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채식생활]“채식은 되돌릴 수 없는 트렌드…‘요리’가 더 중요해진다”
- 토니 마사네스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 소장
-“진짜 고기같은 콩패티 많아질 것…채소 맛있게 먹는 방법 고민할 때”
- 채소 잘 먹는 초등학생들 인상적…“잃지 말아야 할 식문화”
- 한국 고추장ㆍ된장ㆍ간장…“로컬주의의 상징”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몇 년 전에 한국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굉장히 놀라웠던 점은 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식판에 채소를 받아서 먹는 모습이었어요. 다른 나라 학교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죠. 한국이 절대 잃지 말아야 할 식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먹는 것’에 관해선 모조리 연구한다는 스페인의 알리시아 요리과학연구소(이하 알리시아 연구소). 2004년부터 14년째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토니 마사네스 소장의 기억에 한국 어린이들이 채소 먹는 모습은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마사네스 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충무로 샘표사옥 ‘우리맛공간’에서 특강을 열었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강연에서 그는 한국의 식문화를 치켜 세웠다. 특히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실마리’를 한국의 식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 토니 마사네스 스페인 알리시아 요리과학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충무로 샘표 사옥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채식은 세계적인 트렌드” = “우리 연구소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식습관과 식생활 개선에 관한 것입니다. 이건 유전적인 부분도 영향을 주지만 ‘학습’도 중요한 요소예요. 어릴 때 채소 먹는 법을 배워두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 입맛이 이어집니다. 이 학습은 본래 가정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잘 되지 않으니 우리 같은 연구소와 기관이 교육에 나선 겁니다. 한국의 사례를 스페인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년 현지 어린이 4000명이 알리시아 연구소를 방문한다. 어린 손님들은 연구소가 마련한 식습관, 식생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배운다. 마사네스 소장이 한국에 머물고 있던 28일, 스페인 현지의 연구소에선 학교 급식 책임자들이 모여 채소 중심의 식단에 대해 토론하는 행사도 열렸다.
마사네스 소장은 ‘채식’은 되돌릴 수 없는 트렌드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식생활은 물론이고, 식품업계 차원에서도 모두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이미 많은 식품회사들이 고기를 채식으로 바꾸는 걸 고민하고 있고 관련 기술도 꽤 발전했다”며 “햄버거 패티 재료를 단순히 돼지고기에서 콩으로 바꾸는 데 그치질 않고 모양과 맛 모두 진짜 고기와 흡사한 패티를 만드는 신기술이 앞으로 더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요리’의 가치가 부각된다고 마사네스 소장은 말했다.
“최근 5년 사이에 사람들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많이 먹는 식단이 채소 중심으로 바뀌는 상황입니다. 외식문화의 변화는 가정 요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러면서 ‘식물성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얼마나 빠르게 맛있게 요리하는가’ 등이 중요한 포인트로 부상하겠지요.”
토니 마사네스 소장은 강연에서 “한국 어린이들이 채소를 잘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윤병찬 기자] |
▶“한국은 보물 같은 곳” = 마사네스 소장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샘표를 통해서다. 샘표는 콩으로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을 세계적으로 알릴 방법을 찾고자 알리시아 연구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한국의 식문화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중국, 일본 사이에 보물 같은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보다 건강한 식문화, 식습관을 현대화시켜 놓은 매력적인 지역이란 생각을 갖게 됐어요. 특히 콩을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었죠.”
그는 샘표가 2012년 출시한 콩 발효액 ‘연두’도 인상적인 제품으로 꼽았다. “음식에 적용하면 자연적인 맛이 살아난다. 채소 섭취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한국의 제품이자 식문화”라고 평가했다.
이날 강연 중 마사네스 소장은 청중을 향해 “한국 음식 가운데 어떤 걸 세계에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청중 사이에서 ‘장(醬) 문화’라는 대답이 나왔다.
지난 2003년 설립된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는 요리법, 식생활, 식문화 등 음식에 관련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세계적인 연구소다. ‘사람들의 식습관 개선을 위해 지식을 창출하고 전파한다’를 목표로 의학저널 란셋(Lancet), 하버드대학교 같은 외부 기관이과 셰프,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오고 있다. 연구 과정에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최우선 덕목으로 꼽는다. 알리시아에 근무하는 연구자들은 요리사, 영양학자, 농부, 경제학자, 사회학자 등으로 구성됐다. [사진=알리시아 연구소 홈페이지] |
마사네스 소장은 “세계의 음식문화 트렌드로 로컬주의를 꼽을 수 있다”며 “콩으로 장을 담그는 문화가 왜 한국에서 발전했는지, 먹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등을 외국 소비자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상품화하는 게 중요하다. 지역적인 의미가 있다면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50~60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사람들이 콩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소득이 높아지면서 ‘콩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고기 소비가 늘어났다”며 “우리 연구소는 콩을 어떤 식으로 변형해 요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알리시아 연구소에 합류하기 전, 마사네스 소장은 신문기자, 요리비평가로도 활동했다. 다양한 식당을 찾아 음식을 맛보고 글을 썼다. 덕분에(?) 지금보다 몸무게가 17㎏ 정도 더 나갔던 시절이다.
그는 “명색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습관’을 모토로 내건 연구소의 소장인데 뚱뚱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식습관 개선과 운동을 병행해서 체중을 줄였고 지금은 채소 중심의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