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 선수 8끼요?…저는 해준 게 없는걸요”
- 조성숙 태릉선수촌 선수식당 영양사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지난달 막을 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최고의 장면 중 하나는 단연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는 ‘아이언 맨’ 헬멧을 쓰고 시속 120㎞를 넘나드는 속도로 슬라이딩 센터를 질주했다. 1~4차 주행 합산 기록은 3분20초55.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달 평창 알펜시아 경기장 내 경기력향상지원센터에서 조성숙 영양사와 윤성빈 선수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윤 선수는 남자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 센터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
윤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간 곳이 있다. 대한체육회가 올림픽 기간 중 알펜시아 경기장에서 운영한 ‘경기력향상지원센터’다. 윤 선수는 센터 영양사와 조리사들을 만나 고마움을 전했다. 대한체육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경기력향상지원센터가 윤성빈 선수에게 하루 8끼를 제공했다”고 소개했다. 이내용이 기사로 나가자 포털사이트에서 ‘윤성빈’을 검색하면 ‘하루 8끼’, ‘윤성빈 식사’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지난 5일 조성숙 대한체육회 영양사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태릉선수촌 선수식당을 책임지는 그는, 올림픽 기간엔 평창 지원센터를 진두지휘했다. 기자가 ‘윤성빈 8끼’를 먼저 꺼내자 난처한 듯 웃었다.
“사실 선수촌에서 8끼를 만들어 주진 않았어요. 윤 선수가 한창 체중 늘릴 때 3끼 꼬박꼬박 먹고, 운동 전후로 단백질 보충제를 먹다 보니까 하루에 8번쯤 먹는다는 얘기가 좀 확대된 거죠. 제가 성빈이한테 그랬어요. ‘내가 8끼 해준 적도 없고 기사가 이렇게 나오는데 어떡하니’라고요.”
평창올림픽 기간 중 센터를 찾아 식사를 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
▶선수촌 식당 못지않은 인기 = 대한체육회는 굵직한 국제대회가 열리면 한국인 조리사를 현지에 파견했다. 한국 선수들에게 한식을 만들어 먹이기 위해서다.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선 대사관을 빌려 음식을 차렸다.
반면 겨울올림픽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 처음으로 급식 지원단이 파견됐다.
당초 대한체육회는 평창올림픽에는 별도로 급식 지원단을 꾸리지 않을 계획이었다. 조직위원회가 올림픽 선수촌 안에서 운영하는 선수식당에 한식이 제공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국 선수단의 일부 관계자들이 AD카드가 없어 선수촌 입장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체육회는 선수단 관계자들의 식사 지원을 위해 ‘경기력향상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자 센터는 선수들로 더 붐볐다.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 썰매 종목 선수들과 알파인 스키 선수들이 단골이 됐다. 기록을 위해 몸무게를 유지해야 하는 썰매 선수들은 하루에 보통 6000㎉를 먹는다. 이들은 뷔페식으로 차려진 센터에서 전복ㆍ가재구이, 낙지소면, 도가니탕 등을 입맛대로 담아 먹었다.
“알펜시아 경기장에서 시합을 치르는 종목 선수들이 주로 왔죠. 선수들이 조직위 선수식당도 잘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선수촌에서 훈련할 때 먹던 밥을 더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선수식당에서 냈던 음식을 만들어 주니 다들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몸집이 워낙 좋은 썰매 선수들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고요.”
지난 5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조성숙 영양사.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운동과 음식 = 1966년 처음 문을 연 태릉선수촌. 그간 이곳에서 훈련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 116개(여름ㆍ겨울올림픽 합산)를 땄다. 숱한 종목의 숱한 선수들이 거쳐갔다.
“입촌한 선수들의 식습관은 종목별로 다르고 개개인마다도 제각각이에요. 접시에 음식 골라 담는 것만 봐도 식습관이 딱 보이죠. 골고루 잘 먹는 선수들을 보면 칭찬하고 아쉬운 선수들에겐 과일이나 채소 더 먹으라고 잔소리도 해요. 과거 역도 선수 중에는 단백질 보충제 안 먹고 온전히 식사만으로 영양 보충해서 메달 딴 선수도 있어요.”
‘훈련 뒤의 회복’. 조성숙 영양사는 이 시기에 영양보충이 선수들에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동그란 접시의 3분의 2에는 밥, 빵, 국수 같은 탄수화물 음식을 담고 나머지는 고기, 생선, 달걀 같은 단백질 메뉴로 채우라고 강조해요. 고갈된 에너지를 제대로 회복해야 부상 없이 다음 훈련에 임할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조 영양사는 태릉선수촌 선수식당 배식대 끝에 스무디 머신을 뒀다. 갖은 채소와 과일, 견과류, 우유 등을 한데 갈아서 만든 특제 스무디는 선수들에게 인기 아이템이다. “선수들이 운동을 마친 직후에는 입맛이 떨어져요. 하지만 이때 에너지 보충은 꼭 해야 하거든요. 스무디는 부담스럽지 않게 영양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죠. 에너지도 살리고 손상된 근육도 회복할 수 있어요.”
태릉선수촌 선수식당 메뉴.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태릉에서의 30년 = 조성숙 영양사는 지난 1985년 대한체육회에 들어왔다. 그때가 24살, 어린 나이었다. 훈련 기간엔 태릉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개최지에서 선수들 끼니를 챙기며 30년을 보냈다. 여름 올림픽만 따져도 바르셀로나올림픽(1992년)부터 리우올림픽(2016년)까지 7번을 경험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선수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조 영양사는 “80년대 중후반은 축구, 배구, 농구 대표팀도 태릉에서 훈련하던 시절이에요. 차범근 씨가 대표팀 고참이고 김주성 씨가 막내이던 때였죠. 동계 스포츠 선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늘었어요. 선수마다 스타일이 다 달라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만 봐도 모태범 선수는 넉살좋게 말도 많이 걸고 이승훈 선수는 조용히 눈인사만 하는 스타일이죠.”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사람관계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처음엔 저보다 나이 많은 조리원들, 직원들 대하는 게 어려웠죠. 그만두고 싶던 순간이 참 많았어요. 1994년부터 스포츠 영양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이론에 대한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자연히 '그만두겠다'는 말도 줄어들었죠. 스포츠 영양을 전공한 사람에게 선수들하고 부대낄 수 있는 선수촌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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