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광고의 비밀
기획한 사람놈들 패고 싶다 |
당신은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오디션 경연에서 가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탈락자가 발표되는 그 순간, ’60초 뒤에 공개된다’ 는 말을 남긴 채 광고가 나오게 된다.
이럴 때 시청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어차피 공개할 것이라면 빨리하지 왜 굳이 ’60초의 공백’을 넣는 것인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인가? 등의 반응을 보인다.
이를 광고 용어로 ‘중간광고’라고 하는데, 이 중간광고에는 시청자들이 광고를 소비하고 볼 수밖에 없게 하는 다양한 넛지 전략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60초 악마’는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전략들이 담겨 있어 소비자들이 멍하니 TV 화면만 쳐다보게 만드는가? 오늘은 60초 광고의 비밀에 대해 파헤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자.
중간 광고가 탄생한 이유
기업에게 있어 광고는 기업의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과거 TV와 신문이 미디어의 거의 전부였던 시절, 광고는 소비자들이 TV 프로그램을 기다리며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TV 광고의 명성은 과거보다 못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모바일 시장의 비약적인 발전, 주문형 VOD 등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미디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다림을 가지는 것보다, 즉각적으로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소비 패턴에 따라, TV 광고에 대한 인식도 바뀌기 시작한다.
TV광고는 보통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나오는 것이 보통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TV 광고를 마주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다. 즉각적으로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프로그램을 기다리면서 광고를 소비하는 것보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광고를 보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는 등의 행위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많은 돈을 투자해 광고를 넣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광고의 즉각적인 효과를 바라기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광고의 위치를 바꿔 버리는 것은 어떨까?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를 바라는 것은 떠나간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과 같다. 기업의 광고 방식은 변해야 했고, 더 높은 효율을 얻어야 했다.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따라 중간광고, 즉 60초 광고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중간에 광고를 넣게 되면, 프로그램의 앞과 뒤에 광고를 배치하는 것보다 더 높은 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방송국이 단순하게 광고를 배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시간, 광고의 내용 등을 고려하여 소비자들에게 맞는 광고를 제시한다. 즉, 소비자들이 ‘채널을 돌리게 하지 않기 위한’ 넛지 전략을 곳곳에 배치해 둔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채널을 돌리게 하지 않기 위해 방송국은 어떤 넛지 전략을 활용하고 있을까.
왜 중간 광고는 ’60초’인가?
60초의 대명사… |
첫 번째, 중간광고의 시간을 ’60초’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30초만 해도 될 것 같고, 45초만 해도 될 것 같지만, 60초는 우리가 TV를 볼 때의 심리를 철저하게 고려한 시간 전략이다. 중간광고 시간이 되어 광고가 나오면, 중간광고 시간은 우리에게 잠시 ‘쉬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즉, 사람들은 중간광고가 나올 때 TV에 집중해 수축되거나 이완된 근육을 잠시 풀어 줄 수 있고, 생리적인 용무가 있는 경우(?)엔 빠르게 화장실로 향해 급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부여한다는 것은, 프로그램의 집중도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되는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중간광고의 시간이 60초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15초, 45초에 비해 깔끔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보통 사람들은 숫자를 인식할 때 뒤에 0이 있는 숫자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0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다. 둘째, 30초보다 60초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기에 적절하다.
실제로 통계를 산출하기 위해 2013년 3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함께 TV를 시청했던 남자 40명과 여자 40명이 중간광고 시간 때 평균 몇 초 정도 긴장한 몸을 풀어주는지 조사했는데, 용무를 보는 경우에는 남성 평균 31.6초, 여성 평균 68.5초이며, 스트레칭을 하는 경우 평균 33.0초를 소비했다.
결국, 30초라는 시간을 설정하게 되면 시청자들이 중간의 내용을 놓치게 되면서 프로그램의 몰입도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광고 시간을 60초라는 시간으로 설정한 것이다.
두 번째, 왜 1분이 아닌 60초인가?
그 이유는 숫자가 주는 상대적인 시간관념 때문이다. 물론 60초, 1분은 길이 단위만 다를 뿐 사실 똑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1보다 60이 큰 숫자이며, 이러한 숫자의 인식에 따라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1분 뒤 공개합니다’ 보다 ’60초 뒤 공개합니다’를 길게 느낄 수 있다. 시간을 상대적으로 길게 만들면 앞서 첫 번째의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로그램에 더 몰입하기 위해 사람들이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행동을 유도하여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으며,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에 대해 더욱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간광고가 ‘결과 발표 전’에 나오는 이유
왜 중간광고는 최종 합격자를 공개하는 등의, 결과를 공개하기 전에 꼭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욕망을 유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광고로 인해 채널을 돌리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의 맥락을 고려하여 시청자들이 멍하니 광고를 지켜보도록 만드는 넛지 전략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이 있다.
A :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 중간광고 → 다시 돌아서면 네가 보고 싶다
B : 그리운 마음을 누구에게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 중간광고 → 그 사람은 현숙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중간광고가 나올 때, A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채널을 돌릴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중간광고가 본의 아니게 프로그램의 흐름을 끊어 버렸으며, 궁금증이 유발되지도 않기 때문에 주저 없이 채널을 돌려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B의 상황은 다르다.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중간광고를 던짐으로써, 중간광고 시간 동안 광고를 소비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토론할 수도 있고, 속으로 예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광고로 인해 지루하고 멍한 시간을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으로 소비할 수 있어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물음표를 던지는 이유는 물음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예측해 보도록 만들어 광고를 자연스럽게 소비하게 하는 넛지 전략이다.
결론: 쉬어가는 것 같아 보여도 당신이 몰입하도록 만들기 위한 넛지 전략
중간광고의 최대 목적은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광고를 고효율로 소비하기 위한 것. 이러한 면에서 중간광고는 적재적소의 위치에 들어가서 당신이 프로그램을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며 광고에 대한 호감이나 인식도 증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넛지 전략들이 가득하다. 당신은 쉬고 있지만, 사실은 프로그램에 더 몰입하기 위해 잠시 준비하는 중인 것이다.
60초 광고, 이 전략은 철저하게 우리들의 행동과 소비패턴을 분석한 철저한 전략이다. 기업은 점점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맞게 마케팅 전략이나 비즈니스도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느끼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자. 세상에는 생각보다 넛지 전략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니까.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 행동경제학과 사회심리학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