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빛 속살에 은은한 수박향… 입안서 사르르~
김셰프의 낭만식탁
횟감으로, 구이용으로도 인기 많은 국민생선
소금·허브에 절인 그라브락스, 좋은 애피타이저
훈제하거나 각종 허브들과 염장하면 색다른 맛
선홍빛의 연어를 두툼하게 썰어 단아하게 접시에 올리거나 밥 위에 올린다. 간장에 절인 연어 알을 함께 곁들이면 정말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유럽인들이 선호하던 연어 요리는 어느덧 우리에게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국민 생선’이 됐다. 밝은 선홍 빛을 띠고 지방질이 선명한 연어를 소금과 허브에 절인 그라브락스를 만들어 보았다. 사과와 양파를 곁들여 먹으면 애피타이저로 훌륭하다.
후각을 자극하는 연어의 은은한 수박 향
연어(鰱魚)의 한자 중 앞 글자 연은 ‘물고기 어(魚)’와 ‘잇따를 연(連)’이 합쳐진 글자로 일년에 한 번씩 잇따라 고향으로 돌아오는 물고기라는 뜻에서 이런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고서에 전해진다. 연어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큰 어류에 속하는데 횟감으로도, 구이용으로도 인기가 많은 생선이다. 조금 색다르게 요리를 하자면 훈제를 한다든지 또는 각종 허브들과 함께 염장을 함으로써 색다른 맛을 표현할 수가 있다. 최근에는 간장 양념에 재어 놓은 연어 장 같은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연어 알 또한 인기 있는 식재료다. 덮밥에 올려 감초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양식 요리에서는 차가운 애피타이저에 훌륭한 가니시가 되기도 한다.
사과와 양파를 곁들인 연어 그라브락스. |
어릴 때 집에서는 생선 메뉴들이 반찬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해산물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생선회를 먹어 본 것도 포항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첫 외출 때 선임들이 사준 것이 처음이었을 정도로 내게는 굉장히 멀고도 먼 음식이었다. 지금도 나는 회를 잘 즐기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바로 연어이다.
처음 연어를 만나본 기억은 스무 살 때로, 지금은 이름이 스위스 호텔로 바뀐 힐튼 호텔에서 실습하던 시절이다. 그때는 단순 작업과 정리의 반복이었다. 고기를 다루는 주방에서는 고기의 손질뿐 아니라 훈제 연어나 소시지까지 만들었는데 연어의 가시를 뽑거나 생선의 비늘을 벗기는 잔일은 실습생들의 몫이었다. 먹지도 못하는데 손질하는 것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길이 1m가량에 달하는 연어의 뼈와 살을 분리하고 가시를 뽑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역이던 기억이 난다. 배우는 즐거움은 컸으나 생선을 만지는 것은 그냥 싫기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참 선배가 무턱대고 싫어하지 말고 연어 향부터 맡아 보고 먹어보며 공부를 하라고 조언을 했다. 실제 맡아보니 붉은빛 연어의 속살은 반짝이는 비늘과는 달리 설레는 은은한 수박 향이 났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몽마르뜨 서울’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살짝 훈연한 이곳의 연어는 따뜻한 훈연향을 머금고 있었고 입에서는 쫄깃쫄깃해 부드럽게 씹히는 육고기와는 다른 풍부함이 느껴졌다. 사과, 양파, 생강을 더한 그 요리는 아직까지도 내가 그리워하는 연어의 참된 맛이다. 그즈음부터 연어는 내 최고의 식재료 중 하나가 됐다.
연어 요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또 하나 있다. 2014년 보퀴즈 도르(Bocuse d’Or) 요리대회의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했을 때다.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전인데 생선요리와 육류요리를 15인분씩 만드는 세계에서 제일 어렵고 권위 있는 요리대회로 기억한다. 당시 생선 메뉴가 바로 연어였다. 한국은 대체적으로 유럽권 식자재의 유입이 쉽지 않은 경향이 있는데, 연어는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라 정말 재미있게 연습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역대 두 번째로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본선에 진출한 좋은 추억을 갖게 됐다.
송어에서 산천어까지 종류 다양
크레페로 감싼 훈제 연어. |
연어의 종류에 따라 1년에서 3년 뒤 자기가 살던 강으로 돌아온다. 강에서 산란을 한 후 1년 동안 살다가 바다로 내려가는데 참 험난한 과정이 아닐 수가 없다. 무수한 천적들뿐 아니라 환경오염, 강줄기의 변화는 회귀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연어는 산란기 직전에 바다에서 잡히는 것이 맛이 좋고 강에서 잡힌 연어의 맛은 떨어진다. 산란을 위해 이미 모든 영양분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트나 식당에서 통상 접하는 연어는 대부분 수입산으로 대서양 연어라고 하며 주로 영국, 칠레, 캐나다, 노르웨이에서 양식한 연어다. 우리는 그중 북유럽의 노르웨이산 연어를 가장 많이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5년 강원도에서 연어 양식에 성공했는데 대서양 연어보다는 작은 60㎝가량의 크기로 송어(cherry salmon, trout)라고 부른다. 연어는 두 가지로 분류한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귀성 연어에는 곱사 연어, 왕 연어, 은 연어, 홍 연어, 송어, 대서양 연어가 있다. 또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일생을 강에서만 지내는 무지개송어, 갈색송어, 곤들매기, 산천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12월 섬진강에서 동해안 북부 명파천까지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바다에서 서식하는 기간은 연어마다 차이가 있는데 섬진강의 연어는 대략 3년간 북태평양에서 자란 뒤 섬진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한다. 번식기가 다가오면 수컷은 색이 더 짙어지고 아래턱이 길어져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지며 이빨이 강해진다. 산란을 마친 후에는 기력을 소진해 어두운 색으로 변하며 점점 죽어간다.
연어는 살이 선홍색이고 지방의 색이 선명한 것이 좋다. 연어의 붉은빛은 연어가 주로 섭취하는 갑각류에 함유된 카로티노이드의 영향으로 연어는 흰살 생선 쪽에 속한다. 양식 연어는 붉은빛을 띠게 하기 위해 카로티노이드 성분이 있는 사료를 공급하기도 한다.
연어 그라브락스 만들기
재료
연어필렛 500g , 굵은 소금 50g, 황설탕 30g ,딜 5g, 레몬제스트 1개 분량, 생강 30g, 월계수잎 3g, 위스키 또는 도수가 높은 술 50㎖
만들기
1. 연어는 위스키를 발라 30분간 마리네이드한 뒤 수분을 닦아준다.
2. 소금과 설탕 재료들을 모두 섞어 준 뒤 연어의 위 아래로 충분히 덮어준다.
3. 12시간가량 마리네이드해 준 뒤 수돗물에 깨끗이 씻어 주고 15분가량 정수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준다.
4. 물기를 제거한 뒤 냉장고에 하루 숙성시킨다.
5. 사과와 양파, 홀스레디시를 곁들여 접시에 담는다.
오스테리아 주연·트라토리아 오늘 김동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