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으路] 땅끝에서 만나는 냉삼 맛집, 백반 맛집 - 해남 본동기사식당
해남 송지면 송호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본도기사식당 |
정말 맛있는 집을 만난다는 것은 의외로 음식의 맛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 음식을 만나기까지의 상황이 중요하다. 즉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상태에서 그 음식을 만나게 되었는지가 그 음식에 대한 평가를 기대 이상으로, 혹은 기대 이하로 내리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극단적인 예가 모두가 잘 아는 도루묵의 예일 것이다.
각설하고, 맛집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길게 끄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본동식당은 해남군에서도 땅끝마을, 송호해변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거나 들르기 마련인 식당이다. 위치도 좋지만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반찬으로 유명한 갈치백반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 이 본동기사식당은 기자에겐 냉동삼겹살, 즉 '냉삼'의 맛집으로 기억될 것이다.
KHT 총괄담당자와 본지의 오택준 대표가 약 5일에 걸쳐 '매주 떠나는 1박2일 해남 걷기여행' 답사와 촬영, 리본작업을 진행하던 중, 계속되는 일정에 피로가 누적되어 온 몸이 지치는 상황이 왔다.
너무 힘들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마음먹고 일정을 마무리하던 그 때, 저녁을 먹기위해 들어간 본동기사식당에서 늘 먹던 백반이 아닌, 몸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고자, 아니 소위 말하는 '몸보신'을 하고자 다른 메뉴를 찾았으나 눈에 띄는 것은 냉동 삼겹살이라고 했다.
해남까지 와서 냉동 삼겹살이라니, 꽤 실망스러웠지만 기력도 없어 다시 앉은 자리를 박차고 다른 곳으로 나가기에는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주문했던 냉삼. 그 '어쩔 수 없이' 나온 냉삼을 무쇠판에 구워 한 입 먹는 순간 '아니, 뭐가 이렇게 맛있지?!'라며 여태 가진 실망과 불평을 잊고 말 그대로 '폭풍흡입'을 했단다. 정말 맛있게 먹었었다고.
이 이야기를 앉아서 듣는 나 역시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침, 점심을 거르고 7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해남 땅끝마을. 집에서 나온 시간까지 합하면 9시간은 걸린 셈이었다. 배는 배대로 고프고 로드프레스 6월호를 탈고 후 막 출간(e-book 업로드)한 시점이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게다가 요새 몸까지 부쩍 부실해져 있었다.
그렇다 해도 그 이야기만치나 "그래도 그렇지..냉동 삼겹살은 좀..." 이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출발 전 "오늘은 숙소에서 고기라도 구워먹자"는 말도 있었으니까.
냉동삼겹살 3인분 |
이렇게 한 상이다. |
몇 가지 반찬과 함께 냉동삼겹살 한 상이 차려진다. 일단 먼저 시킨 3인분, 하얗게 언 채로 내어온 냉동삼겹살의 핑크빛 자태에 "고기 그 자체는 죄가 없다."며 조금은 언 마음이 녹는다. 일단, 냉동 삼겹살은 냉동 삼겹살이 가진 고유의 맛이 있다. 그 맛을 싫어하지 않기에, 아니 좋아하기에 막상 눈 앞에 차려지니 감사하고 겸손해진다.
무쇠판에 불을 올리고 불이 달구어질 동안 함께 나온 밑반찬들을 맛 보며 "역시 김치는 해남" 운운하고 있을 때, 드디어 고기가 달궈진 무쇠판 위로 놓이며 특유의 익는 소리를 발산한다.
오늘, 나 그냥 이대로 넘어가불랍니다. |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우며, 아래로는 흘러내리는 돼지기름에 김치를 구울 준비를 한다. 이 삼겹살에서 나오는 돼지기름으로 구운 김치는 밥 위에 얹어먹으면 정말이지 환상의 밥 도둑이다. 그 맛 만으로도 앞에 놓인 빈 공기가 두 셋은 가볍게 넘을 것이다.
냉동 삼겹살을 뒤집어가며 바짝 익히는 가운데 무언가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바로 냉동된 고기를 구울 때 흔히 생기기 마련인 하얗게 익어가는 핏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일반 생삼겹 마냥, 그런 불순물이 함유된 물기가 하나 없이 그저 고기 그대로 바짝 구워지고 있다.
먼저 다 구워진 고기를 한 입 입에 넣어본다.
"와, 여기 진짜 맛있는데?"
시키지도 않은, 그렇다고 일부러 내려 했던 꾸밈도 아닌, 정말 솔직하게 저절로 입 안에서 나온 감탄이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 곳에서 냉삼을 처음 먹은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탄을 한다. 이게 무슨 '한돈'이나 보성 '녹돈', 지리산이나 제주도의 흑돼지도 아니건만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한 입 드셔보세요! |
자글자글 구워진 냉삼과 김치에 쌈장과 마늘까지 더해 한 입 싸 먹는다. 기가 막힌 이 맛, 방금 전까지 '냉삼'에 가졌던 편견과 실망감은 사라지고 겸손함만이 자리잡는다.
너무 맛있는 고기는 의외로 오스트리아산 수입고기다. 김치를 넉넉히 더 가져와주시는 이모님께 물어보니 냉동삼겹살을 팔기로 하면서 정말 온갖 냉동 삼겹살 고기는 다 먹어보았는데 이게 제일 맛있어서 이것으로 골랐다고 하신다. 정확한 선택이셨다는 느낌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냉동삼겹살만이 가지고 있는 그 고소하게 탁 올라오는 맛과 향이 큰 장점으로 녹아든다. 냉동 삼겹살이 가진 한계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글쎄... 여기에서는 왠만한 생삼겹살보다 훨씬 낫다.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하다.
그 힘든 여정, 공복감을 이다지도 고소하고 기름지게 채워줄 수 있다니, 게다가 값도 너무 착실하다. 이 자리가 감사할 지경이다.
솔직히, 여태 먹은 냉동 삼겹살의 경험 중 이 날 이 자리가 가장 맛있게 먹은 날이었다.
이 집이 냉삼 맛집인데는 이 김치도 한 몫 한다. |
그리고 이 집이 냉삼 맛집인데에는 바로 함께 나오는 2종의 김치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나는 배추 묵은지, 또 하나는 푹 익은 갓김치이다.
이 김치 두 종은 입에 넣는 순간 "이 곳이 전라남도"임을 바로 알게 해주는 맛이다.
제대로 익은 배추김치는 그 자체의 맛도 맛이지만 돼지기름과의 조화가 환상이다. 만약 이 김치에 목살을 넣어 김치찌개를 끓인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오죽하면 세 번이나 리필해 먹어 이모님이 "워메, 돼야지 괴기는 안 먹고 김치를 반 통이나 묵어쌌네."하며 놀라실 정도이다.
갓김치 또한 그대로도 알싸하고 깊은 맛이지만 배추김치와 함께 볶아도 그윽한 맛이 일품이다. 이 갓김치도 두어 번은 더 요청해 먹었으니 두 말해 무엇하랴.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갈치백반을 빼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1인당 8천원의 가격에 한 상 가득 집밥의 매력이 넘치는 반찬들과 함께 갈치조림이 함께 나온다. '1인분도 허벌나게 환영'한다는 입구의 간판 만큼이나 맛도 정도 푸짐하다.
이튿날은 이 갈치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오전 일찍 (1박 2일 해남 걷기여행 참가자분 중에는 오전 6시 반에 식사를 하신 이도 계셨다.) 문을 여는지라 이 또한 여행자들에게는 큰 장점이다.
갈치조림 백반 한상 |
갈치조림이 끓어오른다. |
크게 화려한 반찬은 없더라도 집반찬을 그대로 옮겨온 듯 다양한 밑반찬이 식욕을 돋운다.
따뜻한 계란말이를 필두로 김치를 지진 것, 꼬막, 열무김치, 젓국 맛 강한 고추지, 갓김치, 무채나물, 애호박볶음, 메추리알 장조림, 어묵볶음, 게장, 파김치 등 무엇 하나 손 안가는게 없이 푸짐한 반찬이 깔리고 가스버너(정감있게 '부루스타')에 인당 한 토막씩 커다란 먹갈치가 들어간 냄비가 올려진다.
자작하게 졸아들때즈음 갈치 한 토막과 흠뻑 양념을 빨아들인 무를 그릇에 얹어 각각의 밥 옆에 놓으면 '이 정도는 되어야 남도의 아침식사'라고 할 만한 본동기사식당의 갈치백반 한 상이 차려지는 것이다.
작년, 본동기사식당의 KHT 참가자들 |
그래서일까, 이 곳을 사랑하는 한국고갯길 여행(KHT TOUR)의 참가자들이 참 많다. 한 번이 아닌 두 세번씩 해남 행사에 오면서 이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또 술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여정을 응원하고 하루의 여독을 푸는 이들이 유독 많다.
그 이른 아침, 그 참가자들로 북적이던 풍경을 추억해본다.
그 추억에 젖어갈때 쯤, 튼실한 갈치 한 토막이 눈 앞에 놓인다. 그래, 일단은 눈 앞의 이것부터 해치우고 볼일이다.
● 본동기사식당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땅끝해안로 1796 / 061-535-2437
● 메뉴 : 냉동삼겹살 1인분 9,000원, 갈치백반 8,000원, 김치찌개 8,000원, 된장찌개 8,000원
● 영업시간 : 07:00~20:30
● 주차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