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된 사찰, 알고 보니…부처님 앞 "할렐루야!" 외친 '그 여자'
남양주 사찰 화재 원인은 '방화'…40대 여성 구속
"절에 불이 크게 났어요! 산으로도 번질 것 같아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 14일 아침 7시 20분쯤, 경기 남양주시 한 사찰에서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2시간 만에 간신히 불길은 잡았지만 산과 아파트 단지, 요양원이 밀집해 자칫 대형 산불과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주민들은 전했습니다. 목조 건물 1동이 잿더미가 되고 소방서 추산 2억 5천만 원 넘는 피해에 그나마 위안인 건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불교 서적들은 겨우 화마를 피했다는 것 정도.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라는 상투적 마무리에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 여자'가 붙잡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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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취재 결과 사찰 화재 원인은 방화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절에 불을 지른 건 서울에 사는 40대 여성 A씨. 사찰과 주변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여자'로 불립니다.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 '그 여자'의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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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앞 "할렐루야!"…'그 여자'의 '믿음'
A씨가 처음 사찰에 모습을 보인 건 지난해, 근처 기도원에 다니던 그녀는 사찰에 찾아와 "할렐루야"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절을 찾은 불자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며 막무가내 시비를 걸고 소란을 피우는 날이 점점 늘었습니다. 부처님 눈앞에서 난처해진 사찰 사람들이 나섰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어르고 달래고 내쫓아도 다시 마주한 눈빛에는 '마귀의 소굴(사찰)과 조각상(불상)을 궤멸시키고야 말겠다'는 믿음이 서릿발처럼 묻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월 A씨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캄캄한 저녁 사찰 주변에 불을 붙이려다 붙잡힌 것입니다. 다행히 불은 금세 꺼졌지만 충격에 빠진 사찰 사람들은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고 A씨는 방화미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됩니다.
불구속 송치 후 잠적…'그날' 포착된 지명수배자
당시 구속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경찰은 "실제 건물로 불이 옮겨 붙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해 사건 발생 한 달 뒤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깁니다. 그런데 송치 직후 A씨는 돌연 잠적합니다. 검찰이 여러 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이어 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검찰은 결국 A씨를 지명 수배하고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됩니다.
이제는 'A급 지명수배자' 신분이 된 A씨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불이 난 그날, 사찰 CCTV 영상에서였습니다. 이른 새벽 절에 침입해 목조 건물을 향해 걸어가고, 주민들의 화재 신고가 빗발치던 때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찍힌 것입니다. 이미 며칠 전 절 마당에 모신 불상 여러 개가 훼손돼 A씨 소행으로 의심하던 사찰 사람들은 대번에 A씨를 알아봤지만 또다시 자취를 감춘 상황. 불안감에 떠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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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현장을 다시 찾아온다…결국 철창 신세
모름지기 범인은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아오는 법이라고, 화재 나흘 뒤인 18일 오후 4시 10분쯤 "절에 불을 낸 사람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됩니다. A씨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며 긴장을 놓지 않던 사찰 관계자의 눈에 A씨가 들어온 것입니다.
"간덩이가 부었죠. 여길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어요."
- 사찰 관계자
절 주변을 서성이다 직원과 눈이 마주친 A씨는 그대로 달아났지만 얼마 못 가 출동한 경찰에 붙잡히고 맙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절 내부 촛불을 이용해 방석에 불을 붙였다"면서 시종일관 "신의 계시를 받았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시 검찰에 넘겨진 A씨, 이번에는 철창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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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매년 1,400여 건의 방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연평균 방화범 77명이 A씨처럼 재범을 일삼는 실정입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방화로 670명 넘게 다치거나 숨진 가운데 사상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전문가들은 재범률이 높고 모방범죄 위험성 역시 크다며 방화 범죄자에 대한 처벌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방화 역시 강력범죄에 해당하지만 흉기로 직접 인체에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라는 인상 등 탓에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며 "미수에 그치더라도 얼마든지 재범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하고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방화 범죄자 절반 이상이 정신 질환 증세를 보이거나 만성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만큼 치료 프로그램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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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풀려나겠죠. 그래서 걱정입니다. 다시 찾아올 테니까."
방화범은 구속됐지만 불타버린 사찰 건물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수억 원 대 손실이 났지만 보상 길은 막막합니다. 사찰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부처님의 공간을 더 철저히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가슴을 칩니다. 길지 않은 형을 마친 A씨가 사찰 전체에 불을 놓지는 않을까 잠 못 이룬다는 이들. "아홉 달 전, 미수에 그쳤을 때 그녀를 막을 수 있었다면" 잿더미 앞 피해자들 한숨이 무겁습니다.
(사진=경기소방재난본부 제공)
안희재 기자(an.heeja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