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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을 사냥하면 어떡해요?

Opinion

영화 <파수꾼>(2010) 으로 호평을 받았던 윤성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사냥의 시간>은 탄탄한 배우진과 제작진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개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넷플릭스 개봉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공개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하는 건 혹여나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았던 탓일까? 이 영화의 전반적인 감상은 '뭐하는 거지 저 사람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정도다. 영화 <사냥의 시간>을 아직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이건 그분들을 위해 쓰는 글이다.

사냥의 시간

무질서와 혼란, 총성이 난무하는 회색의 도시, 한국의 근미래 모습이다.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감옥에서 만난 형님의 도움을 받아 대만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준석은 이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도박장의 달러를 훔치자고 제안한다.


준석의 친구인 기훈(최우식)과 장호(안재홍)는 위험한 계획에 주저하지만 이내 동참한다. 도박장에서 일하는 성수(박정민)까지 포섭한 준석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들은 도박장에서 현금과 CCTV 영상이 든 하드를 가져오는 데 성공하지만 곧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게 된다.

납작한 캐릭터

준석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야기했던 하와이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 투명한 바다와 따뜻한 햇볕이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요소이다. 이것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그의 동기다. 준석이의 부족한 서사는 그나마 배우 이제훈의 연기가 빈틈을 메워주고 있다.

하지만 청춘들은 무모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친구들은 교육을 못 받아서인지, 어린 것인지 철이 없고, 계획이 없다. 준석을 제외한 친구들은 알맹이 없이 준석의 위험한 계획에 그저 따른다. 3년 동안 준석이 그들을 대신해 감옥에 갔다 왔기 때문이다.


그저 감옥에서 아는 형님이 많아진 '잘 나가는' 친구 따라 무엇이든 하는 철없는 10대 청소년 같다. 연기자들의 실제 나이대가 전부 30대인데 설마 역할이 10대는 아닐 것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20대 중반까지 살아남아 준 저들이 대견하다고 해야겠다.


심지어 끈질긴 사냥꾼으로 극 중 긴장감의 핵심 요소인 한에게조차 매력을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안톤 시거가 언뜻 생각나지만, 흉내에만 그친다. 분위기와 대사의 깊이가 얕아 인상적으로 각인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장호의 '잠자는 척'하는 장난은 너무 뻔하디뻔하게 활용되어 우스워졌다. 분명 슬픈 장면이었을 텐데 말이다.

사냥꾼의 애매함

"재밌네... 기회를 줄게요. 음, 5분. 갈 수 있는 최대한 멀리 한 번 가봐요. 실망시키지 말고."

극의 약 절반 부분에 등장하는 한의 이 대사는 분명히 이 영화의 터닝 포인트다. 지나치게 안이한 사냥꾼의 저 대사 이후로 이 영화의 긴장감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두려움에 떨다 자신과 눈을 맞추고 다시 체념한 듯 눈을 감는 준석을 보고 한은 무슨 재미를 느꼈을까?


죽음의 공포 앞에 처연해질 수 있는 자세? 아니면 감독은 삶에서 극한의 순간에 뜻밖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걸까? 이 '재밌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영화가 자신과 맞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1시간 정도는 지킬 수 있다.


이 외에도 한의 절대적이며 강력한 사냥꾼이라는 포지션은 애매하다. 여유 있고 침착한 모습은 명백한 포식자의 모습이지만, 좀 더 긴장감 있는 연출이 필요했다고 본다. 누군가를 쫓던 사냥꾼인 한이 반대로 사냥감으로몰리는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임팩트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남성 중심적

사실 한 달여 동안 이 영화를 보기를 망설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델 테스트를 통과한다고 다 성 평등한 작품은 아니지만, 이건 백델 테스트마저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성비가 무너져 있다.


대사가 있는 여성 캐릭터는 기훈의 어머니, 도박장에서 돈을 꺼내주던 직원 , 간호사 정도다. <파수꾼>에서는 배경이 남자 학교고, 남자 무리 사이의 일이니까 이해한다고 쳐도, 디스토피아 한국에서 '청춘'의 생존을 다루는데 여성은 없다. 여성에게도 청춘이 있고, 생존의 문제가 있다.

과한 붉은빛

영화는 대체로 붉은빛을 띤다. 클럽, 밤거리, 저녁 무렵 전부 붉은빛의 조명이 분위기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크린을 뒤덮는 붉은 기는 조금 부담스러워진다. 마지막의 푸른 옥빛 바다와 대비를 이룬 것은 좋았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신선한 콘셉트와 세계관

사실 한국의 디스토피아와 사이버펑크틱한 콘셉트는 새롭고 독특한 미장센을 보여주어 좋았다. 미래적으로 개발된 도시와 차량과 대비되는 폐허의 후미진 분위기와 음악이 잘 어울렸다. 타이틀이 뜨기까지의 초반 설정샷이 이 영화의 베스트다. 사실 영화 전체보다 장면 장면의 미장센을 보는 재미가 더 컸다. 괜찮은 미장센과 콘셉트여서 더 아쉬운 영화였다. 속편이 나온다면 더욱 깊이 있는 캐릭터 분석과 세련된 대사를 보여주기 바란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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