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커퍼와의 ‘커핑 레슨’…커피를 그렇게 마셨는데, ‘커알못’이었다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코 끝을 스치는 그윽한 커피 향기와 쌉싸름한 커피콩의 맛을 깐깐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커퍼(cupper)’라고 부릅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각각의 원두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커피 감별사’. 바로 ‘커핑(cupping)을 하는 사람’입니다. 커퍼들은 커피 생산지의 기후, 재배 방식 등 원두가 생산되기까지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커피의 맛과 향을 감별합니다.
페루에서 온 10년차 커퍼 헨리 메고 실바 씨 |
최근 전 세계 최대 유기농 커피 생산지인 페루에서 날아온 10년 경력 커퍼 헨리 메고 실바 씨를 만나 ‘커핑’ 레슨을 받았습니다. 실바 씨는 페루의 최대 커피 협동조합인 센프로 커피에 소속돼 있습니다. 실바 씨와 함께 커피업계 종사자이면서 백석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송호석 교수가 특별 전문가로 레슨에 함께 했습니다. 이날 테스트한 모든 커피는 페루산 스페셜티입니다.
본격적인 커핑의 시작. 눈 앞에 총 15잔의 커피잔이 놓였습니다. 한 번에 무려 15종류의 커피를 감별해야 하는 건가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알고 보니 커핑을 위해선 한 종류의 원두를 5개의 잔에 담더라고요.
송 교수는 “한 종류의 원두를 5개의 컵에 담는 것은 보다 정확한 평가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이날은 총 세 종류의 커피를 감별했습니다.
■ 총 4단계의 커핑 과정
첫 단계는 향을 맡는 단계(Fragrance/Aroma)입니다.
각각의 컵에 8.5g의 원두를 담은 뒤 잔 안으로 코를 깊숙하게 넣고 원두의 향을 맡습니다. 물을 붓기 전 원두 본연의 향을 느껴보는 단계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쉽지 않습니다. 송 교수에 따르면 향을 맡을 때는 보통 ‘킁킁킁’ 거리며 강아지처럼 향을 맡는 경우도 있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맡는 경우도 있는데요. 어느 쪽이든 초보자는 내쉬거나 들이마쉬는 숨 때문에 원두 가루가 날려 온전히 냄새를 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송 교수는 “하나의 품종의 원두를 다섯 개의 잔으로 구분한 것은 원두의 균일성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원두에서도 향이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세 종류의 원두를 한 번에 테스트하다 보니 상당히 헷갈렸습니다. ‘이 향이 저 향 같고, 저 향이 이 향 같다’는 느낌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향을 헹궈내야 합니다. 연속으로 다른 종류의 원두를 테스트할 경우 구분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자신의 옷의 향을 맡아 커피 향을 씻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른 원두에 11㎎의 물을 붓고 있다. |
원두의 향을 맡은 뒤엔 11㎎의 물을 부어 풍미를 확인하는 아로마 단계로 넘어갑니다. 물의 온도는 92~93℃ 사이로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약 93℃의 물을 붓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송 교수는 “미국 FTA에서 규정된 커피 프로토콜에 보면 색도를 밝게 도핑한다고 돼있다. 커피가 가진 모든 것을 봐야하기 때문이다”라며 “밝은색의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93℃의 물이 적합하다고 나와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을 부은 원두의 향을 맡는 아로마 단계 |
아로마 단계는 젖은 상태에서 맡은 향과 말라있는 상태에서 맡은 향의 차이를 비교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보자의 입장에선 그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단계에서 각각의 원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향들을 기록합니다. 구운 아몬드, 자스민, 장미, 유칼립투스, 버터향 등등 인간의 코로 맡을 수 있는 모든 향을 적습니다.
두 번째는 ‘브레이킹’ 단계입니다. 물을 부은 뒤 3~4분이 지나면 분쇄된 커피 원두가 물의 표면으로 떠오르는데요. 커피층을 쪼개면서 향을 맡는 단계입니다.
송 교수는 “위에 있는 크러스트(커피 부유물)를 밀어내면서 안에 있는 커피들과 혼합해야 한다“며 “이 때 가장 아래 있는 커피와 섞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래층의 커피와 섞이면 잔맛이 많이 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스푼으로 표면을 서너 번 저으며 순간적으로 커피의 향이 치고 올라오는데요. 바로 이 향을 맡는 단계입니다.
커피층을 깨기 위해 밀듯이 스푼을 젓는 것도, 가장 아래층과는 섞이지 않으면서 커피를 혼합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커피향을 구별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스푼 두 개로 커피 거품을 걷어내는 스키밍 단계 |
세 번째 단계는 스키밍입니다. 커핑 스푼 두 개로 거품을 걷어내는 과정이에요. 이 단계는 커피를 맛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입니다.
마지막 슬러핑 단계에선 공기와 함께 커피를 ‘후루룩’ 흡입해 맛과 향을 확인한다. |
마지막은 ‘슬러핑’ 단계입니다. 물을 부은 뒤 10분 정도 지난 뒤에 찾아오는 단계예요. 드디어 커피의 맛을 보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가장 기다렸던 단계입니다. 향을 맡는 것보다는 맛을 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거든요.
약 93℃의 물을 부었던 커피는 70℃ 정도로 낮아진 상태인데요. 이 때 공기와 함께 커피를 ‘후루룩’ 흡입합니다.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커피를 치아 사이로 통과해 혀와 입안으로 퍼지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호석 교수가 슬러핑 단계를 통해 커피의 맛과 향을 확인하고 있다. |
송 교수는 “입으로 공기와 함께 커피를 들이마시고, 코로 향을 내뱉어야 코 끝에서 향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강하게 한 번에 들이마셔야 하는데, 슬러핑을 할 때 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커피를 들이마시면 맛과 향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삼켜버리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슬러핑을 할 때에는 커피를 마시는 커퍼도 있고, 뱉는 커퍼도 있습니다. 실바 씨는 뱉어내는 커퍼였습니다. 마실 때 나는 맛과 뱉을 때 나는 맛도 다르기 때문이죠.
■ 멀고 험한 ‘커핑’의 길…“커핑 3일 전부터 식단 조절”
커핑 수업 내내 인생 최대의 난제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커피를 매일 세 잔씩 마셨지만 ’커알못’이라는 점만 확인했습니다. 향을 너무 맡았더니 두통이 찾아왔고요. 그 향을 구분하기 위해 주워들었던 모든 커피 정보를 동원해 표현해야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어요. 다만 한 가지, 흥미롭게도 향이 좋았던 커피와 맛이 좋은 커피는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달랐습니다. 초보자가 느끼지 못한 맛과 향을 찾아내 구체적으로 컵노트를 작성하고 점수를 매겼습니다.
커퍼들의 일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농부들이 가져온 원두를 판매하기 위해 객관적 평가 자료를 만드는데요. 위해 하루종일 이 모든 작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실바 씨의 경우 3200명의 생산자가 생산한 커피를 온종일 평가합니다. 사실 커핑 과정은 모든 단계를 20분 이내에도 끝낼 수 있는 짧은 작업지만 그 과정을 엄격하게 완수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바 씨는 “식습관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음하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 특히 커핑 전에는 매운 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철저한 관리와 후천적인 노력도 필수입니다. 실바 씨는 “향을 더 잘 맡기 위해 꾸준한 연습 과정을 거치고 있고 사전 관리도 하고 있다”며 “몸이 회복하려면 3일 정도가 걸린다. 커핑이 예정돼있으면 3일 전부터는 식단을 조절하는 등 관리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송 교수의 경우 “커핑 공부 처음할 때는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달간 홍초만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