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다도해 흰 코끼리 등에 올라타다
백운봉의 장엄한 풍광. 층을 이룬 거대한 암봉이 다도해를 호령한다. 마치 해상왕 장보고의 위엄에 찬 모습을 보는 듯하다. 바위 너머에 장보고가 태어난 장좌리 마을과 청해진 유적지인 장도가 보인다. |
상왕산象王山은 완도莞島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인 완도는 완도군의 본섬으로 정상 상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면적이 90.1㎢에 이른다. 섬 정중앙에 솟구친 상왕봉을 오르는 들머리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나 있다. 불목리, 장좌리, 대야리, 죽청리, 대가용지, 도암리, 대구리, 대신리, 소세포, 삼두리, 대문리, 황진리 등. 이 중 가장 대표적인 들머리가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이 자리했던 장좌리다. 섬의 남동부는 육지와 이어진 섬을 포함하면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속한다.
상황봉象皇峰이 상왕산象王山으로 탈바꿈
태풍 카눈의 한반도 상륙을 앞둔 8월 5일 급히 완도로 향한다. 오랫동안 장마전선이 전국에 비를 뿌린 후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서울에서 오전에 출발, 저녁 무렵에야 해남반도에 도착해 연륙교인 완도대교와 남창교를 건너 완도에 들어선다. 달도達島가 징검다리 삼아 2개의 다리를 잇고 있다.
완도군에서 가장 크고 높은 상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다도해 절경. 소모도, 대모도, 소안도, 구도, 횡간도, 노화도 등 다도해의 비경이 하염없이 펼쳐진다. |
완도에 들어서니 상왕산의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해남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달마산, 대둔산, 두륜산, 주작산, 덕룡산 등과 자웅을 겨루는 듯하다.
상왕산은 원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완도의 상황봉象皇峰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7년 6월 23일 옛 문헌의 고증을 거쳐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제2017-1797호)에 의거 상왕봉象王峯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게다가 상왕산象王山이란 산 이름도 제정돼, 북으로부터 뻗어 내린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 상왕봉, 심봉 총 5개의 봉우리를 거느리는 산으로 탈바꿈했다.
완도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폭염을 피해 산행할 요량으로 산막을 나서다 우연찮게 다도해의 일출과 조우한다. 장보고의 고향이자 청해진이 자리했던 장좌리 앞바다의 신지도와 고금도, 약산도 위로 떠오른 태양이 다도해의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을 밝히고, 신지대교와 장보고대교를 뒤덮은 해무가 붉게 타올라 파도처럼 일렁인다. 천혜의 풍광이 아닐 수 없다.
상왕산 종주산행을 위해 숙승봉 들머리인 불목리에 당도한다. 초대형 주차장에 차를 덩그러니 세워두고 완도청소년훈련원을 지나 불목저수지 둑방에 올라서니 숙승봉의 거대한 암봉이 굽어본다.
완도자연휴양림에서 맞이한 일출. 붉게 물든 해무가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장보고대교를 뒤덮고 그 너머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을 물들인다. |
코끼리 왕이 거느린 장쾌한 능선길
숙승봉을 향해 등산로에 들어서자 햇빛 한 점,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울창한 숲은 어둠 컴컴하고 음침하기까지 하다. 최남단에 자리한 완도는 겨울에 해남반도가 북서풍을 막아 주고 난류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온난할 뿐만 아니라 중부내륙의 여느 산들과 달리 동백나무,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등 난대상록활엽수림이 밀림처럼 우거져 있다.
“섬 산행이 폭염에 찜질산행이 됐네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진작 땀범벅이 됐어요.”
숲길은 가파른 사면이 이어지다 암반이 나타난 곳에서 조망이 한 번 트인 후 한층 더 가팔라진다. 섬뜩한 모습을 한 해골바위가 나타나고 오른쪽에 설치된 철계단을 통해 절벽 위에 서니 비로소 조망이 확 트인다. 발아래 불목리선착장과 길쭉하게 뻗은 고마도가 내려다보인다. 강진만 너머로는 고흥의 천태산과 장흥의 천관산이 치솟아 있고, 해남의 두륜산과 주작산이 병풍을 이룬다.
숙승봉 오름길에 절벽에서 바라본 강진만 앞바다. 팔을 벌린 듯한 길쭉한 고마도와 사후도 너머로 해남의 주작산과 장흥의 천관산이 솟아 있다. |
가파른 산등성이를 타고 다시 한 번 오름짓을 하니 숙승봉 정상이다. 커다란 정상석 그늘 속에서 땡볕을 피하며 숨을 몰아쉰다. 숙승봉은 산 아래를 굽어보던 거대한 암봉답게 조망이 거침없다. 업진봉을 거쳐 상왕봉에 이르는 산줄기가 장쾌하고 역동적이며, 정상마다 암봉을 이룬 산세가 수려하고 장엄하다.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멀고 먼 능선길이다.
다도해를 조망하는 천혜의 전망대
이 산의 이름 상왕象王은 ‘코끼리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예로부터 코끼리는 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동물로서 자비와 덕을 상징한다.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은 흰 코끼리가 품안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부처를 잉태했으며, 석가모니 옆을 지키는 보현보살도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상왕이란 곧 부처를 뜻하며 상왕산은 부처의 모습을 닮은 산인 것이다.
숙승봉의 거대한 암봉이 남도의 섬들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
상왕산 아래에는 관음사지와 법화사지 등 불교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상왕산을 이루는 다섯 개의 봉우리 이름 또한 불교 용어다. “어떤 스님이 숙승봉의 토굴에서 수도하고, 업진봉에 이르러 업을 다하고, 백운대에 이르러 흰 구름을 벗 삼고, 심봉에 이르러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쉰 다음, 상왕봉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는 말이 전한다. 한마디로 상왕산 산행은 부처의 길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향한 길은 고행이 따르는 법.
“이젠 덥다 못해 푹푹 찌네요. 후끈후끈 불한증막이 따로 없습니다.”
숙승봉에서 바라본 해남반도의 시원스런 조망. 뭉게구름 아래 솟구친 두륜산과 주작산이 강진만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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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을 내려서니 또다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울창한 숲길이다. 때마침 꽃사과처럼 탐스럽게 익은 주렁주렁 매달린 동백나무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날에 어머니가 쪽찐머리에 바르셨던 그 ‘동백’ 기름의 동백열매네요.”
산허리를 가로질러 상왕봉으로 향하는 임도를 건너 업진봉에 올라서니 둥그스름한 정상 너머에 마당바위가 널찍하게 깔려 있다. 천혜의 활공장이다. 활공 시 전력선에 접근하면 위험하다는 안내문도 부착돼 있다. 해남반도의 달마산에서 두륜산에 이르는 산줄기가 강진만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절경을 뽐낸다.
업진봉에서 백운봉은 지척이다. 조릿대 숲을 뚫고 올라서자 수십여 개의 거대한 바위가 층을 이룬 백운봉이 서 있다. 다도해를 호령하는 장엄한 모습이 마치 해상왕 장보고의 위엄에 찬 모습을 보는 듯하다. 대야리저수지 너머로 장보고의 태생지인 장좌리마을과 청해진장보고유적지가 있는 장도가 내려다보인다. 또한 무수한 섬들과 시퍼런 바다가 절경을 빚는다.
업진봉의 시원스런 조망. 날개를 펼치면 금세라도 창공을 나는 새가 될 것 같다. 천혜의 활공장이다. |
상왕봉도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난다. 활엽수림의 울창하고 짙푸른 숲이 산정을 향해 펼쳐진 망망대해나 다름없다. 그 숲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며 산길을 잇는다. 능선 한가운데에 이르자 숯가마터가 나온다. 이 지역 주민들이 1960년대까지 붉가시나무 숯을 생산했던 곳이다. 이곳 숯은 치밀하고 강도가 높고 화력이 세서 조선시대 정조 18년(1794년)에는 왕에게 납품했던 기록도 있다.
“이젠 온몸이 불가마 속에 들어가는 것 같네요.”
우리나라 최남단의 산을 오르는데 36℃를 육박하는 무더위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다. 이런 악조건에 두 대의 휴대용 선풍기와 배낭을 가득 채운 얼음물과 신선한 과일이 없었다면 진작 하산했거나 탈진했을 것이다. 열이 나면 식히고 허기가 지면 먹고 힘이 들면 쉬면서 오른다.
임도에 이르러 망루처럼 세워진 높다란 제2전망대에 올라섰지만 앞서 바라본 조망에 비하면 전혀 성에 차지 않는다. 꾸역꾸역 능선길을 올라 상왕봉 정상에 선다.
상왕봉에서 바라본 신지도 전경.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 너머로 상산과 노학봉이 솟아 있다. |
해상왕 장보고와 운명을 같이한 완도
상왕봉은 완도군이 거느린 264개의 섬 중에서 제일 크고 제일 높은 봉우리다. 정상은 암반을 중심으로 데크가 둥그스름하게 설치돼 있고, 투명한 강화유리 전망대가 돌출돼 있다. 마치 기암절벽 끝에 선 것처럼 아찔한 느낌이다. 사방이 확 트여 다도해 조망이 광대하고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눈앞에 고금도, 금당도, 약산도, 금일도, 생일도, 신지도, 청산도, 대모도, 소안도, 노화도, 보길도, 넙도 등 수많은 섬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상왕봉에서 완도자연휴양림 하산길에 기암괴석이 연이어 튀어나온다. 특히 황장사바위가 유명하다. 옛날에 키가 9척인 황장사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제주도를 묶어 당길 때 깔고 앉았던 바위에 엉덩이 자국이 패였다 하여 그리 부른다.
관음사지에 도착하니 도치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절벽을 등진 너른 터에는 수풀만 우거져 있다. 석굴 내부에는 약수샘과 관음사 칠성단 불단이 놓여 있다. 관음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해안가에 자리한 여수 금오산 향일암, 남해 보리암,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등이 모두 상왕봉의 관음사지와 마찬가지로 관음도량이다.
완도는 신라시대에 이 나라의 해상을 주름잡았던 장보고와 운명을 함께했다. 장보고가 청해대사가 되었을 때, 그 청해淸海가 바로 지금의 완도 앞바다이다.
장보고는 자신의 고향인 장좌리에 청해진을 세우고 해적을 소탕한 후 동방 무역의 패권을 차지했으며, 완도는 중계 무역항으로서 해상무역의 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바다를 호령하던 장보고는 반란을 성공시킨 공으로 감의군사라는 벼슬자리에 올랐으나 결국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의 칼에 맞아 죽었다. 반란을 두려워한 조정은 완도 사람들을 모두 전라도 김제로 이주시켰고, 완도는 오백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관음사지 또한 그렇게 폐허가 됐다. 인적 하나 없는 산길을 내려선다.
산행길잡이
완도는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으로 상왕산 상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면적이 90.1㎢에 이른다. 섬의 남동부는 육지와 이어진 섬을 포함하면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속한다. 원래 상황봉象皇峰으로 불렸던 이 산은 2017년 6월 23일 옛 문헌의 고증을 거쳐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제2017-1797호)에 의거 상왕봉象王峯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또한 상왕산象王山이란 산 이름이 제정돼,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의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 상왕봉, 심봉 총 5개의 봉우리를 거느리게 됐다.
섬 정중앙에 솟구친 상왕산 상왕봉을 오르는 들머리는 완도 동서남북 어느 곳에나 있다. 불목리, 장좌리, 대야리, 죽청리, 대가용지, 도암리, 대구리, 대신리, 소세포, 삼두리, 대문리, 황진리 등. 상왕산 종주코스를 제외하면 모든 등산로는 상왕봉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상왕산에 오르면 다섯 개 봉우리 어느 곳이나 산세가 수려하다. 정상에 서면 조망이 360도 거침없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을 비롯해서 해남의 달마산, 두륜산, 주작산, 고흥의 천관산까지 조망이 펼쳐진다. 또한 산자락 곳곳에는 상여바위, 황장수바위, 건드렁바위, 석문, 벼락바위, 송곳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완도자연휴양림에서 상왕봉은 2시간 내에 왕복할 수 있다. 하지만 종주 시는 차량 회수에 신경 써야 한다. 완도자연휴양림을 날머리로 잡으면 산이라서 택시 호출이 안 돼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웬만하면 대야리나 장좌리 마을까지 하산하는 게 좋다.
교통
서울에서 완도는 서해안고속도로 - 강진무위사IC - 13번국도 - 해남 - 달도 -
완도 - 불목리(완도청소년수련원) / 장좌리(완도자연휴양림).
맛집
완도읍 완도공용버스터미널과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 부근에 맛집이 많이 있다. 신지횟집(061-552-5244, 전복회), 대성회식당(0507-1400-5164, 전복백반), 완도해물탕(0507-1342-5969, 김전복해물뚝배기), 완도어반(0507-1434-7100, 화덕생선구이정식) 등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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