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신문왕이 ‘메주’를 혼례품으로 보냈던 이유는?
-‘우리 농산물 이야기 - 콩’ 기획전 기획한 김재균 농업박물관장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어리숙하고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을 일컫어 ‘숙맥’같다고 말한다. 이 단어는 본래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사자성어를 줄여 쓰는 말. ‘콩인지 보리인지 구별하지 못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속담 가운데도 콩이 들어간 게 많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등이다.
이처럼 예부터 언어생활에 흔하게 등장했던 콩,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일 만난 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 관장은 “콩이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흔하고 가까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 콩은 여기저기 쉽게 심고 자주 먹었던 작물. 그만큼 사람들의 전반적인 생활 중에도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 중구에 있는 농업박물관은 지난달 24일, ‘우리 농산물 이야기’란 기획전시를 시작했다. 오는 10월 말까지 진행되는 첫 번째 기획전에선 ‘콩’을 주제로 삼았다. 역사 속 콩 이야기, 식재료로서의 가치, 관련된 문화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김재균 관장과 함께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콩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번 콩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한 가지씩 우리 농산물을 다룬 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왜 콩인가? = “콩은 작물 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원산지도 한반도로 추정되고 있죠. 외국에서 유입된 작물들이 참 많은데 콩은 그나마 토종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 속담를 비롯해서 콩에 얽힌 풍습이나 관련된 식품들도 참 많아요.”
김 관장은 콩을 첫 번째 주제로 선정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준비팀은 지난 봄 내내 콘텐츠, 자료 확보에 매달렸다. 경북 영주에 있는 콩세계과학관도 다녀왔다. 그러면서 역사적인 이야기, 품종 자체에 관한 이야기, 학술적 이야기, 식품으로서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콩에 관한 언급이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삼국사기’다. “서리가 내려 콩이 상했다”는 대목이 있다. 한반도에서 콩이 출토된 건 50여곳에 달한다. 대개가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적지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 콩은 조, 벼, 기장, 보리와 함께 오곡(五穀) 으로 묶여 활발히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시기에 콩은 숙(菽), 두(豆), 태(太) 따위로 표기됐다. 콩이란 우리말은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에 처음 등장한다. 전시실에서 이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밭에서 나는 고기 = 콩에는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단백질이 워낙 많아서다. 품종별로 편차는 있지만 재래콩의 40%는 단백질로 구성됐다. 지방, 당분을 비롯해 각종 미네랄도 두루 들었다. 언제든지 쉽게 삼겹살을 먹는 지금 사람들과 달리, 고기가 귀했던 조상들에게 콩은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김 관장은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같은 우리의 장(醬) 문화도 결국은 콩이 기본을 이룬다”며 “옛 백성들은 콩 덕분에 굶주림을 면했고 동시에 우리의 음식문화도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국사기’에는 신문왕이 콩으로 쑨 메주와 장을 결혼 예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두부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콩 식품이다. 우리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에서 두부는 빠지질 않는데,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제조법은 고려 말기 원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불어나는 수입 콩 = 농산물의 이동이 자유로운 시절이다. ‘슈퍼푸드’ 꼬리표가 붙는 남미의 작물부터, 적도지방의 열대과일까지 대부분의 농산물은 집 앞에서 구할 수 있다. 자연스레 전통적으로 먹던 농산물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
콩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 재배하는 콩은 줄어드는데 반해, 외국산 콩 수입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8만헥타르(㏊)에 달했던 국내 콩 재배면적은 지난해 4만5000여헥타르로 크게 줄었다. 반면 물 건너온 콩(렌틸콩, 병아리콩 등)은 2014년 이후 해마다 증가일로다. 전시실에는 검은콩, 대두, 녹두 같은 토종콩을 비롯해 병아리콩 같은 수입 콩도 전시돼 있다.
김 관장은 “지난 90년대 농협에서 내세웠던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구호도 이젠 무색해진 게 사실”이라며 “수입 농산물이 워낙 많아진 시점이지만 이런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되짚어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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