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멍게 하나 입으로 밀어넣으니 제주바다가 입안에 가득 밀려들며 특유의 쌉쌀한 맛과 향기가 잃었던 미각세포를 하나하나 깨운다. 시작부터 마치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듯, 눈을 의심케 하는 신비한 지형이 펼쳐진다. 마치 솜씨 좋은 조각가가 찰흙을 얇게 겹겹이 쌓은 뒤 부드럽게 ‘S’자 곡선을 반복하며 조각칼을 휘두르는 듯하다. 검은색과 황토색, 흰색의 지층이 교차하는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절벽엔 사람 하나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움푹 팬 공간까지 곳곳에 만들어졌다. 억겁의 세월 파도와 바람이 남긴 진한 흔적이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서면 더욱 경이로운 풍경이 기다린다. 입구에서 본 절벽이 수십 미터 높이로 더욱 커지며 그 위로 고봉밥처럼 불룩 솟은 독특한 모양의 산방산까지 어우러진 절경에 입이 딱 벌어진다. 과연 세계지질공원에 선정될 만한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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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아래 펼쳐진 용머리해안은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양을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용머리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제주도에서 장차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진시황제가 풍수사 호종단을 보내 혈을 끊으라 명령했고, 호종단이 와보니 산방산의 맥이 바다로 뻗어 태평양으로 나가려는 모양새였다. 이에 호종단이 용의 꼬리와 잔등에 해당하는 부분을 칼로 내리치자 검붉은 피가 솟고 신음소리가 울리며 왕후지지의 맥이 끊긴 것을 슬퍼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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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과 용암대지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수성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로 높지는 않지만 아주 넓은 ‘응회환’으로 구분된다. 단단하지 않은 대륙붕 퇴적물 위에 만들어져 분출 도중 몇 차례 화산체가 붕괴됐고 서로 다른 화구 3개에서 분출된 지층이 섞이면서 이런 엄청난 지형이 탄생했다. 용머리해안 끄트머리엔 무너져 내려 옆으로 누운 지층이 또렷한 암석들도 만나 마치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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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월령리 선인장 마을 걸어볼까
올레길 14코스에서 만나는 제주시 한림읍 월령포구에선 현무암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지는 수채화를 만난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선인장 야생 군락지이기 때문. 월령포구를 지나 해안을 따라 놓인 데크길로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선인장 군락지가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선인장마다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매년 6월쯤에는 노란 꽃이 활짝 피어 월령리를 예쁜 그림엽서로 만들어 버린다. 월령리의 선인장은 손바닥 모양을 닮은 손바닥 선인장. 제주 유명 특산품 백년초 열매가 바로 손바닥 선인장 열매다. 한림농협에선 이 열매로 선인장 엑기스, 꿀, 과립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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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이 월령리에 군락을 이룬 배경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선인장 원산지로 알려진 멕시코에서 씨앗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제주까지 밀려와 모래땅과 바위틈에 기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월령리 주민들이 뱀이나 쥐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집 울타리인 돌담 옆에 선인장을 심었는데 월령리 전체로 퍼지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날씨에 강해 가뭄에도 고사하는 일이 없어 월령리를 매년 이국적인 풍경으로 꾸민다. 더구나 선인장 군락 너머로 한경풍력발전단지의 하얀 풍력발전기들까지 어우러지는 예쁜 모습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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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10여분 거리인 명월국민학교도 요즘 한림읍에서 인기가 높은 여행지. 낡은 정문을 지나면 긴 칼을 찬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어린 시절 추억으로 이끈다. 토끼풀이 하얗게 덮인 넓은 운동장에 단층 건물이 아담하게 앉았고 파스텔톤 예쁜 파란 출입문엔 세로로 적힌 ‘명월국민학교’ 문패가 달렸다.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쫀드기, 맛기차, 달고나 등 추억의 문방구 과자에서도 진한 향수가 묻어난다. 반짝반짝 광택이 나게 왁스칠을 하던 기다란 복도는 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즐기며 커피를 마시는 카페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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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풍금이 그대로 놓인 교실은 명월국민학교의 옛 모습을 담은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로 아스라한 시간들을 전한다. 1955년 개교해 1993년까지 명월리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이던 명월국민학교는 아이들이 없어 폐교된 뒤 마을사람들이 옛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감성카페로 탈바꿈시켰다. 교사 뒤뜰엔 붉은 입술을 닮은 핫립세이지가 활짝 피어 어린 시절 꿈꾸던 동화 속 풍경을 완성한다.
제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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