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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채식생활]“핫도그는 역시 소스 맛”…세운상가 옥상에 모인 채식인들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세운상가 옥상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붙은 작은 메모지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하나 뽑아보세요. 감정 상태에 따라 저희가 추천한 음식과 영화들이 있어요.” 

서울 환경영화제 부대행사인 에코 푸드마켓 입구에 다양한 감정을 적은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서울 환경영화제 부대행사인 에코 푸드마켓 입구에 다양한 감정을 적은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미세먼지도 비구름도 없이 맑았던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 세운상가 옥상엔 에코 푸드마켓이 열렸다. 서울 환경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젊은 채식인 단체인 ‘너티즈’가 기획하고, 내추럴푸드 기업 올가니카가 클렌즈 주스를 후원했다. 너티즈의 이혜수 씨는 “비건 문화를 조금 더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다양한 이벤트를 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마켓에선 한살림, 비로소채식모임 등 18개의 부스가 참여해 음식과 잡화를 판매했다. 전시는 물론 가수 에디킴의 공연, ‘채식’을 주제로 한 토크쇼까지 더해졌다. 저마다의 철학으로 비건 음식을 만드는 업체들과 윤리적 소비를 고민하는 다양한 브랜드가 모였고, 오가는 사람들도 채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마켓에선 각자의 방식으로 삶 속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 한살림, 비건 베이커리 부스에선?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부스에선 다양한 채식 식품과 유기농 쌀을 선보였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부스에선 다양한 채식 식품과 유기농 쌀을 선보였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한살림에선 비건 카레, 유기농 즙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가 하면 방문객들에게 유기농 쌀을 무료로 나눠주며 방문객의 관심을 받았다.


행사 참여를 기획한 한살림의 김우영(32) 대리는 “한살림이 워낙에 환경에 관심이 많은데 그간 비건 문화에 대해 알린 적은 없었다”며 “한살림에도 채식 물품이 많다는 점을 알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살림에서 판매 중인 채식 카레

한살림에서 판매 중인 채식 카레

특히 김우영 씨의 경우 어느덧 6년차에 접어든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한살림의 청년 캠프에 참여해 비건 채식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구제역, 조류독감 등을 야기하는 축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채식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김우영 씨는 “공장식 축산에 일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 생활도 하면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해봤다”며 “적어도 육식을 하지 않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채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에코마켓에 참여한 비건 베이커리 ‘길트 프리’(guilt free)는 칼로리 걱정 없이 맛있게 있는 비건 빵을 판매했다. 길트 프리에선 다른 비건 베이커리와 달리 설탕도 쓰지 않고, 기름의 양도 제한해 조금 더 건강에 신경 쓴 ‘비건 빵’을 만들고 있다. 

비건 베이커리 ‘길트 프리’에선 칼로리 부담과 죄책감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건 빵을 판매한다.

비건 베이커리 ‘길트 프리’에선 칼로리 부담과 죄책감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건 빵을 판매한다.

리사 리(Lisa Lee) 대표는 “설탕 대신 스테비아와 바닷물을 발효시킨 에리쓰리톨(erythritol)을 사용한다”며 “칼로리가 거의 없고 당뇨 환자들이 많이 먹는 제품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도 식사 대용으로 먹기에 좋고, 빵을 먹은 뒤 죄책감 없이 만족감, 행복함만 드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리사 리 대표가 칼로리 걱정 없는 비건 빵을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건강을 해치더라도 내 몸이 날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살을 무리하게 뺐고, 식이장애도 있었다”며 “지금은 건강한 몸을 회복했지만 그동안 먹는게 힘들었다. 그런 나도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비건 베이커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핫도그는 역시 소스 맛”…비건 마켓을 찾은 사람들

서울 환경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열린 에코 푸드마켓에선 다양한 부스에서 음식을 판매하며 방문객을 맞았다.

서울 환경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열린 에코 푸드마켓에선 다양한 부스에서 음식을 판매하며 방문객을 맞았다.

에코 푸드마켓을 찾은 방문객들은 10여개의 부스를 여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음식을 맛 보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스무 살 때부터 채식을 시작했다는 최윤혜(26) 씨는 비건 패션 브랜드인 ‘오헤븐(oheaven)’의 국내 론칭을 앞두고 마켓에 들러 시간을 보냈다. 최윤혜 대표는 “스무 살 때부터 채식을 시작했고, 조금 더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지는 3년 정도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채식을 주제로 에세이를 썼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단지 동물이 불쌍하다는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좀 더 종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먹는 것뿐 아니라 들고, 입고, 신는 것 역시 동물성 소재가 많다는 것에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 것이 비건 패션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정 대표는 “클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해외에서 연락을 많이 줘 작업을 하고 있고, 한 달 안으로 국내에서도 론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연 연출자인 바람 컴퍼니의 한윤미(36) 씨는 비건 문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마켓을 찾았다. 특히 한윤미 씨는 지난해 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공장식 축산을 주제로 한 ‘고기, 돼지’라는 공연을 올려 화제를 모은 주인공이다.


그는 “2011년 구제역 당시 살처분 당하는 돼지들의 모습이 모자이크도 없이 뉴스에서 노출되는 영상을 본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저도 돼지고기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왜 그것이 생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었다. 그러면서 공연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작년부터 채식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공연에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돼지의 사육과정,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으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 접근한다. ‘고기, 돼지’는 올해엔 서울거리예술축제에 선정돼 10월 첫 주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특히 다양한 음식 부스가 인기를 모았다. 

로푸드 강사 김여운 씨가 주축이 된 ‘비로소 채식’은 참여형 부스를 열고, 방문객들과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로푸드 강사 김여운 씨가 주축이 된 ‘비로소 채식’은 참여형 부스를 열고, 방문객들과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로푸드 강사인 김여운 씨가 주축이 된 ‘비로소 채식’은 이날 참여형 부스를 만들고, 방문객들과 함께 요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애호박과 바질 페스토 소스로 만든 채식 파스타가 반응이 좋았다.

비건 핫도그를 바로 만들어 판매하는 ‘비건 숍’(Vegan Shop)은 특히나 줄이 길었다. 김소연 대표는 “비건 소시지나 비건 제품,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를 판매하는 비건 쇼핑몰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음식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소시지는 콩 단백질로 만든 100% 비건 제품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콩 단백질로 만든 비건 핫도그는 이날 마켓에서 단연 인기 제품으로 호응이 높았다.

콩 단백질로 만든 비건 핫도그는 이날 마켓에서 단연 인기 제품으로 호응이 높았다.

한윤미 씨는 “평소 고기를 너무 좋아했었기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이후 먹는 것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며 “비건 핫도그는 처음 먹어봤는데, 핫도그는 역시 소스맛이라는 걸 느꼈다”고 웃으며 말했다.


채식인구가 늘고 있다지만 ‘채식’에 대한 편견과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이번 행사에선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채식을 즐길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너티즈의 이혜수 씨는 “오픈된 장소여서 그런지 채식을 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이 근처에 놀러 온 시민들도 많이 들렸다. 채식을 더 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이날 행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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