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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북국, 도리뱅뱅이, 몸국… 마지막 향토음식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는 향토음식의 중요한 변곡점을 1980년 국풍 행사로 보고 있다. 그 이전까지 서울─지역 간 음식 이동은 인구 이동을 따라 활발히 진행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지역성있는 외식 상품’의 형태로 포장되는 경향은 약했는데, 국풍 행사 이후로 소위 ‘향토음식’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별 대표 음식을 상품화했다는 맥락이다.

 

국풍행사 자체의 의의도 있지만, 80년대 중후반 외식 산업의 성장과 맞아떨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외식업이 규모가 커지면서 음식의 발굴, 마케팅 등에 있어 향토음식들은 큰 힌트가 되었다. 전주비빔밥, 충무김밥, 돼지 김치 두루치기, 감자탕, 아구찜… 지금처럼 기업화된 강력한 마케팅이 아닌, 입소문 마케팅에는 향토음식이 좋았다.

 

향토음식의 상당부분이 도시에서 재창조되었다. 게다가 방송·통신의 발달 및 관광산업의 번창은 향토의 음식들을 도시화시켜나갔다. 가령 새빨간 배추김치는 전라도식 보쌈김치가 70년대 이후에 전국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한다. 주영하 교수의 지적에 의하면 과거에는 해초를 버무려서 먹던 제주도 지역이나, 동치미 등 이북식 김치를 먹던 연변지역 들도 80~90년대 이후에 급격히 ‘배추김치’가 전파되었다.

 

막상 ‘향토’에 가도, 유명한 ‘향토음식’들은 이미 서울 음식화된 것이 많다. 관광객의 입에 맞게 간을 하고 조리법도 고쳤기 때문이다. 진짜 향토에 가도 진짜 향토음식을 먹기 힘들다.

 

또 중앙 무대에 데뷔하지 못하고 숨겨져 있는 것들도 많다. 재료의 신선도 문제, 외지인들과의 입맛 차이, 색깔이나 모양, 영양소, 재료의 혐오감… 이런 여러 이유로 도시에서 상품화가 곤란했던 음식들이 향토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음식들을 몇 가지만 정리해 봤다.

진도/해남의 ‘듬북국’

듬북국, 도리뱅뱅이, 몸국… 마지막

미역줄기와 우뭇가사리의 중간쯤 되어보이는 해초와 소갈비를 함께 넣어 끓인 새카만 국. 미역국보다 좀 더 색과 맛이 진하다. 1960~70년대까지도 흔한 식재료였으나 김 양식을 위해 염산을 뿌리면서, 지금은 먼 바다 및 낙도 지역에나 가야 채취할 수 있는 귀한 해초가 되었다고 한다.

 

친구인 매생이는 최근 중앙무대에 데뷔했으나 듬북국은 아직 데뷔하지 못했다. 사진은 진도의 궁전음식점에서 찍었다. 이 식당도 방송에 여러 번 소개가 된 집이라, 서울 입맛에 맞게 조금 음식이 변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듬북국, 도리뱅뱅이, 몸국… 마지막

이제는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매생이국 출처: 주식회사 엠티비

충청도 지역의 ‘도리뱅뱅이’

듬북국, 도리뱅뱅이, 몸국… 마지막

도리뱅뱅이

작은 민물고기를 튀기거나 말려서 맵고 빨갛게 양념한 음식. 민물고기를 이용한 음식은 1970년대까지는 즐겨 먹었으나, 기생충 문제 때문에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민물고기는 조금만 잘 못 조리하면 흙냄새와 비린내가 심하다. 그래서 양념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끔 별미로 먹으라면 몰라도, 현대의 서울 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은 아닐 것이다.

충청도의 ‘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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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죽 출처: 소소한일상 소소한행복...그리고 내려놓음.

민물고기의 살이 뭉개질 정도로 팔팔 끓여서 쌀과 함께 넣어 끓인 죽. 추어탕이나 메기매운탕 등과 같은 계열의 음식. 역시나 민물고기 음식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데, 민물고기의 흙냄새 때문에 산초·후추·방아 등의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서 맛이 얼얼한 경우가 많다. 산초 등은 도시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향신료라고 하기 어렵다.

 

충청도 어죽은 향신료가 강하지는 않은데, 역시 민물고기의 맛이 도시인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 충청도에서 관광객용·나들이용 음식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 국수를 넣어먹는 것은 70년대 이후에 생긴 습관일 것으로 생각된다. (국수 자체가 그 이전에는 귀한 음식이었으니)

듬북국, 도리뱅뱅이, 몸국… 마지막

국수가 들어간 어죽 출처: 우리지금맛나

정선 ‘콧등치기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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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등치기 국수 출처: 혜천의 여행흔적

콧등치기 국수 자체의 역사는 길지 않다. 저 이름을 지은 할머니가 인터뷰하는 장면도 본 것 같다. 메밀 함량이 높고 국물에도 메밀가루가 들어가는데, 이런 류의 칼국수는 아마 요즘 칼국수 이전부터 산간지역에서 즐겨 먹었을, 말 그대로의 가정식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제주 ‘몸국’

듬북국, 도리뱅뱅이, 몸국… 마지막

출처: EBS '요리 비전'

돼지 내장과 다양한 해초를 넣어 끓인 국. 근래 제주도의 고기국수가 여러 군데에서 회자되는데, 향토음식으로는 몸국이 훨씬 유래가 깊다. 하얀 밀국수는 제주도에서 구하기 쉬운 식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기국수라는 음식은 최근에 개발되고 방송사에 의해 잘 포장된 느낌이 강하다.

 

표준어로 모자반이라고 부른다는 저 해초는 나도 맛보지 못했는데, 아마 다른 해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물이 끈적끈적하다는데,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해초의 끈끈함이 더해졌을, 그래서 서울 사람들 입맛에는 처음에 맞지 않을 음식인 듯하다.

 

기타 제주도에는 애저찜 등 여러 향토음식이 있는데, 너무 잔인해서, 기타 이유로 썩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경상도·강원도 음식 ‘갱시기(갱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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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시기 출처: 까만콩의 요리와 수다

김치와 밥을 넣고 끓인 죽인 갱시기는 찬밥을 대충 해치우는 가정식 요리였다. 분포가 꽤 넓어서 영동지역 전역과 동해안, 경상남도, 서부경남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먹는다. 요즘은 해장국으로 다시 포지셔닝한 것 같지만, 역시 경상도에서도 아는 사람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닌 듯하다.

 

도리뱅뱅이, 콧등치기 국수 등은 이미 꽤 많이 홍보가 되어 관광형 상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큰 반면, 갱시기 같은 음식은 21세기에는 사라진 음식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특성 이미지 출처: 한없이 투명한 블루… Photo by 기억저편

필자 김찬별 (블로그, 페이스북)

부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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