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뭐가 다를까?
최근 홀로서기를 시작한 30대 직장인 김 모(33)씨는 집 앞 마트에서 베이컨과 우유, 달걀을 고른 뒤 계산하려 하자 카운터의 점원이 “베이컨의 유통기한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으니 다른 걸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물건을 사면서 식품의 유통기한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김모 씨는 이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정리했다. 요거트, 샐러드 드레싱, 먹다 남은 베이컨까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모조리 버렸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는 소비자는 상당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유통기한·소비기한 병행표시에 따른 영향분석’ 보고서(2013)에 따르면 성인남녀 2038명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먹지 않고 폐기해야 한다’는 설문을 진행한 결과, 56.4%(1150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순식물성 마요네즈를 만드는 스타트업 더플랜잇(The PlantEat)의 양재식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유통기한 vs 소비기한
유통기한은 상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유통기한을 흔히 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기한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유통업자가 그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법정기한을 ‘유통기한’이라고 한다. 현재 모든 식품의 유통기한은 실제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의 60~70% 선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식품이 변질되지 않는 기간이 5일이라면 60~70%인 3일을 유통기한으로 전한다.
반면 소비기한(Use by date)은 식품을 섭취해도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 최종 시한을 뜻한다.
유통기한은 식품에 표기돼 있어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만, 소비기한까지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5℃ 이하로 보관할 때 유통기한이 10일인 우유는 미개봉 시 50일, 유음료는 30일, 치즈는 70일까지 품질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달걀은 유통기한 20일이 지나고도 최대 25일간 더 보관하고 섭취할 수 있다. 두부(유통기한 14일)의 소비기한은 유통기한 이후 90일이나 된다. 유통기한이 3일인 식빵은 밀봉해 냉동보관할 경우 20일은 더 먹을 수 있다.
유통기한 만료 이후에 면류 중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은 50일까지, 냉동 만두는 25일까지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액상커피는 유통기한 만료 이후 30일, 고추장은 유통기한 만료 이후 2년을 더 보관해도 문제가 없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다르다 보니 현행 표시제도 역시 도마에 올랐다. 식약처의 조사에선 현행 유통기한 표시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67.2%(1370명), 반대하는 사람은 29.1%(59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한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는 “소비기한의 도입은 섭취 가능 시점을 알려줘 식품폐기를 줄여 자원낭비를 줄일 수 있다”(607명)는 점이었다.
실제로 한국식품공업협회에 따르면 유통기한 경과 등의 이유로 폐기해 발생한 손실비용은 연간 6500억원에 달한다.
반대 입장의 가장 큰 이유는 “현행 제도가 소비자에게 익숙하고 문제가 없다”(493명)는 의견이었다.
앞서 2013년 보건복지부가 일부 식품에 대해 소비기한 표기를 권장했다. 다만 필수 사항이 아니라 다수 식품은 유통기한만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선 어떻게?
해외에서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표기는 나라마다 다르다. 다만 소비기한을 더 일반적으로 쓰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식품 판매기한(Sell by Date, 판매를 위해 진열되는 기한), 최상품질기한(Best If Used Date, 최상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한), 사용기한(Use by Date, 제품 보존의 최종기한), 포장일자(Closed Date Coded Date, 식품이 포장된 날짜) 등으로 다양한 구분법을 표시한다.
일본은 상미기한(유통기한 경과해도 품질이 유지되는 식품), 소비기한(유통기한 경과 시 판매·섭취 불가능한 기한)을 모두 제품에 표기한다.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