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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면

열심히 일하는데 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할까. 미국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1998년부터 3년간 월마트 매장 직원과 호텔 객실 청소부 등 저임금 서비스직으로 일하며 ‘워킹 푸어’의 현실을 체험했다. 이를 토대로 쓴 『노동의 배신』을 보면,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단계부터 철저하게 ‘을’로서 냉대를 당했고, 뼈 빠지게 일했지만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싸구려 모텔을 전전해야 했다.

 

마음껏 먹을 수도 없었다. 가난하고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보증금 등으로 돈을 더 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빚을 내지 않고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다. 에런라이크는 이런 ‘빈곤의 악순환’이 저임금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먼 나라’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만큼 불평등한 나라, 한국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면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조사대상 33개국 중 4위다. 상용근로자 중 소득 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임금 비율을 계산했다. ⓒ 헤이북스

현재 청와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장하성(65) 전 고려대 교수는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미국 못지않게 불평등이 심각한 한국의 현실을 고발했다. 미국은 상용노동자 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임금소득 비율이 5.1배를 기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통계에서 한국은 4.7배로 4위를 차지했다. 한국과 미국을 똑같은 기준에서 비교할 수 있는 전체 노동자 임금 통계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지만, 비정규직을 포함하면 한국의 불평등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상용노동자 중 저임금노동자 비율(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인 노동자 비율)이 미국 다음으로 높기도 하다. 2013년 자료를 기준으로 상용노동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24.7%가 저임금 노동자에 속한다. 미국의 25%와 큰 차이가 없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면

한국과 미국의 개인소득 상위 10% 소득집중도 추이 비교. ⓒ 헤이북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우리나라의 저임금노동자 비중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삶의 ‘불평등’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다니느냐, 정규직이냐에 따라 생기는 임금 차이는 어느덧 사회 계급을 만들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49.9%로 절반이 채 안 된다. 임금만 불평등한 것이 아니다. 거의 매년 일자리를 옮겨야 하는 고용불안까지 이중의 덫에 빠져있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당할 우려가 큰 비정규직에게 노동 3권은 ‘그림의 떡’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도 심각하다. 2014년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62.3%다. 이 지표는 청년들이 왜 대기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2014년 기준으로 대기업은 전체 노동자의 19%정도만을 고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81%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대기업 위의 대기업(초대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따로 놓고 보면 중소기업의 평균 연봉은 삼성전자의 35%, 현대자동차의 37%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이런 격차는 대기업의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고 중소기업과의 불공정거래를 바로잡아야 좁혀질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재벌집착증’과 ‘재벌공포증’에 빠져 사실상 손을 대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범법 재벌을 사법처리할 때 ‘총수가 구속되면 기업이 흔들린다’고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언론도 있었다. 아예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할 위험이 있는데 도박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온정적 판결을 합리화한 판사도 있었다.

 

저자는 “비교적 진보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때도 삼성경제연구소에 경제 정책을 의뢰할 정도였다”며 재벌에 ‘포획’된 정부를 꼬집었다. 물론 대놓고 ‘낙수효과’를 주장하며 친재벌정책을 편 이명박 정부나,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당선 후 슬그머니 ‘없던 일’로 했던 박근혜 정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결과 기업은 더 부유해지고 가계는 더 가난해졌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면

저자는 시장에서의 1차 분배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헤이북스

시장에서 먼저 ‘1차 분배’를 개선해야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이 전체 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평균적인 가계의 경우 재산소득은 가계소득의 1%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고소득층의 경우에도 재산이 만들어내는 소득은 5%도 되지 않는다.”

저자는 국민들 간의 절대적인 불평등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가 임금, 이자 등 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보다 훨씬 크지만, 소득 불평등 자체를 증가시키는 요소는 자산소득보다는 임금소득이라고 설명한다. 각 가구의 소득원천을 따져보면 자산에 따른 소득은 극히 일부이며 임금소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장에서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1차 분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중소기업 이윤폭을 늘려 중소기업이 노동자 임금을 올려줄 수 있도록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보수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증세와 복지를 통해 2차 분배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장에서 1차 분배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면

경제는 흔히 파이에 비유된다. 기득권층은 ‘나라 전체의 파이를 더 키우기 위해 잠깐의 불평등을 감내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사이 누군가는 탐욕스럽게 파이의 큰 부분을 독식한다. ⓒ Pixabay

“기성세대 가망 없으니 청년이 일어서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장하성 실장은 문재인 정부에 참여하기 전에 쓴 이 책에서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분배 정의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하도급 횡포를 자행하는 대기업들을 겨냥해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강력히 규제할 것 등을 촉구했다. 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힘주어 강조한 메시지는 ‘청년들이 분노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 세대의 미래에 눈 감고 있는 기성세대의 무책임성을 비판하면서도, 이들이 세상을 바꾸러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3포 세대, 잉여세대’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청년들이 보다 공정한 분배의 실현을 요구하고, 기업의 ‘슈퍼 갑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턴제도 폐지와 노동시간 단축을 외치라는 것이다.

 

10여 년 전의 청년들도 우석훈 등이 쓴 『88만원 세대』에서 ‘순응하지 말고 거부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청년들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분노하고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수긍하면서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창의성 부족’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필자: 장은미 기자

필자 단비뉴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단비뉴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글로 먹고 살고 싶은 청년들이 만드는 대안매체. '벼랑에 선 사람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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