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캠핑 특집] 회장님이 넥타이를 풀었다 “바이크 캠핑 짭짤하네!”
모토캠핑은 라이딩과 캠핑을 함께 즐긴다. 김윤세 회장과 일행이 라이딩을 즐긴 후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고 있다. |
그 어느 때보다 바깥 활동에 대한 욕구가 절실한 시대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꺼려지는 요즘,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나는 백패킹이나 차박 인구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모토캠핑이다. 백패킹이 두 다리로 걷고, 차박이 자동차를 타고 떠난다면, 모토캠핑은 모터바이크를 타고 나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난다.
모토캠핑에는 연령제한이 없다. 바이크를 탈 수 있고 최소한의 캠핑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죽염전문기업 ㈜인산가의 김윤세(65) 회장은 할리데이비슨 마니아이다. 회사에선 근엄한 모습이지만 헬멧을 쓰고 바이크의 시동을 거는 순간 그는 이 세상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라이더가 된다. 초여름 기운이 가득한 5월, 김윤세 회장과 함께 지리산 자락으로 모토캠핑을 떠났다.
‘S’자로 구부러진 길이 아름다운 지안재를 달리는 김 회장 일행. |
우렁찬 바이크의 포효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삼봉산 자락에 위치한 인산연수원에 도착하니 4대의 할리데이비슨이 사냥을 앞둔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이번 취재를 위해 평소 김 회장과 함께 라이딩을 즐기는 ‘바이크 친구들’이 출동한 것이다.
“김 회장님이 이렇게 책에 나온다고 하니 우리가 출동 안 하면 섭섭하지요. 우리는 캠핑은 안 해봤는데 이번 참에 모토캠핑 맛도 좀 보고요. 하하.”
이 모임에서만큼은 ‘막내’인 강천형(52)씨가 분위기를 띄운다. 헌팅캡에 까만 가죽 라이더재킷 차림이 멋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맏형인 차영대(66)씨를 제외하곤 모두 멋진 수염을 자랑한다. 사진 촬영을 한다고 해서 그런지 한껏 멋을 부렸다. 겉모습만 보고는 40대 초반의 기자와 동년배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김 회장은 할리데이비슨의 묵직한 배기음을 들으면 언제나 설렌다고 말한다. |
“‘폼생폼사’ 아니겠습니까. 등산할 때 멋진 옷과 장비를 찾는 것처럼 바이커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이 옷들도 나름 다 안전한 라이딩을 위한 기능들이 있답니다.”
홍용기(53)씨는 오른쪽 다리에 착용한 가죽 가드를 보여 주며, “이것은 페달 근처의 배기통이 뜨겁기 때문에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라면서 “사실 멋도 좀 부려 보려고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오늘 향할 곳은 함양군 마천면의 지리산롯지다. 이곳은 폐교된 옛 등구초등학교를 2011년 리모델링해 숙소로 꾸민 곳으로, 김 회장이 지리산에 오는 등산객을 위해 마련한 롯지다.
망치를 들고 텐트의 펙을 박는 김윤세 회장. |
“연수원에서 출발하면 지안재라는 곳을 지나갑니다. 이곳 풍경이 기가 막힙니다. 구불구불 뱀처럼 놓인 도로 생김새가 말로는 표현 못 해요. 가서 봐야 알아요.”
드디어 출발이다. 4대의 바이크가 우렁차게 포효한다. 김 회장을 선두로 줄지어 달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정장 차림을 한 김 회장의 단정한 모습만 봐오다가 야성적인 라이더의 이면을 마주하니 바이크를 직접 타지 않아도 심장이 같이 뛴다.
“여기가 지안재 입구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도 멋있지만 백미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에요. 자, 올라가 봅시다.”
‘지리산 가는 길’로 더 잘 알려진 지안재는 오도재를 지나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며 풍경 사진 찍는 사진가라면 한 번쯤은 와봤을 ‘단골 출사지’다.
4대의 바이크가 한껏 성난 모습으로 구불구불 뱀의 몸을 타고 오른다. 워낙 힘 좋은 바이크들이라 단 한순간도 헐떡이지 않고 치고 오른다. 바이크에 몸을 실은 라이더도 세상 여유로운 모습이다.
모토캠핑 시 작은 도끼가 있으면 나뭇가지 자르기에 편하다. 무엇보다 ‘감성캠핑’에선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
125cc 바이크로 서울~함양 오가던 시절
짧은 라이딩 후 지리산롯지에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캠핑 준비를 한다. 사실 김 회장은 모토캠핑이 처음이다. 등산을 다니면서 야영은 여러 번 해봤지만 바이크를 타고 가는 캠핑은 아직 경험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김종연 사진기자의 개인장비를 빌려 첫 모토캠핑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김 기자가 가진 텐트는 폴란드군용 첼트반Zeltbahn(천막)이다. 평상시에는 판초우의로 사용하다가 밤에는 티피텐트로 설치해 잠을 자는 형식이다. “할리를 타는 야성남이라면 이런 야전텐트가 어울린다”며 특별히 준비했다.
김 회장이 직접 망치를 들고 펙peg을 박는다. 야전용 텐트답게 설치가 복잡하지 않다. 펙을 박고 텐트 가운데 폴대 하나만 세우면 끝이다. 산행 경력이 많은 김 회장답게 가르쳐 주지 않아도 능숙하게 텐트를 설치한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산꾼 못지않은 등산 마니아이다.
“계룡산 용화사 골짜기 절터가 고향입니다. 두 살 때 계룡산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했습니다. 일곱 살 때 서울로 이사했는데, 북한산 자락에서 흙벽돌집을 짓고 살았어요. 이후 다시 지리산 자락 함양으로 왔고요. 일생의 거의 대부분을 산자락 밑에서 살다 보니 등산이란 게 특별할 게 없었죠."
암벽등반도 수준급이다. 집 뒷산인 함양 오봉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바위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암벽등반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용기등산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54세 때였다.
“2년 동안 매주 인수봉을 올랐어요. 자신감이 붙고 난 후에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종주하고 ‘삼형제길’, ‘별을 따는 소년’ 등의 암벽코스도 등반했어요. 의령 신관암, 고창 할매바위, 부산 암남 해벽 등 전국으로 다녔죠. 겨울엔 빙벽등반도 배웠어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텐트를 치며 암벽등반 이야기를 해주는 김 회장의 기분이 좋다. 회사를 이끌어 가는 오너로서 평소에는 스트레스 받고 답답한 일도 많지만 이렇게 자연으로 나오는 일은 늘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특히 바이크는 등산과 암벽등반에 이어 중년에 새롭게 도전한 취미라 더욱 애정이 깊다.
“젊었을 때도 오토바이를 즐겨 탔어요. 1980년대 초반 ‘불교신문’ 기자로 일할 때 아버지 인산 김일훈 선생의 말씀을 직접 듣고 정리해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느라 서울과 함양을 수시로 오갔어요. 당시 KTX는커녕, 고속버스도 함양으론 다니지 않던 시절이라 125cc짜리 바이크를 타고 그 먼 거리를 오갔어요.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동경도 그 시절에 생겼어요.”
김 회장은 바이크의 매력에 대해 “바람을 그대로 몸으로 맞으며 스로틀을 감으면 감는 대로 치고 나가는 것이 남성적이다”라고 말했다.
“할리데이비슨의 배기음은 언제 들어도 남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요.”
김 회장이 도끼로 나무를 가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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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과 캠핑 함께하니 기쁨 두 배
텐트를 다 친 김 회장이 작은 화로대에 불을 피우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였다.
“형님, 커피가 웬 말이오! 이런 자리에선 막걸리가 만찬주지.”
강천형씨가 입맛을 다시며 인산가에서 빚는 막걸리인 ‘탁여현’을 가지고 왔다. 일순간 자타공인 애주가인 김 회장의 얼굴이 밝아진다.
“술이 나쁜 게 아니에요. 화학물질 투성이인 ‘나쁜 술’을 마셔 몸이 망가지는 것이지 제대로 빚은 ‘좋은 술’은 해롭지 않아요.”
김 회장이 즐겨 쓰는 할리데이비슨 헬멧. |
김 회장의 얼굴에 항상 혈색이 돌고 60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좋은 술’을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빠르게 산업화 시대가 오면서 빨리빨리 많이 마시는 술 문화가 만연해 있어요. 그건 좋지 않아요. 좋은 술을 마시면서 품격 있게, 멋스럽게 술을 마시는 게 ‘풍류’입니다. 그래서 2018년부터 ‘신풍류도’라는 술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풍류를 즐기는 술 모임을 가지면서 우리 사회를 천천히 그렇게 바꿔 나가보자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김 회장이 즐겨 쓰는 할리데이비슨 헬멧. |
막걸리 한 잔이 오가고 캠핑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는다. 열띤 토론장을 방불케 할 만큼 오가는 이들의 대화 대부분은 바이크에 관한 것이다. 특히 최근 새로운 바이크를 들인 김 회장은 자랑할 것도, 조언을 받을 것도 많아 가장 분주하다.
“우리가 타는 바이크가 주로 장거리 투어링용 바이크다 보니 항상 새로운 장소로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죠. 이제까지 라이딩을 하고 식사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캠핑을 하는 것도 짭짤하네요.”
죽염회사 회장답게 김 회장은 ‘짭짤하다’란 말을 즐겨 쓴다. 김 회장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명도 ‘싱거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초지일관 짭짤한 삶을 추구합니다’이다.
편리한 라이터 대신 파이어 스틱을 이용해 불을 붙여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
“옛날에는 집이 가난해서 짭짤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어요. 당시엔 소금이 귀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남의 집에 가서 소금간이 잘 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집 음식 짭짤하다’고 표현했죠. 돈을 많이 벌면 ‘수입이 짭짤하다’고 표현하잖아요. 이처럼 예부터 ‘짭짤하다’는 말은 긍정적인 표현이었어요. 짭짤하게 살아야 건강하게 살며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바이크를 타는 스릴과 자연에 머물면서 지내는 멋을 모두 즐길 수 있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며 “여기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니 짭짤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형님, 우리가 죽염이지요? 하하”
두 아우들이 ‘애교’를 부리니 김 회장도 “맞다, 죽염만큼 짭짤하다”라고 응수했다. 바이크를 타면 라이딩에 집중하느라 정작 대화는 잘 나누지 못하는데, 이렇게 캠핑을 더하니 술 한 잔 하며 회포를 푸는 재미도 쏠쏠하다.
풍광 좋은 주막에 들러 담소를 나누는 (왼쪽부터)김윤세 회장, 차영대, 강천형, 홍용기씨. |
짭짤한 모토캠핑의 맛
최근 모토캠핑이 인기라고 하자 김 회장은 “젊은 사람들이 즐기기에 참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홍용기씨가 “우리도 아직 젊은이”라며 앞으로 종종 모토캠핑도 해보자고 제안했다. 김 회장은 “지리산 곳곳에 캠핑장이 있고 섬진강변도 아주 멋있으니 다음에 그렇게 해보자”고 말했다.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긴 시간 많은 대화가 오간다. 지리산 자락에도 어느새 어둠이 찾아온다. 하지만 ‘중년들의 수다’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작은 화로대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중년 남성들의 첫 모토캠핑은 소소하지만 ‘짭짤한’ 행복을 주고 있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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