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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왜 저럴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매뉴얼

페이스북에서 나를 ‘일본 전문가’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일단 전혀 아니라는 것부터 분명히 하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3년 남짓밖에 살지 않았고, 일본어도 네이티브 수준으로 하지 못한다. 다만 일본이라는 참 특이한 나라에서, 상당히 특수한 업무를 하면서, 일본의 의사결정권자 계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할 일들이 많았다.


나만큼 말단 실무부터 최고 수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본 관료들을 만나, 그것도 인터뷰나 의전 행사가 아니라, 진짜 치고박고 싸워본 한국인 월급쟁이는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무역 분쟁 사태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며, 그 과정에서 체득한 일본의 의사결정 과정의 메커니즘에 대해 한번 설명해보고 싶었다.

한국과 일본의 의사결정 과정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일본은 철저하게 선례, 다른 말로 하면 매뉴얼로 움직이는 나라라는 것이다. 소수의 리더가 장시간에 걸쳐 매뉴얼을 만들면 다수의 팔로워는 군말 않고 따라가며, 웬만해서는 그것을 바꾸지 않는다.


일본에서 일하면서 가장 무서운 말이 뭔지 아는가. “선례가 없다”이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기대이익이 커도, 선례가 없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선례를 만드는 순간, 그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곳이 바로 일본의 조직이다. 오랫동안 칼이 다스리는 무사의 나라였던 일본에서 책임을 진다는 건 곧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서로 간에 책임질 일은 되도록 발생하지 않는 게 좋고, 그러려면 매뉴얼을 만들어서 그대로 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 일본에는 한국인이 들으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다양한 매뉴얼이 존재하며, 그 매뉴얼의 존재 목적은 ‘상대에게 폐(메이와쿠)를 끼치지 않는 것’ 즉 ‘피차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피차’, 즉 상호 간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책임질 일을 만드는 것은 물론, 내가 책임질 일을 해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메이와쿠다.


한국에서는 아랫사람이 듣는 최악의 평가가 “시키는 일만 한다”지만, 일본에서는 반대로 “누구 맘대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냐”이다. 내 소임이라고 정해진 일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완벽하게 해내지만, 그렇지 않은 일은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내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에는 비 오는 날 좁은 골목길에서 우산을 든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어느 쪽이 먼저 비켜줘야 한다는 것까지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변화에 민감하고 예외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너무 갑갑해서 도저히 못 해 먹겠다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일본인들은 이걸 몹시 편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가정교육으로 자연스럽게 익히는 매뉴얼이고, 매뉴얼대로만 하면 아무 책임질 일이 없이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지진 시 대피 방법 같은 재난 매뉴얼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매뉴얼이라는 게, 결국 수많은 선례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컨센서스다. 즉 한 번 만드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일단 만들고 나면 수정이나 업데이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기존의 매뉴얼이 틀렸거나,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선례가 쌓여야 하니까(…)


일본에서 일할 때, 내가 맡았던 업무 중 가장 큰 미션은 일본의 금융 관련 법규를 몇 개 고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고치는 것은 아니고 일본 금융 당국에 고쳐 달라고 했다. 한국인인 우리가, 일본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관(官)을 상대로, 매뉴얼을 하루아침에 고쳐달라고 했을 때, 일본인들이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얼마나 단체로 패닉을 일으켰을지 상상해보라.


그런데 우리 앞에서 패닉 하는 모습을 보여주느냐. 아니다. 그럼 ‘안 돼요,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느냐. 아니다.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책임질 일이다. 누구 맘대로 바꿀 수 있다 없다를 말하나. 이것도 매뉴얼에 어긋난다. 대신 계속 질의서를 보낸다. 질문은 매번 똑같다.

이걸 왜 바꿔야 하는지 설명하시오.

우리도 매번 똑같은 답변을 (워딩만 다르게 써서) 보낸다. 그쪽에서는 답변서를 받아서 ‘검토하겠다’고 말한다. 검토 후 다시 똑같은 질의서를 보낸다.

이걸 왜 바꿔야 하는지 설명하시오.

이게 오조오억 번 반복이다(…) 끝나지 않는 무한루프, 뫼비우스의 띠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과 전투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개정을 요구하니 주변의 일본인들은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본에서 관(官)이란, 무조건 복종하는 대상이지 우리처럼 박박 기어오르는 상대가 아니라고 대놓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작금의 무역 분쟁 사태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집권 자민당 소수 엘리트의 작품이다. 세계화 시대에, 개별 국가 간의 역사 문제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장으로 끌고 들어온다는 건, 이 정도 레벨의 탑다운(Top-down)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선례 없는’ 헛발질이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보니 수출길이 막혀 날벼락을 맞은 일본 기업이나, 날마다 총리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경 발언들을 실제로 백업해야 하는 실무 관료 레벨에서는, 장담하건대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없을 거라고 본다. 가지고 있다 한들, 삼성 총수가 이병철(…)이었던 시절에 만든 버전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하면 삼성이 울며불며 청와대에 뛰어가서 ‘우리 망한다, 그러니 빨리 일본에 양보하라’고 할 것”이라고 적혀 있는.

그리고 그 매뉴얼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꽤 잘 작동했다. 3년 사이에 매뉴얼을 업데이트했을 리 만무하다. 3년이면 한국에서는 강산이 변하고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 대통령을 앉히는 시간이지만, 일본에서는 “과연 기존 매뉴얼의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인가”라는 의제를 미팅 테이블에 올리기 위해 이해 당사자들에게 납득시키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러니 일단 소재 수출 안 한다고 지르기는 했는데, 왜, 언제, 어떻게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내에서도 계속 손발이 안 맞고 엇박자인 것이다. 이번 무역 분쟁 사태는 일본이 한국을 자신들의 국제관계 맵에서 어디쯤에 포지셔닝할 건지에 대한 매뉴얼을 업데이트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업데이트를 할 건지 말 건지’가 아니다!)를 제고하는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외교적 강경 대응이 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적절한 수사적 견제구는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대처하는 정부 실무진의 스탠스는 훨씬 정교해야 할 것이다. 논란이 되는 몇몇 극우 언론들의 행태는 개탄할 일이다. “매뉴얼 업데이트가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불매 운동은, 일본인들을 약간 뼈아프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큰 영향은 없을 거라 본다. 일본 여행 안 가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얘기지, 냉정하게 바라보면 양국의 소비재 시장이 마켓 사이즈에서 게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관광이 제외하더라도 양국 간 교역, 교류 규모가 너무 큰 데다, 엔고 시절에 다 겪어봤던 일이기도 하다. (엔화 환율이 1,200원 위로 올라가면 굳이 일본 여행 보이콧할 필요도 없이 일본 가는 한국인 관광객은 급감한다. 대신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은 민간 기업 레벨에서 유연하게 대응해서 실제적인 타격을 최소화하고 한국 경제나 산업구조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일본 종속적이던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위안부나 강제징용이 외교 이슈 이전에 개인의 인권 문제라는 관점으로 차분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어차피 한일 과거사 문제는 완전하게 해소되기 불가능하다는 게 내 견해다. 타이밍을 이미 놓쳐서 과거 일제 식민 시대의 기억이 양국 국민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기도 하고, 특히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 교육으로 인해 많은 선량한 일본 국민들조차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다. 아쉽지만, 국제 사회에서의 존재감이나 로비력도 일본에게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 가끔 한 번씩 싸우고, 또 덮고 가고, 그러다 다시 싸우고, 이러면서 쭉 가지 않을까. 의외로 이런 경우 많다. 영국-프랑스, 독일-러시아도 똑같다. 다만 그 과정에서 침해된 ‘개인’의 ‘인권’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씁쓸하다. 이런 ‘델리케이트’한 문제를 함부로 단번에 합의해준 박근혜 정권의 책임이 너무 크다.


한국과 일본은, 어차피 땅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은 한, 좋으나 싫으나 계속 이웃에서 살아가야 할 나라이다. 나는 양국이 가까운 시일 내 타협점을 찾으리라 예상하고,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고서는, 둘 다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필자 sasameyuki

역마살 충만한 코스모폴리탄. 미국, 유럽, 일본을 거쳐 30대 후반에 한국 스타트업에서 홀로서기 중인 월급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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