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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기업 경영의 종말

오늘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던, 하지만 이제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군대식 기업 경영의 장단점과 종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왜 군대식 경영이 탄생했나?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크게 2가지이다.『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을 읽고,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미쳤다!』는 LG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영업본부장, 그리고 법인장을 맡아 10년 동안 근무했던 에릭이라는 프랑스인이 쓴 책인데,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과 한국식 경영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군대식 기업 경영의 종말

에릭이 소니, 도시바의 프랑스 법인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다가 LG로 이직하겠다고 하자, 같이 일하던 일본인 동료들이 모두들 그를 말리며 한국 사람들을 “편협한 군대식 사고방식을 가진 무식한 사람들,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촌놈들”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에릭은 LG에서 근무하며 한국 기업의 군대 문화는 단순히 기업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하고 아래와 같이 정리했는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 특히 대기업의 군대식 신입사원 연수를 받아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동의할 내용이다.

“한국인에게 가족은 사적 영역의 중심이고 기업은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다. 한국의 가정, 기업, 군대, 사회 전체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고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서열 구도가 반복된다. 기업의 상관은 집안의 가장이나 군대의 상사를 그대로 복제해온 모델이다. (…) 아버지, 사장, 상사, 권위가 중요한 세계, 회사, 그리고 나라 전체를 남성이 지배한다.”

즉 한국 회사의 군대식 문화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탈출하기 위해 군 출신 정치인들이 제조업과 수출 위주의 성장 전략을 세우고, 기업들이 그를 실천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 이식되었다고 생각된다.

2. 군대식 경영의 장점

에릭은 한국인들의 성공 비결을 여러 가지로 정의하지만, 그중 가장 공감되는 2가지는 아래와 같다.

“한국인은 업무를 합리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 해야 할 작업을 정확하고 측정가능한 방식으로 세분화한다. 동작의 세분화, 정확한 시간 및 비용 측정, 분명한 목표 설정, 가차없는 징계는 기업, 직원 전체에 똑같이 적용된다.”

 

“서양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선별, 탈락, 등급, 성과와 같은 개념이 한국에서는 지배적이다. 서양인이라면 아무도 견디지 못할 중압감은 그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압박의 연장선일 뿐이다. 가족부터 나라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라’, ‘쉬지 말라’, ‘스스로를 이겨내라’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 직장에서의 실패는 즉각적인 사회적인 죽음과 가족의 치욕을 의미한다.”

군대식 기업 경영의 종말

특히 첫 번째는 글로벌 기업에서 외국인들과 일을 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한국 사람들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그리고 끝까지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정말 보기 어렵다. 그리고 두 번째 항목 역시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제조업과 그 상품들을 전 세계에 팔기 위한 불굴의 영업 정신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러한 장점들이 단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본다.

3. 군대식 경영의 단점

먼저 제일 큰 문제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제조업/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급격히 변해가고 있는데, 군대식 기업 문화를 가진 한국 기업들이 그 변화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기업들과 삼성, LG, 현대 등 한국을 이끌어온 전통 제조업 기업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어렵다고 치자. 하지만 한국 기업들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제조업의 강자들인 애플, 테슬라, 샤오미의 성공 비결은 최고의 스펙을 갖춘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여 충성도를 높이는 소프트웨어다.

 

애플의 아이폰은 삼성, LG 제품에 비해 스펙은 낮지만,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하며 느끼는 만족도와 충성도가 훨씬 높다. 테슬라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 역시, 기존 전기차 대비 혁신적으로 주행거리를 늘렸다는 점 등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자동차의 성능을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참조: 테슬라 “0-60mph 2.8초 주파 드라이브 모드 추가”)

군대식 기업 경영의 종말

샤오미의 강점 역시 완성도 높은 제품을 반값에 내놓는 것뿐 아니라, MIUI라는 그들만의 OS를 사용자 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하여 매주 업데이트하여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있다.(참조: “샤오미가 단순한 짝퉁 기업?… 구글·애플·삼성의 장점만 빼닮았다“)

 

문제는 군대식 기업 문화에서는 최고경영진에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라는 걸 제대로 보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겨우 보고해서 우수한 엔지니어들을 잔뜩 뽑더라도 그들에게 자율성을 주지 않고 군대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이 창출해야 할 진정한 가치인 사용자 경험·충성도 등 정성적인 가치는 군대 문화에선 인정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정량적인 평가에만 치중하게 되는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한국 대기업 창업자 세대들이 갖고 있었던 훌륭한 이념들은 사라지고, 그보다는 2, 3세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게 기업의 지상 과제가 되면서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문화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상명하복·철저한 보고·농업적 근면성 등 군대식 문화의 특징들이 재벌 총수와 그 후계자들에 대한 잘못된 충성으로 변질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4. 군대식 경영의 종말

한국 기업에선 재벌 총수가 아무리 잘못된 결정을 내리더라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롯데그룹이 위기를 맞았던 것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에서 온 것이 아니라, 90세가 넘어서까지 그룹의 모든 업무를 일일이 챙기는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아무도 직언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참조: “‘예견된 추락’ 롯데의 구시대 경영“)

 

그래서 롯데는 정경 유착 의혹과 건설 과정에서의 수많은 반대를 감수하면서까지 신격호 회장의 숙원 사업인 제2롯데월드를 무리하게 건설했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재작년 있었던 현대차의 주가 하락은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10조 원이라는 돈을 신사옥 건설을 위한 부지 매입에 쓰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면서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게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월급쟁이 사장·임원들의 입장에서 재벌 총수에게 직언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거다. 그분들은 대부분 해당 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평생을 그 회사에 충성했을 것이고, 총수에게 밉보여서 쫓겨나게 되면 그건 에릭이 정의했듯이 “즉각적인 사회적인 죽음과 가족의 치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한국 기업들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20~30대 직원들은 현재의 임원들과는 달리 변질된 군대식 문화를 참고 견디며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평생을 몸 바친 직장에서 IMF 사태로 하루아침에 잘리는 것을 보며 자랐고, 취업 후에도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하던 임원, 선배들이 한순간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집에 가는’ 걸 수시로 겪어 왔다. 군대식 기업 문화의 장점이었던 ‘노후보장’은 국내 기업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 직원들은 결국 재벌 총수들을 위해 부속품처럼 일하다 사라질 운명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군대식 기업 경영의 종말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 tvN

그래서 이들 중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를 뒷받침하는 결단력과 야심이 있는 이들이 조금씩 대기업의 품을 떠나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는 걸 최근 정말 많이 보고 있다. 그리고 코딩·디자인 등 전 세계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은 그들을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던 국내 대기업을 떠나 실리콘 밸리로 바로 취업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월급과 다양한 복지 혜택이 주어지더라도, 자신의 청춘을 총수들을 위한 보고서 작성만 해야 하는 대기업에 바치기보다는 자신의 꿈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에서 바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대기업 인사팀에선 일부 이탈자가 있어도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는 사람들 줄 섰다”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다. 몇 년 전 한 LG전자 연구원이 회사를 떠나며 구본준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이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 지적 중 절반만이라도 반영되었다면, LG전자는 지금과는 크게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기업 경영자분들이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뀌시길 기대하진 않는다. 단 인사팀에 계신 분들이나 현재 임원이신 분들이라도 이 글을 통해 위기의식을 갖고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추구하시길 바란다.

필자 진민규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Community team leader @ Riot Games. Tech industry, 글쓰기, 패션,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디지털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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