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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숨은 명산 불명산] 잘 늙은 절집 하나 바위 끝에 피어 있네

완주 불명산

영 지버섯이 지천, 남성적인 암릉미의 능바위산 연계

화암사 극락전은 건축학도들이 필수로 찾는 곳이다.

화암사 극락전은 건축학도들이 필수로 찾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사랑’ 이란 시에서 불명산의 화암사에 대해 ‘잘 늙은 절 한 채’라고 말했다. 그는 화암사를 나 혼자만 알고 싶고, 알려지면 순백함을 잃을까 묻어두고 싶다고도 했다.


전라북도 완주에 위치한 불명산(480m)은 금강정맥에 있다. 하지만 금강정맥을 알려주는 지도에서 불명산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근처의 운장산, 마이산, 천등산, 대둔산 등 워낙 이름난 산들에 비해 불명산은 산세가 뛰어나거나 볼거리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 불명산에도 진흙 속 연꽃 같은 곳이 있다. 시루봉 아래쪽에 있는 화암사가 그 주인공이다. 화암사는 참빗으로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곱게 늙은 우리 할매 같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빛바랜 단청과 허리 굽은 기둥들은 순교자를 연상케 한다. 화암사는 신라 진덕여왕 3년(694)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신라의 설총도 한때 이곳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불명산 등산코스는 2가지다. 하나는 불명산주차장에서 화암사를 거쳐 정상, 시루봉, 장선리재에서 임도를 통해 화암사로 원점회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선리재에서 언덕을 치고 올라 동봉, 능바위산(미륵산)을 연계하는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는 길게 산행하고 싶을 때 선택하면 좋다.

불명산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오르는 입구.

불명산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오르는 입구.

불명산 등산로에는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반면, 능바위산 구간은 선답자의 표지기를 이정표 삼아야 한다. 불명산이 여성적이라면 능바위산은 남성적이다. 능바위산은 바위가 거칠고 동봉과 서봉으로 오르는 고도의 기복이 심해서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암릉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조망이 좋다. 영지버섯이 지천일 정도로 인적이 드물지만, 등산로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하고 뚜렷한 편이다.


불명산의 백미는 주차장에서 화암사까지 오르는 0.7km의 숲길이다. 완만하게 오르는 계곡길은 급하지 않아 걷기 좋고, 산사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원시림엔 계곡의 물소리가 적막을 깬다. 좌우로 깎아지른 협곡은 구절양장이다. 구불구불 험한 골짜기 주위에 흐르는 크고 작은 폭포들은 비경지대로 묘사되곤 한다. 


과거에 비가 오면 계곡물이 넘쳐 산행이 쉽지 않았는데, 1983년 계곡과 폭포를 가로질러 철계단을 놓은 이후로는 산행이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산행안전이 담보되는 대신 철계단으로 인해 계곡의 비경이 송두리째 반감된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능바위산 정상(서봉)은 성질 급하게 우뚝 선 암릉이다.

능바위산 정상(서봉)은 성질 급하게 우뚝 선 암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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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산의 연꽃, 화암사

계곡을 지나는 계단을 벗어나면 하늘이 순간 열리고 고색창연한 화암사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고 섬세했던 단청이 벗겨지고 빛바랜 나무의 질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암사 극락전은 국보 제316호로 건축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구조를 지닌 건물이다. ‘하앙下昻’이란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로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여 있다. 이것은 처마와 지붕의 하중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화암사 극락전이 유일하다. 세종 7년(1425년)에 가람의 면모가 갖추어졌고, 선조 38년(1605년)에 중창된 극락전은 17세기 건물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커다란 영지버섯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능바위산.

커다란 영지버섯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능바위산.

화암사에는 광해군 3년(1611년)에 들어선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우화루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사용되는 공간으로 보물 제6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우화雨花는 꽃비가 내리는 극락세계를 뜻한다.


우화루에서는 오랜 세월에 삭은 목어木魚를 볼 수 있다. 화암사 목어는 공주 마곡사 목어, 승주 선암사 목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어 중 하나로 꼽힌다. 불교에서 목어는 아침·저녁 예불 때를 알리기도 하지만 물고기처럼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우화루 건너편으로 불명산 등산로가 있다. 어깨높이의 조릿대를 20여 분 오르면 안부 능선이다. 이곳에서 100m 거리에 불명산 정상석과 봉수대가 있다. 정상에는 허물어진 석축 주위로 잡목이 사방을 가리고 있어 조망은 없다. 


불명산 봉수대는 진안고원과 금산분지 방면 두 갈래의 내륙 교통로가 한눈에 보이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좌우로 4km 거리에 위치한 완주 탄현 봉화와 용복리 산성 봉화를 연결했다고 한다. 시루봉까지 평탄하며 1.7km 거리에도 조릿대가 무성하다. 시루봉에는 4등 삼각점이 있다. 잡목으로 인해 시야가 막혀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장선리재에서 화암사로 내려가는 임도.

장선리재에서 화암사로 내려가는 임도.

거친 암릉미가 돋보이는 능바위산

갈림길을 만나면, 직진 방향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산악기상관측장비를 지나 장선리재 임도다. 임도 왼쪽은 화암사 방향이다. 직진하면 능바위산으로 오른다. 이정표가 없기에 산행표지기를 참고해야 한다. 능바위산은 멀리서 보면 정상부 전체가 거대한 암릉이며 수직 절벽이다. 


소암봉(450m)에 올라서면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천등산과 대둔산이 빼꼼하게 보인다. 구들장처럼 납작한 바위들이 비스듬하게 누운 모습이 이어진다. 순창 체계산의 바위들과 비슷한 모양이다. 동봉으로 가까이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지만 조망은 다른 곳보다 훨씬 좋다. 멀리 구룡천 너머로 봉수대산, 고성산, 예봉산, 승치산이 시원하게 보인다.


동봉에서 10여 분을 내려갔다가 다시 차고 오르면 능바위산 정상인 서봉이다. 정상석은 따로 없고 산불감시시설이 있다. 오른쪽으로 천등산, 대둔산, 서쪽으로는 금강정맥의 남당산, 작봉산 연봉들이 힘차다. 내리막은 크게 급하지는 않지만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름에는 잡목에 의해 길이 묵어서 방향을 잘 잡아야만 17번 국도변에 있는 달빛마을식당(휴업 중)에 닿는다.  

화암사 폭포에는 항상 일정한 물줄기가 떨어진다.

화암사 폭포에는 항상 일정한 물줄기가 떨어진다.

산행길잡이

▲주차장-폭포-화암사-갈림길-정상(봉수대)-시루봉-장선리재-소암봉-동봉-능바위산-현대오일뱅크 삼성주유소(달빛마을)(8.2km 5시간)

▲주차장-폭포-화암사-갈림길-정상(봉수대)-시루봉-장선리재-임도-화암사(6.5km 3시간)


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전주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160분 소요되며 05시 30분부터 10~15분 간격으로 배차된다. 성인 1만4,300원, 

전북대학교에서 고산터미널까지 535번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고산터미널에서 화암사까지 하루 6회(07:30, 09:20, 11:30, 13:00, 15:10, 18:20) 버스 운행하며 요금은 1,500원.


맛집(지역번호 063)

▲화암사 입구에 두부전문점이 있다. 마을 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싱그랭이 콩밭식당(262-2929)은 순두부, 들깨순두부, 짬뽕순두부 각 8,000원, 건강한 재료와 반찬이 특징이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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