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영미 채식평화연대 공동대표]나의 ‘한 끼’가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가꾼다
사람끼리의 사랑, 사람사이의 평화만으로 사랑과 평화의 세상이 올까요. 아름다운 세상은 꽃과 나무가 자라고,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요. 세상에 진리는 단순합니다. 세상의 다른 생명에게 이로운 것이 나에게도 진정으로 이롭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를 살립니다. 한 그릇의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볼 때 그 과정이 평화로우면 내 몸과 지구가 더불어 평화롭습니다.
채식은 생명의 순환입니다.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에서 쌀밥을 먹고, 볍씨를 남겨 심으면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에 또 열매를 맺습니다. 텃밭에 상추는 잎을 따 주면 더 싱싱하게 잘 자라고, 씨앗을 받아서 심으면 다시 싹을 틔워 자랍니다.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는 나를 살리고, 다음 해에도 탐스런 열매를 맺습니다. 벼베기를 하면서, 상춧잎을 따면서, 사과를 따면서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으며 누군가가 그렇게 하는 걸 웃으면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육식은 생명의 단절입니다. 양념에 재워 구운 불고기 한 접시는 소를 잡아서 죽여야만 얻을 수 있으며, 그 소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숯불에 구운 고등어구이는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고등어를 잡아서 죽여야만 얻을 수 있으며, 그 고등어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달걀 한 알은 어미닭의 둥지에서 꺼내어 진 다음에는 닭으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고소한 우유를 아무 때나 먹으려면 젖소는 반복해서 강제임신을 당해야 하며, 송아지는 바로 어미 곁에서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달콤한 꿀을 마음대로 얻기 위해선 꿀벌들이 수백만송이 꽃에서 모은 것들을 빼앗아야만 합니다. 도축당하는 소를 보면서, 고등어 배에서 나오는 피를 보면서, 강제임신당하는 젖소의 눈을 보면서, 어렵게 모은 꿀을 빼앗기는 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들이 많을까요.
우리는 내 집 옆에서 벼와 상추와 사과나무가 싹을 틔우고, 잎이 무성해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매일 행복하게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옆에서 매일 소가 죽어가고, 고등어가 베이고, 젖소가 울부짖고, 닭똥냄새가 풍긴다면 행복할까요.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고, 내 몸의 양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면 세상에 평화는 멀리 있지 않겠지요. 사람사이에서도 한 때는 피부색이나 성별, 민족과 이념이 다르다고 차별하거나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외의 동물들을 약육강식이 아닌 공존의 벗으로 대할 때 세상은 더 평화로워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평화를 위해 애썼던 수많은 성인과 평화주의자들은 채식을 선택했으며,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평화는 밥상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평화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채식은 평화이며 연대입니다.
이영미 채식평화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