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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역사·문화적 동질성 공유하는 사회집단

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

근대화는 민족주의를 출범시킨 게 아니라 해방시킨 동시에 변형·강화


민족은 역사·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회집단이다. 이 민족주의는 어떻게 기원했으며, 어째서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아자 가트(정치학)와 알렉산더 야콥슨(역사학)는 ‘민족’에서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에 상상된 혹은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종족은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고 민족과 민족국가는 수천 년 전 국가가 시작된 이래로 존재해왔음을 책에서 보여준다. 문화가 일찍이 우리의 원시적 조건으로부터 인류 진화에 적응해왔고 친족과 더불어 종족성과 종족에 대한 충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한다.

세계일보

민족 아자 가트·알렉산더 야콥슨/유나영/교육서가/3만2000원

책은 국가와 제국의 발생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폭발적 성격과 그것이 정체성과 연대를 형성하는 더욱 해방적이고 이타적인 역할까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은 “근대주의 계율은 현재의 민족 및 민족주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이루어진 큰 진전들을 극단적으로 과장함으로써 연구 방향을 크게 오도했다”면서 “근대주의·도구주의 이론가들은 종족민족 현상의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민족과 민족주의를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로 취급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특히 “중세 유럽을 포함한 전근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민족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았거나 정치적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은 근대 사회 이론이 범한 가장 큰 착오 중 하나다”라고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민족 및 민족주의의 개념이나 기원과 역사를 다루는 학제적 접근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갈린다. 민족이 근대에 탄생한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보는 ‘근대주의’ 입장과, 민족이 근대 이전의 시기에 기원을 둔다고 보는 ‘전통주의’ 입장이다.


저자들은 전통주의의 입장과 뚜렷이 맥을 같이한다. 논의에서는 특기할 점이 있다. 첫째로 민족이 문화 혹은 종족과 국가의 대략적 일치라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던 어니스트 겔너의 정의를 수용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개념 정의에서는 종족, 인족, 민족을 단계적으로 구분한다. 우선 종족은 상상 혹은 실제의 친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인족이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지닌 집단이다. 민족이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지녔으며 국가 내에서 정치적 주권이나 자치권을 가졌거나 이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종족, 인족, 민족의 성립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혈통을 공유한다는 의식이 아니라 ‘친족 의식’을 꼽았다는 것은 미세하지만 중대한 차이다.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결혼을 통해 결연 관계를 맺는 인척까지 친족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저자들은 인간이 종족이라는 특유한 집단을 이루는 현상이 자연적으로 진화한 인간 성향에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이방인보다 자신과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을 더 선호하게끔 진화했다는 사회생물학의 원리를 인용한다. 민족이라는 현상은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며, 바로 이것이 민족주의가 원초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라는 것이다. 종교는 이러한 차이를 결정했다기보다는 그럴 여지를 열어주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심이 있는 이는 읽어볼 만한 합리적으로 논증된 책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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