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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떨리는 싱가포르 해고의 진실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정리해고, 희망퇴직 등의 단어가 종종 보인다. 경기도 안 좋고 고용 안정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해고에 관련해서는 미국 뺨칠 만큼 싱가포르가 훨씬 접하기 쉽다. 말 그대로 해고 및 채용이 자유 그 자체다(……)


이는 친 기업적인 성향을 가진 싱가포르 정부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용 안정성을 높여서 구직시장을 동결시키기보다, 임직원을 극도로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기업들의 고용 유연성을 높게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왔다. 이러니 비자 스폰서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시시각각 쉽지 않게 돌아간다. 내 주변의 케이스를 소개한다.

1. 로펌에서 일하다 1주일 노티스를 받고 해고당한 프랑스 변호사

그녀는 주재원 신분으로 싱가포르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싱가포르 새내기(?)였다. 유럽과 너무 다른 싱가포르의 사시사철 고온다습한 날씨, 기름져 입맛에 맞지 않는 싱가포르 요리, 비싼 월세와 술값 등에 질리고 치여서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것에 미련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찾아봐 말했다.

"나 회사에서 해고 통보받았어! 1주일 부로 나가래!"

우리야 당연히 경악해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뭐라고 대답하느냐면,

"내 퍼포먼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더라고. 안 그래도 나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거든? 다음 주면 실컷 바게뜨도 먹을 수 있으니 난 아무렇지도 않아. 잘 됐지 뭐."

그리고 그녀는 1주일 만에 짐을 다 싸고, 가족에게 줄 기념품 몇 개를 챙기고,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남아시아를 떠났다.

그 사람은 (다행히) 가볍게 나갔다

2.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당한 인턴

그녀는 말레이시아 – 터키 혼혈 인턴이었다. 3개월의 인턴 계약직으로, 퍼포먼스가 좋으면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자리였다. 성격이 순하고 조용조용해서 일하기에 특출 나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근무한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그녀가 나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말씀드릴 게 있는데, 다음 주쯤에 터키 여행을 3주 정도 떠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3개월 인턴 중 3주 여행이라. 업무에 타격이 꽤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매니저에게 휴가 계획을 보고했다. 사실 반신반의했다. 어쨌든 여긴 외국이고, 매니저에 따라 가족여행이나 휴가 계획 등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어쩌면 선뜻 허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매니저는 내 말을 듣자마자 대노했다. 그녀와 맺은 계약서를 모두 확인하더니, 법적 문제의 소지를 제공할 거리가 없는지 몇 번을 재확인했다. 그 후, 매니저는 업무 진척사항과 팀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인턴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출근한 후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다.

“안녕, 수피아. 가름에게 네가 다음 주부터 터키로 여행을 간다고 들었어. 3주. 맞니?”


“안녕하세요? 네, 맞아요. 가족 여행이라 제가 취소하거나 미루기는 좀 어려-”


“우리는 당장 인력이 필요해 너를 채용한 건데, 다음 주에 3주나 여행을 가는 걸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름에게 듣기로는 네가 실전 입무 투입 전이라고 하니, 더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오늘’을 마지막 근무일로 해도 될까? 양해해줘서 고마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몇 시간을 모두를 어색하게 만든 카오스 속에서 근무한 뒤 떠났다. 이 경우, 수습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절차 없이 빠른 해고가 가능했다. 그녀는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걱정 없이 가족여행을 잘 다녀왔고, 그 뒤로 순탄하게 취업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3. 한 달 노티스를 받고 전화로 해고당한 매니저

나의 보스는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온 케이스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본사와의 정기 콜이었다. 그는 갑자기 회의실의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원래는 다른 사람들 모두 콜에 참여하는 게 불문율인데, 알고 보니 본사의 임원이 1:1 콜을 진행하고 싶으니 다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 지난 뒤, 그는 낯빛이 삽시간에 어두워진 채 자리로 돌아왔다. 슬쩍 보기만 해도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나 포함 몇 명만 지목해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아까 그 콜 말로는… 해고하겠다네. 이제는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집 렌트 계약이며 수도세, 전기세, 고지서까지 모두 정지하고 싱가포르 와서 1년도 채 안 됐는데, 이걸 어떡해야 할지… 너희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거야."

그는 다소간 충격에 휩싸여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그 정도의 침착함을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는 비자 때문에 일단 중국으로 돌아가지만, 생활 자체는 다 정리하고 온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싱가포르로 돌아와 구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카톡보다는 나은 것일까

4. 손이 절단되고, 싱가포르에서도 추방당한 방글라데시 건설현장 노동자

싱가포르 서쪽. 요즘도 건설업이 호황인지, 수많은 방글라데시·네팔·미얀마인들이 건설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적으면 수 십 명, 많으면 천 명 가까이에 이르는 그들의 사연 중 하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가끔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거나 안전 수칙 미준수로 인해 부상 및 장애를 입는 케이스가 있다. 그 경우 사내 절차에 따라 그를 고용한 회사에서 치료비 및 위로금을 주고 본국으로 송환 조치를 한다. 나라 별 환율 격차로 인해 가끔 그들에게 위로금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하루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의 손이 절단되어 회사에 경고등이 켜졌다. 절차대로 그를 싱가포르 내 병원으로 보내고, 의료진의 검사를 받게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손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죽을 때까지 장애를 갖고 살게 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고 위로금을 주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때, 회사 내에서는 뭔가 수상쩍은 제보를 받게 된다. 사건 당시의 CCTV 및 증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위로금에 눈이 먼 그가 고의로 본인의 손을 절단한 사정이 발각되었다.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를 노려 그는 회사 내의 중장비, 기계를 사용해 자신의 손을 여러 번 찍어 내렸다. 다시는 치료가 불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을 때까지.


이 일이 발각되자 회사 내에서는 그를 공식적으로 조사하였고, 그는 자백 후 해고 조치를 받아들여 다시는 싱가포르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위로금도 받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의 풍경은 평화로워도, 그 안은 결코 평화롭지 않음을

이밖에도 싱가포르의 인정사정없는 해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싱가포르 기업 문화 자체가 전반적으로 쉬운 해고, 쉬운 채용을 표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유러피안인 남자 친구와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다 그의 팀에서만 1년 내 3명이 해고되었고, 나의 팀에서도 4명이 해고되었다. 우리가 각각 프랑스, 한국에서 근무했을 때는 단 한 번도 해고당하는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몇 달에 걸쳐 계속 일어나는 건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둘 다 혜믿스님처럼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필자 가름 (블로그)

수도권 대학 졸업 후 혼자 싱가포르로 건너온 문돌이. 스타트업 업계에 있었고, 현재는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주니어 마케터입니다. 20대 한국인으로서 혈혈단신 새로운 나라에서 삽질하는 웃픈 과정을 진지하게 공유합니다. 꿈은 건물주인데 지금은 만년 기대주입니다. 27.10.1992.s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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