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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보던 진짜 색채, 과학이 미스터리를 풀다

최근에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http://www.nytimes.com/2014/04/22/science/renoir-shows-his-true-colors.html?_r=1). 시카고의 아트 인스티튜트의 관리자들이 르누아르의 <레옹 클라피송 부인 (Madame Léon Clapisson), 1883> 그림에서, 액자 밑에 가려져 있던 부분을 실마리로 유실된 안료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내용이었죠.

 

일단 액자 밑에 감춰져 있었다는 부분을 보시겠습니다. 붉은 가장자리가 보이시죠?

거장이 보던 진짜 색채, 과학이 미스

박물관의 선임 관리 과학자인 프란체스카 카사디오(Francesca Casadio)는, “ 이 부분의 색이 빛에 바래지 않은 원래의 색채라고 여겨집니다. 선명한 주홍-자주(scarlet-purple)색의 일종이죠. ”고 말했습니다. 이 가장자리는 약 15 년 전에 발견되었지만, 당시 박물관은 조사할 만한 과학적인 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았죠. 그러다 4 년 전, 디지털 목록 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켈리 키건(Kelly Keegan)이라는 관리자는 이 작품을 현미경으로 확인하고는, 르누아르 본인에 의해 수정되었다거나 경솔한 세척 때문에 색이 변한 것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키건은 이게 원래 안료임이 확실하다고 했어요. 그녀는 “현재 그림의 표면에 반투명 종류의 입자들을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반투명 입자들이란 것은 본래 색을 잃은 색소 분자들임이 분명했죠.

 

원래 전세계의 박물관 관리자들은 숨겨진 것이나 표면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각각 다른 파장의 빛-적외선, 자외선, X 선으로- 그림들을 쬐어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식물과 곤충에서 추출된 유기 안료-특히 인상주의자들에게서 인기 있었던-는 구별할 수 없었죠. 이를 위해 카사디오 박사와 프레데리카 포치(Federica Pozzi)는 분광학 일종인 라만 분광법이라고 불리는 레이저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분광학은 빛을 이용하여 물질의 정보를 알아내는 학문입니다. 그 중 라만 분광법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빛이 물질에 충돌하면 산란하게 되죠. 산란되어 나오는 빛은 대체로 입사광과 같은 에너지를 갖지만, 그 중 일부는 에너지를 더 얻거나, 더 잃기도 합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냐면, 물질에 부딪친 광자가 분자를 흥분시켜 진동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부 빛은 거기서 다시 에너지를 얻어 파동이 변화되는 겁니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물론 알지! 광자가 부딪치는 바람에 우리 분자가 화가 난 거잖아? 역시 넌 양자론을 공부해서 달라)

 

그런데 여기서, 각 분자들은 진동 에너지가 고유하다는 것을 돌이켜 봅시다. 그 말은 입사광에 비해서 산란광의 에너지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안다면, 무슨 분자와 부딪쳤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과학자들은 그림의 가장자리에서 붉은 부분을 조금 긁어내어 관찰했죠. 이걸 은나노 입자 위에 배치하면 신호를 증폭시켜 좀 더 잘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본 라만 분광법에 나노기술이 결합된 거죠. 이걸로 과학자들은 카민 레이크(carmine lake)라는 안료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안료는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의 선인장에서 사는 연지벌레를 으깨서 가루를 내어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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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벌레를 즉석에서 으깬 사진…

그런데 그 시대의 미술 카탈로그에서조차 이 색이 빛에 노출되었을 때 안정적이지 않다고 적었어요. 물론 가루낸 연지벌레는 오늘날에도 쓰여지고 있죠. 하지만 식품의 천연 색소로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색감을 오래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타벅스도 몇몇 음료에 사용했지만, 채식주의자들의 항의 때문에 2012년 이후부터는 그만둔 상태고요.

 

그렇다고는 해도 그림의 오리지널 색채를 복원할 시도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키건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이 작품이 1883년엔 어떻게 보였는지 디지털로 만들 수 있었죠. 여기서는 컴퓨터 그래픽스의 영역인, 이미지 프로세싱의 역할이었겠군요. 이미지 프로세싱이란 쉽게 말하면 컴퓨터로 이미지를 처리하는 법을 말해요. 여러분의 스마트폰 카메라 어플 등에 흔히 달린, 사진을 찍으면 유화처럼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디지털 필터들, 그런 것도 이미지 프로세싱의 한 예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초상화에서 푸른색과 녹색, 회색조의 차가운 배경은 더 정열적인 붉고 보라색의 물결로 대체되었습니다. “더 대담하고 더 모험적입니다.” 라고 박물관의 선임 큐레이터인 글로리아 그룸(Gloria Groom)이 말합니다. “당신은 어떤 예술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에 과학이 뭔가 다른 걸 알려줍니다. 당신은 ‘어, 이 작가에 대한 내 생각이 맞지 않네’가 되는 거죠.”

 

키건은 비록 클라피송 부인의 얼굴색은 바뀌지 않았음에도, 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살결에 장밋빛 성질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클라피송 부인이 좀 더 어려보이죠.”

 

그래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샛말로 얼굴이 더 화사해보이는 것이, 장미색이 잘 받는 톤이네요. 키건이 말한 건 그런 의미였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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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전(좌) / 복원 후(우)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레옹 클라피송 부인 그림만이 색이 변한 건 아닙니다. 며칠 전에 관리자들은 폴 고갱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폴리네시아 여성 (Polynesian Woman With Children)>에서 아이 소매에 더 깊고 더 강렬한 붉은색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 그림이 뭔지 안 볼 수 없죠.

 

그림을 보면 관리자들이 말한 소매란 것은 아마도 여자아이의 옷을 말하는 것 같죠? 일단 남자애는 옷을 입지 않았으니까요. 또한 소녀의 옷 소매 뿐 아니라 옷 전체가 붉었을 것 같아요. 이 그림의 원래 색감도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가 한 번 먹어 바꿔보겠습니다. 저는 분광기도 없고 은나노 기술도 없기 때문에 그저 ‘대략 이 정도면 좋겠는데?’ 하는 감에 의지했어요. 조선일보의 어뢰 예측도같은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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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전(좌) / 수정 후(우)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옷이 붉어짐으로서 색으로 인한 긴장이 좀 더 균일해졌어요. 소녀가 힘의 밸런스를 잘 잡아주죠. 그림 전체는 물론 소녀의 얼굴도 더 생기있어 보이고요.

 

아연 옐로우 물감도 예술 학교에서 가장 즐겨 사용됩니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에서도 이 색은 역시 불안정했고, 밝은 레몬이 단조로운 황토색으로 변했다고 하네요. 이 경우엔, 몇 년 간의 변화를 눈치챈 미술 평론가들이 색이 유실되었다며 한탄하고 있었대요.

 

쇠라라면 점묘법이라고 해서, 마치 디지털 픽셀 이미지와 같은 원리로 색점을 찍어서 색 혼합을 한 작가죠. 그래서 칙칙한 황토색의 점들만 밝은 레몬색으로 바꿔보았아요. 물론 어느 정도의 황토색을 어느 정도의 밝은 레몬색으로 바꿔야하는지까지는 제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 역시 감으로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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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전(좌) / 수정 후(우)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화사한 써니 애프터눈의 느낌이 나는 것은 물론, 색감이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보이네요. 제일 왼쪽의 나무를 보시면 확실히 알 수 있죠.

 

클라피송 초상화를 끝내고 르누아르는 몇년 후 <폴 하빌랜드의 초상화 (Portrait of Paul Haviland)>를 그렸습니다. 넬슨-아트킨 미술 박물관(Nelson-Atkins museum of art)에 있죠. 이 그림은 최소한 바닥 쪽에는 오늘날까지도 붉은 배경이 남아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카민 레이크 말고 다른 물감으로 교체한 걸까요? 하빌랜드 초상화만이 뭔가 다른 걸로 보호된 걸까요? 아직도 미스터리가 남아있죠.

거장이 보던 진짜 색채, 과학이 미스

Portrait of Paul Haviland

넬슨-아트킨 박물관은 당장은 이 미스터리를 푸는 일에 뛰어들진 않았습니다만, 프랑스 회화의 학술 카탈로그 프로젝트로서 검토할 생각이 있다고는 합니다.

 

당시의 예술가가 선택하고, 당시의 사람들이 보던 색, 그걸 다시 보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죠. 과학이 예술의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것이 기쁩니다.

필자 괴벨 (블로그, 페이스북)

미디어피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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