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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한걸음… 길 위에서 ‘행복 호르몬’ 충전

산과 바다 걸으며 ‘갑갑 생활’ 잠시라도 잊어보아요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경북 청송 주왕산 ‘안전한 야외 걷기’


2007년 기름유출 사고 이겨내고 회복

무인 궁시도는 괭이갈매기 새 둥지로

경향신문

안면도수목원은 잘 다듬은 길의 묘미를 보여준다. 건너편 자연휴양림은 오래된 송림에서 뿜어 나오는 솔향으로 가득하다. 신록의 계절 태안의 수목원과 휴양림은 제각각 개성을 드러낸다.

안내 책자 첫장에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을 꾸미는 “노을과 바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이란 말은 겸손하다. 노을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하늘이 햇볕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다. 꽃과 나무, 바다도 보통명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우러지다’라는 동사는 어떤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물에 고약한 냄새가 어우러지기도 한다. 저 수식어는 설립자 민병갈(1921~2002)의 “나무를 사랑했다”는 말과도 닮았다.

자연과 교감하는 길, 실존을 들여다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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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의 큰연못 정원은 애초 조경용이 아니었다. 척박한 모래땅에서 힘겹게 자라는 나무에 물을 대려는 저수조였다. 천리포수목원의 모든 공간은 꽃과 나무, 풀들을 위해 존재한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떠한 미사여구도 수목원을 담아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안내 책자의 형용사와 부사를 제거한 담백한 저 수식어가 최선의 표현 같다. 노을, 바다, 꽃, 나무 같은 단어는 여느 보통명사와 달리 직관적·직접적인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 수목원의 보유 식물은 1만6531종(2019년 6월30일)이라는데, 그 식물 하나하나가 감흥을 자아낸다. 단일 식재가 아니라서 단조로움을 느낄 틈도 없다. 365일 천리포 수목원엔 꽃이 피어난다.


수목원 서편 ‘서해전망대’로 가 나무침대에 누우면 서창리 갯벌로 낭새섬과 서해가 펼쳐진다. 일출 하면 동해, 일몰 하면 서해. 태안은 서해안 중에서도 해넘이 명소로 꼽힌다. 서해전망대 쪽 노을은 그중 으뜸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40분, 폐장 시간을 앞두고 서해전망대에서 곧 수목원 너머 해안과 숲과 꽃밭이 벌건 노을에 잠길 것을 상상하다 아쉬움에 자리를 뜬다. ‘가든 하우스’에 머물면 이 노을과 밤의 수목을 맘껏 즐길 수 있다. 후문에서 서해전망대를 거쳐 정문에 이르는 길은 걸릴 게 없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날 수 있도록 평탄한 길을 내고 그 위에 데크를 깔았다. 습지원도 데크 길이다.


나머지 길에선 시멘트나 데크로 만든 길을 찾기 힘들다. 수목원 철학이 그렇다. 길을 내느라 나무를 자르는 일은 없다. 가지가 길을 막으면 길을 돌려 흙길을 만들었다. 태풍에 잘려 쓰러진 나무를 잘게 썰어 길에 뿌렸다. 곳곳의 의자는 부러진 나무로 만들었다. 가지가 부러져도 뿌리를 흙속에 내렸다면, 나무를 그냥 둔다. 이 흙길, 나무길은 구불하다. 자연 지형을 따라 길이 흐른다. 이정표가 없다면 길을 잃어버리기도 십상이다. 인공 연못도 조경을 위한 게 아니다. 수목을 키우려는 물 저장소로 만들었다.


수목원 마케팅 팀장이자 자연해설사인 최수진씨는 “자연 날것의 흙내를 느끼는 길을 드리려고 한다. 흙내를 맡는 게 과학적으로 신빙성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분갈이를 할 때 세로토닌이 더 나온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영국 브리스틀대 연구팀은 흙속 미생물 ‘마이코박테리움 박케(Mycobacterium vaccae)’가 ‘행복 호르몬’이란 불리는 세로토닌을 더 많이 분비한다는 연구 결과를 2008년 냈다. 지금도 인용되는 연구 결과다. 모두가 이 흙길에 만족하진 않는다. 비오는 날 흙탕물이 흰바지에 튀었다는 민원 같은 게 종종 들어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관람객은 줄었지만, 한 해 30만명이 찾던 곳이다.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매일 일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최씨는 우선 걷기를 꼽았다. “(한국 사회의) 삶의 속도는 숨가쁠 정도다. 걷기에서 존재 이유를, 살아 있음을 느낀다. 수목원에서 걷기는 자연과 교감하는 행위다.” 걷기에 관한 책으론 고전 반열에 오른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첫 장, 첫 문장이 떠올랐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최씨는 맑은 날과 흐린 날, 추운 날과 더운 날, 비오는 날과 갠 날 시시각각 마주하는 수목원의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그 어느 순간도 마뜩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빽빽한 수림의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일조량에 따라 수목원 곳곳의 색감과 기조는 변한다.


봄엔 목련·수선화·동백나무·만병초가, 여름엔 수국과 수련·상사화·연꽃, 가을엔 닛사·낙우송· 메타세쿼이아, 겨울엔 노각나무·배롱나무·호랑가시나무가 계절 대표 식물로 관람객을 맞는다. 수목엔 명패를 붙여둬 그 이름을 알도록 했다.


이곳은 민둥산이었다. 모래밭에 이룬 기적이라 할 만하다. 이 기적은 민병갈의 나무 사랑에서 비롯됐다. 최씨는 “설립자가 지구상 식물의 안식처로 만들고 싶어 했다.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곳을 만들면 사람도 더불어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태안의 또 다른 유명 수목원은 남면 신장리의 청산수목원이다. ‘핑크뮬리’ ‘황금메타세쿼이아’ ‘허브원’ ‘수련원’이나 ‘밀레정원’ ‘고갱정원’ ‘모네연원’ 같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각각의 섹터를 단일 식물 재배지나 테마 정원으로 꾸몄다. 서양 억새인 팜파스 그라스(pampas grass)로 유명하다. 수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이곳 ‘팜파스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뜨면서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곳에도 황금산나무길이나 낙우송길 같은 길이 있다. 단일 수종이 각 구획에 잘 정리 정돈된 정원과 그 곁길을 좋아한다면 찾을 만하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안면송 군락지로 유명하다. 건너편 안면도수목원도 정제된 조경과 전통 정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태안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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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해변길은 170㎞에 이른다. 5코스인 노을길은 바다와 사구, 솔밭을 한데 둘러볼 수 있다. 노을길은 휠체어, 유모차도 오가는 무장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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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을 끼고 돌거나 송림을 가로지르는 길이 170㎞에 이른다. 해변길은 1코스 바라길(12㎞), 2코스 소원길(22㎞), 3코스 파도길(9㎞), 4코스 솔모랫길(13㎞), 5코스 노을길(12㎞), 6코스 샛별길(13㎞), 7코스 바람길(16㎞)로 이어진다. 솔향길(1코스 10.2㎞, 2코스 9.9㎞, 3코스 9.5㎞, 4코스 12.9㎞, 5코스 8.9㎞)에 안면송길(15.5㎞), 태배길(6.4㎞)도 뒀다.


29일 찾은 곳은 5코스 노을길이다. 이 길도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도록 만들었다. 사구 해안을 따라 데크를 깔았다. 바닷바람에 고개를 돌리면 소나무밭이 드러난다. 삼봉 ‘사색의 길’도 멀지 않다.


태안 문화관광 해설사 정경자씨는 “ ‘태평하고 안락하다’는 태안(泰安)이란 이름처럼 편안하게 사람을 품는다. 산길과 송림, 바닷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태안 바닷길은 동해처럼 다이내믹하지 않지만 오밀조밀 잔재미가 있다. 멀리는 백악기부터 선사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든, 자연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했다.


정씨는 1990년대부터 국내외 곳곳을 여행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이탈리아 해변길로 유명한 친퀘테레로 갔다. 해변길을 가는데 당시 한국 돈으로 1만원가량을 받더라. 그때는 태안을 몰랐다. 지금 보면, 태안 해변길이 훨씬 이쁘다. 군청에 농반으로 태안 해변길도 친퀘테레처럼 입장료를 받으라고 말한다”고 했다. 정씨는 10년 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했다. 본업은 농사다.


태안 길은 코로나19 시기 ‘안전 여행지’로 꼽을 만하다. 자연스러운 거리 두기가 가능하다. 수목원길에서, 해변길에서 ‘두 팔 거리’는 말할 것도 없이 수m에서 수십m 거리가 확보된다. 이 점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해변이나 솔밭에서 놀다 간다. 인간이 머무는 곳엔 문제가 발생한다. 쓰레기다. 태안군 관계자는 “야외에 놀러왔다가 먹다 남고, 쓰다 남은 쓰레기를 버려두고 가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 지역 종량제 봉투에라도 담아두면 될 텐데, 그러지도 않는다고 한다.

전설의 길에서 지질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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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에서 용연폭포에 이르는 주왕산 무장애 트레킹 코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용추협곡이다. 옛사람들은 이 협곡을 선계(仙界)로 가는 길목이라 여겼다.

지난달 15일 경북 청송 폐교에 자리 잡은 나무닭움직임연구소를 찾았다. 전태일 50주기 기념 연극 <연극 전태일-네 이름은 무엇이냐>의 연습 장소였다. 여러 배우들이 추천한 곳이 연구소에서 6㎞ 떨어진 국립공원 주왕산이었다. 종종 이곳에 들러 산책하며 긴장을 푼다고 했다.


초입에서 청송국가지질공원 자연해설사 김상영씨를 만났다. 코로나19 탓에 탐방객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경북 지역이라서 더 그런 듯해요. 10분에 몇 명 지나갈까 말까 하니까요.” 김씨가 입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점퍼엔 ‘지켜요 탐방 안전거리 2미터’라는 명찰이 붙어있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탐방객에게도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청송 주민들의 삶이 힘겨워질까봐 걱정했다. 청송 지역경제도 외국인 노동자 힘으로 돌아갔다. 그는 “사과 농사도 짓고, 사과 공장도 돌려야 하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떠나고 없다”고 했다.


‘길’을 물었다. 김씨는 대전사에서 용연폭포에 이르는 길을 추천했다. “왕복 6㎞죠. 1시간30분이면 왕복이 가능합니다. 부모와 아이, 장애인이 다 같이 다닐 수 있어요.” 그는 이 코스가 산행의 시작 단계로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그는 사진 촬영의 시작 단계로는 주산지가 꼽힌다며 이 말을 전했다.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한 김씨는 주왕산 길이 매일 새롭다고 했다. 원래 없던 꽃이나 풀이 숲길에 나타나면 한참을 들여다보며 유래를 확인하려 한다.


주왕산 길은 전설의 길, 이야기의 길이다. 유명한 ‘주왕산 전설’ 하나는 당나라 덕종 때 주도란 사람, 다른 하나는 신라의 왕자 김주원과 관련된 전설이다. 두 전설은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주왕산은 이 전설을 적극 활용한다. 자하 터 안내는 주왕이 신라군에 맞서 싸우려고 쌓은 자하성(주왕산성)과 주왕이 최후를 맞이한 주왕굴을 연결하는 자하교가 있다고 써놓았다. 돌무더기에 전설이라는 안내와 함께 자하성 흔적이라고 표기했다. ‘자하성 스토리텔링’은 주왕산 전설을 4컷의 만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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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무장애 탐방로 내 학소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부근에 있는 다리다.

또 다른 전설은 주왕계곡 쪽 ‘아들바위’에서 이어진다. “바위를 등지고 다리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안내판에 한복을 입은 여성이 바위로 돌을 던지는 그림까지 묘사해뒀다. 옛사람들의 미신과 남아선호의 방법론을 현재에도 유효한 양 그림으로 상세히 안내한 표지판은 ‘전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시대착오적 느낌이 들었다.


주왕산의 여러 전설은 바위의 역사에 비할 바 못된다. 주왕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이다. 기암 단애, 용추폭포, 절골, 월외계곡 같은 주왕산 곳곳의 경관은 중생대의 퇴적암과 화성암 등에서 비롯됐다. 중생대 경북과 전남을 연결하는 활모양의 화산대를 따라 화산활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전설보다 지질과 생태에 관심이 많다면 주왕산버스터미널 쪽 ‘탐방안내소’에서 전시관을 둘러본 뒤 산책에 나서는 게 좋다. 주왕산의 지질과 깃대종인 야생 동식물을 전시한다.


청송군과 태안군의 공통점은 지질이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다. 빙하기 이후 1만5000년 동안 형성됐다. 바닷바람이 쌓아 올린 사구와 식은 용암이 빚어낸 바위 곁을 걸으며 굳이 중생대니 하는 지구과학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느리고도 오랜 지질이 사람들을 편히 품어낸다. 태안군, 청송군 모두 국제슬로시티연맹에서 인증받은 ‘슬로 시티’다. ‘느리게 걷기’는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을 떨치거나 일념에 빠져드는 행위다. 그 행위조차 개의하지는 않는 게 걷기의 궁극적 경지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지자체는 ‘길’ 경쟁에 들어갔다. 청송의 주왕산 길은 경북 인접 지역인 영양군과 봉화군, 강원의 영월군은 ‘외씨버선길’을 만들었다. 시인 조지훈의 ‘승무’ 중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에서 따왔다. 보선은 버선의 사투리다. 경북과 강원을 횡단하는 이 길은 총 240㎞다. 외씨버선길을 횡주하고, 170㎞의 해변길을 종주하겠다는 다짐을 품고 일단 그 길에서 물러났다.

푸른 마늘밭·선분홍 양귀비…원색 창연한 태안 가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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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도는 ‘숨겨두고 싶은 여행지’로 꼽히곤 했다. 지금은 아기자기한 섬마을과 육쪽 마늘로 유명하다. 나지막한 산마을과 기암괴석이 돌출한 해안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난달 28일 낮 12시26분, 태안 모항항에서 갈매기호를 탔다. 제1 목적지는 가의도. 뱃길로 40여분 거리. 그 길에 여러 갈매기 떼가 오갔다. 갈매기호와 경쟁하며 저공비행하는 갈매기를 찍으려 했다. 줌인 하는 순간마다 갈매기 편대는 렌즈 밖으로 사라지곤 했다. 갈매기호 선장에게 배 최고 속도를 물었다. “25노트요.” 대략 시속 46㎞다. 갈매기? 시속 150㎞가 나온다고 한다. 애초 갈매기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갈매기 떼의 이끌림을 받듯 배는 가의도로 들어선다.


가의도(賈誼島). 가의(賈誼)란 중국인이 이 섬에 피신하여 살았던 데서, 이 섬이 신진도에서 볼 때 서쪽 가에 있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숨겨두고 싶은 여행지’니 ‘한국의 하와이’니 하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가의도는 2007년 12월7일 삼성물산 소속 삼성 1호와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 충돌로 기름이 유출된 뒤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13년이 흐른 지금 그 고통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바다는 살아났다.


선착장과 작은 몽돌 해변에서 가의도 산등선 쪽으로 슬슬 올려다보면 대형 야구 스타디움의 그라운드와 관중석 같다는 느낌이 든다. 원색의 응원깃발이 그라운드 둘레로 꽂힌 듯도 하다. 그 푸른 물결은 마늘밭이고, 선분홍 원색은 관상용 양귀비꽃이다. 지금 가의도는 ‘육쪽 마늘의 원산지’로 유명하다. 조선 왕조 연산군 때 진상할 전복 양이 많아 줄여달라는 민원 뒤 마늘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마을 등성 부근 ‘굿두말’ 마을 중앙에 높이 40m, 둘레 7m 규모의 수령 450년 은행나무도 볼거리다. 작은 마을, 세월 먹은 나무의 존재감은 커 보였다. 이 나무는 5㎞ 이내에 수컷나무가 없어 한 번도 열매를 맺은 적이 없다고 한다.


남항 선착장 방파제에서 솔섬과 해변을 따라 난 절벽, 그 아래 낚시꾼을 구경하다 다시 갈매기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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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도는 최근 괭이갈매기가 살면서 화제가 됐다. 태안군은 난도의 갈매기가 늘면서 궁시도로 서식지를 옮긴 것으로 본다.

태안군청이 기자단을 태안에 초청했다. 원래 일정은 가의도 정상까지 난 길을 걷는 것이었다. 가의도는 백나무와 떡갈나무 등 원시 천연림으로도 유명하다. 태안군이 가의도 일정을 줄이며 대신 추천한 곳이 궁시도다. ‘활과 시위에 걸린 화살’을 닮아 붙인 이름이다.


면적 0.15㎢, 해안선 길이 0.3㎞의 무인도에 사람이 살 리도, 잘 찾을 리도 없다. 이 궁시도가 화제가 된 건 괭이갈매기 덕이다. 괭이갈매기는 태안 난도에 주로 서식했다. 난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전되는 곳이다. 태안군은 “난도에서 2.85㎞ 떨어진 궁시도에서 5000여마리의 괭이갈매기가 집단서식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난도의 괭이갈매기 수가 늘면서 일부가 인근 섬으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화재보호법 처벌이 강화되면서 괭이갈매기 알 훔치는 게 줄었다고 한다. 최근 큰 태풍도 없어 개체수가 늘었다고 군은 설명했다. 지난 주말 이후 여러 언론이 괭이갈매기 영상을 담아 이 소식을 전했다.


작고 아담한 궁시도는 괭이갈매기 소리로 시끌했다. 갈매기들은 뱃소리, 사람 소리에 ‘꺄악 꺄악’ 하는 독한 울음소리를 질러댔다. 배가 빠져나올 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2차례 여객선이 가의도와 안흥항을 오간다. 배를 하루 단위로 빌릴 수도 있다. 보통 낚시꾼들이 1인당 수만원을 나눠낸 뒤 출항한다.


태안·청송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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