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을 누볐던 최고의 드리블러는 누구?
농구 팬들의 눈을 사로잡는 큰 요소 중 하나인 드리블은 개인기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화려해 보이는 드리블의 속을 들여다보면 선수들의 엄청난 연습량이 동반되어 있다. 그렇다면 역대 KBL에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최고의 드리블러는 누가 있었을까?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12월호에 게재됐으며, 온라인 게재일에 맞춰 수정 및 보완됐습니다.
이견의 여지 없는 최고? 센세이셔널했던 드리블러 전태풍
많은 이가 KBL 최고의 드리블러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큰 고민 없이 전태풍이라는 답을 내놨을 것이다. 그 정도로 테크니션 전태풍이 드리블에서 남긴 발자취는 컸다.
KBL 역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귀화 혼혈 드래프트에서 전태풍은 이승준, 문태영 등을 제치고 전체 1순위로 KCC에 지명됐다. 예상대로 전태풍의 기량은 뛰어났다. 이전에 나왔던 한국 가드들의 스타일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였던 그는 본인만의 매력을 바탕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상민의 이적 후 가드 포지션에 걱정이 있었던 KCC는 전태풍이 들어오면서 고민을 덜었다. 전태풍과 하승진, 강병현이 축을 이룬 KCC는 우승을 차지했고 전태풍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을 갈고 닦은 전태풍은 KBL 최고 수준의 드리블과 테크닉을 선보였다. 자세가 낮아 상대 선수가 막기 힘들며 양손을 큰 무리 없이 활용할 수 있다. 크로스 오버 동작이나 레그 스루, 유로 스텝, 비하인드 백 드리블 등 쉽지 않은 기술들을 실전에서 오랜 시간 가장 잘 구사했던 선수다.
특유의 리듬과 박자감이 있는 전태풍의 드리블은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전태풍을 막다가 코트에 넘어지는 선수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했으며 드리블을 통해 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전태풍의 드리블 능력은 뛰어난 공격력의 원천이 됐다. 슈팅력이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에 드리블로 타이밍을 뺏은 뒤 던지는 슈팅이 위협적이었고, 돌파 또한 막기가 까다로웠다. 향후에도 드리블로서 전태풍이 남긴 강한 인상을 따라갈 선수는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드리블도 잘했던 농구대통령 허재, 그리고 허훈
한국 농구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인 허재. 플레이에 큰 약점이 없었던 허재는 물론 드리블러로서의 능력 또한 굉장히 뛰어났다.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재의 전성기 시절은 기술적인 면에서 지금보다 발전이 덜 이뤄졌고 정보도 많지 않았던 시기다. 그런 시절에도 허재는 유로 스텝, 비하인드 백 드리블 등을 사용하며 재간을 뽐냈다. 최근에서야 점점 국내 선수들이 많이 시도하고 있는 스텝백 또한 허재의 무기 중 하나였다.
당시로선 큰 편에 속하는 가드로서 188cm의 신장에 빠른 스피드, 폭발적인 점프력을 지녔던 허재는 드리블 능력까지 좋으니 더욱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화려함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볼 핸들링 능력 또한 준수했다.
전성기가 꺾이는 시점에 프로 무대가 출범했음에도 허재의 드리블 실력은 크게 녹슬지 않았다. 하이라이트 필름 또한 자주 만들었는데 특히 기아 유니폼을 입고 뛰던 1997-1998시즌 현대와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만든 원맨 속공이 아직도 많은 팬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손에 깁스를 한 채로 뛰었던 허재는 설상가상으로 상대 선수 팔꿈치에 맞아 얼굴에 출혈이 생긴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했던 허재는 상대 코트에서 기가 막힌 스핀 무브로 수비수를 제친 뒤 골밑까지 드리블로 접근해 득점하는 명장면을 연출한다.
이후 세월이 흐른 뒤 KBL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허재의 차남 허훈도 가드로서 드리블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80cm로 신장은 그리 크지 않으나 탄탄한 힘을 갖춘 허훈은 신체 밸런스가 잘 형성되어 있고 빠른 스피드를 가졌다. 드리블 능력 또한 동포지션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아주 우수한 수준이다.
허훈의 스코어링 능력 시작점은 드리블이다. 허훈은 드리블 능력과 순간 속도로 상대를 제친 뒤 림어택을 펼치는 식으로 많이 공격을 펼친다. 굳이 골대 밑까지 진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스텝을 활용해 점퍼를 시도한다. 슈팅력이 받쳐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 현란한 드리블 속에 슈팅과 돌파를 모두 생각해야 하니 수비 입장에서는 정말 막기 힘든 선수다.
스킬 트레이닝 등을 통해 꾸준히 드리블 능력을 가다듬고 있는 허훈은 국내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2019-2020시즌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고 2020-2021시즌에는 국내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모두 선두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국가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가 됐다.
아이솔레이션의 달인, 득점 머신 김효범
김효범의 커리어는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들에 비해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아이솔레이션 능력만큼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1대1 공격을 통해 단신 외국 선수 부럽지 않은 공격력을 발휘했던 선수가 김효범이다.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모비스(現 현대모비스)에 입단한 김효범은 데뷔 초에는 그다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데뷔 첫 두 시즌 동안은 평균 10분 정도를 뛰는 벤치 멤버로 활약하는 수준이었다. 플레이에 겉멋이 들었다며 그를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많았다.
김효범이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주축 선수들이 입대한 3년 차 시즌부터다.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선수로 도약한 김효범은 주역으로 모비스에서 우승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후에는 SK로 팀을 옮겨 평균 15.2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딥쓰리까지 가능한 넓은 슛 거리, 그리고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빛나게 해주는 것은바로 드리블 능력이었다. 김효범의 드리블 능력은 전태풍과 함께 당대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가장 발군이었던 것은 어깨를 활용하는 숄더 페이크. 숄더 페이크에 이은 크로스오버 드리블에 넋이 나가면 이미 김효범은 멀리 떠나 있었다. 마무리로 탄력을 이용한 더블 클러치가 나오면 많은 이가 감탄을 표했다.
상당히 릴리즈가 빨랐던 슛 폼도 김효범의 드리블과 좋은 조화를 이뤘다. 현란한 드리블 이후 스텝을 밟고 슛을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비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막기 까다로운 슈터다.
그나마도 허리 디스크 수술로 운동 능력이 다소 감소한 뒤에 KBL 무대에서 뛴 것이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피로골절 등의 부상은 김효범을 괴롭혔고, 전성기가 비교적 빨리 끝난 원인 중 하나였다. SK 이적 첫 시즌 후 김효범은 좀처럼 이전의 위력을 찾지 못했다. 계속된 부상만 없었다면 천재 테크니션의 전성기를 더 오래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유한 속공의 1인자, 김선형
김효범이 SK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SK에는 또다른 테크니션 한 명이 입단하게 된다. 2011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중앙대 출신의 가드 김선형이 프로에 입성했다.
시작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김선형은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을 펼치며 매서운 샛별의 잠재력을 증명했다. 예사롭지 않았던 김선형은 어린 나이임에도 강심장의 면모를 뽐내며 빠르게 SK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김선형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트랜지션 상황이다. 최고의 스피드와 범접할 수 없는 탄력을 보유한 김선형은 SK의 빠른 속공 농구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다. 코트 반대쪽에서 림까지 접근하는 코스트 투 코스트 플레이는 그의 전매특허. 리그 역사상 가장 속공 전개 능력이 좋은 선수 중 하나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득점까지의 마무리 능력도 탁월하다.
비하인드 백 드리블, 유로 스텝, 스핀 무브를 통해 상대를 부드럽게 제치는 기술도 우수하다. 많은 힘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좁은 수비수들 사이의 틈을 요리조리 헤집은 뒤 따돌리는 장면도 이따금 연출해낸다.
클러치 집중력 또한 뛰어나다. 승부처 유려한 드리블을 통해 수비를 제친 뒤 림으로 접근하는 장면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커리어를 통틀어 기억에 남을만한 위닝샷도 다수 생산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드리블 능력과 운동 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김선형은 지난해 첫 통합 우승을 맛봤다. 입단 초부터 경이로운 플레이로 많은 팬을 확보한 김선형은 SK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한 시즌 만에 남긴 엄청난 임팩트, 조 잭슨
2010년대 중반 외국 선수 제도의 변화로 유입된 단신 외국 선수들은 화려한 기술을 바탕으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기술자 단신 외인들의 등장은 국내 선수들을 자극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단신 외국 선수를 모두 언급할 수는 없기에 대표로 선택한 한 명의 선수가 바로 조 잭슨이다. KBL에서 뛴 기간은 비록 한 시즌에 불과하지만 잭슨이 남긴 임팩트는 그만큼 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도 잭슨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다.
잭슨은 드리블, 스피드, 탄력 등 다양한 장점이 있는 선수였다. 그를 바탕으로 하이라이트 필름도 많이 만들어냈다. 삼성과의 경기 도중 레그 스루와 비하인드 백 드리블을 섞어 KBL 역사상 가장 강렬한 앵클 브레이크를 선사하기도 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는 속공 상황에서도 당연히 위력적이었다. 가속이 붙은 잭슨의 드리블을 막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오리온은 잭슨을 앞세워 수도 없이 많은 속공 득점을 창출했다.
하지만 화려함에만 치중하지도 않았다. 가드의 드리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볼을 핸들링하는 것이다. 자세가 높아진다면 상대가 들어올 틈이 많아지고 턴오버가 나올 확률이 커진다.
180cm의 단신 가드 잭슨은 낮은 자세를 바탕으로 굉장히 핸들링 능력이 우수했다. 장미 같은 화려함이 잭슨의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밑바탕에는 탄탄한 기본기가 존재했다. 아무리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어도 그러기 전에 볼을 뺏긴다면 무의미하다.
잭슨은 동료들 또한 잘 챙겨줬다.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한 뒤 골밑으로 파고들면 수비가 쏠리는데 이 상황에서 나가는 킥아웃 패스가 일품이었다. 2대2 게임을 통해 당시 같이 뛰었던 빅맨 장재석을 살려주는 플레이도 자주 나왔다.
잭슨 효과를 제대로 누린 오리온은 김승현 시대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잭슨의 플레이를 한국에서 더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KBL 무대를 일찍 떠났다. 한국을 떠나고 1년이 흐른 뒤 잭슨은 총기 및 마약 소지로 체포됐고, 2017년을 마지막으로 이렇다 할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테크니션의 대표주자, 변준형
카이리 어빙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NBA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다. 별명이 ‘코리안 어빙’이라면 어느 정도 드리블 능력에 있어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는 뜻. 코리안 어빙 별명의 주인공은 바로 KGC의 변준형이다.
동국대를 졸업한 뒤 KGC에 입단한 변준형은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화려한 드리블 능력과 스타성을 바탕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기도 했다.
변준형의 플레이에서는 특유의 리듬을 통해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것이 인상적이다. 드리블 과정에서 강약 조절이 좋다. 속도를 내야할 때는 내지만 잠깐 스피드를 조절하며 상대를 속이는 능력도 탁월하다. 본인만의 헤지테이션 무브를 통해 하이라이트 필름을 다수 양산하고 있는 변준형이다.
변준형의 또다른 장기는 역시 스텝백 점퍼다. 스텝백은 NBA에서는 많이 나오는 플레이지만 난이도가 만만치 않아 변준형의 등장 전까지 KBL에서 국내 선수들이 자주 시도하지는 않았다. 제임스 하든의 플레이를 보고 영감을 얻은 변준형은 스텝백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었다.
당연히 스텝백을 잘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드리블에 이어지는 연결 동작이 매끄러워야 한다. 변준형이 스텝백 장인으로 진화한 것은 꾸준한 연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빡빡한 수비를 벗겨낼 수 있기 때문에 스텝백은 상대의 수비가 더욱 강해지는 클러치 순간에도 빛을 발하는 기술이다.
변준형은 인터뷰에서 “나보다 개인기가 좋고 드리블을 더 잘하는 선수는 많지만 내가 상황에 따라 활용을 좀 더 잘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센터여서 드리블이 약했으나 포지션을 바뀐 뒤로 연습을 많이 했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변준형은 충분히 리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 테크니션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미드레인지 구역에서의 생산력을 이전 시즌보다 더 높인다면 드리블 강점을 더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