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으면
청년 자살시도자, 암경험자, 감정노동자, 이주 여성, 탈가정 청년… 사회 소수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282북스’를 운영하는 강미선 님. 그가 이야기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신 또한 자살을 생각하던 어두운 시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말하며 헤쳐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우리는 덜 아프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미선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내게 의미가 있는 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헛헛했어요. 고민 끝에 사회 소수 그룹의 이야기를 전하는 282북스를 창업하게 되었죠.
• 고립은 오히려 나를 대면한 시간
고립의 시기를 통과하면서,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고 친해질 수 있게 되었어요. 살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 타인을 대하는 친절함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때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좋은 곳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먹여주잖아요.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대해야 해요. 맛있는 밥을 사주고, 푹 쉬는 시간을 주고, 좋은 곳도 데려가 줘야죠.
“저도 고립되어 자살 시도를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그 시기를 이겨내고 보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게 보였죠.”
힘들었던 시기가 찾아 준 하고 싶은 일
282북스는 ‘마음이 작품이 되는 곳’이에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사회 소수 그룹의 이야기를 예술 작품으로 담아내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완화하기 위해서 사회에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282북스는 출판사라기보다는 예술 기획사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고립되고, 자살 시도를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를 이겨내고 보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게 보였죠. 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어요. 재단, NGO, 사회적 기업 등 많은 형태의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이어졌고, 2019년에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이라는 지원 사업을 통해 282북스를 창업했어요.
l 고립의 시기를 이야기로 풀어낸 [그런, 빨간책] |
“회사를 그만둔 후 사람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게 되었어요.
어느 순간 완전히 고립되었고,
좁은 자취방이 제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렸죠.”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마음이 헛헛했어요
공연기획을 전공하고 공연 업계에서 일했어요. 졸업하고 일을 하다 보니 꿈꿔왔던 일과 현장은 많이 달랐죠. 여기서는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자로 직업을 바꿨어요.
IT 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할 때는 월급도 안정적으로 나오고 생활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지만 마음이 헛헛했어요.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생각이 들었죠. ‘이거라도 하면 마음이 좀 채워지려나?’ 싶은 마음에 월급을 다 기부한 적이 있을 정도로 고민이 많았어요.
일을 그만둔 뒤 자연스럽게 고립되었어요
결국 2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회사에 나갈 일이 없으니까 문 밖을 나갈 일이 없었고, 내면에 혼란이 있다 보니 사람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게 되었어요.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찾아올 일도 없더라고요. 어느 순간 완전히 고립되었고, 좁은 자취방이 제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렸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거야.’ 이런 다짐을 한 게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웠어요.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쓴 글을 보고,
가해자가 찾아와 사과하는 광경을 봤어요.
이야기를 전하고 누군가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죠.”
내가 고립되었다는 감각조차 없었어요
고립 생활 중에는 그냥 살았어요. ‘세상하고 단절됐구나.’ 이런 느낌도 없었어요. 무기력함이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다 보니 사회로 나가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심해에서 존재하고만 있는 물고기같이 있었어요. 파도가 치지도 않고 빛이 들어오지도 않는 바닥에 머물러서, 존재하는 느낌의 감정만 느끼고 있던 거죠. ‘내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사람들이 날 찾지 않는구나. 그러면 나는 여기에 존재할 필요도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단절의 시간을 벗어난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단절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가기 시작했죠. 그 때 제게 보험을 영업하려고 매일 ‘밥 먹었냐.’ ‘뭐 하냐, 커피 마시자.’ 연락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결국 나가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너 왜 이렇게 하고 있어?” 묻더라고요. 맨날 바쁘다고만 둘러댔던 제가 머리만 질끈 묶고, 해진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제야 거울을 보고 ‘내가 엉망진창이구나.’ 깨달았죠. 머리를 하러 가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 친구의 목적은 영업이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하나의 빛이었던 것 같아요.
피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포스트잇으로 붙였더니
내가 심각한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서는 제일 먼저 상담을 받으러 갔고요. 책을 더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다니게 되었고, 도서관의 담당 선생님과 친해졌어요. 그러다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으로 학교 폭력 피해 청소년들과 글쓰기를 진행하게 되었고요. 그 친구들이 적은 글은 날카롭지만 솔직했어요. 저만 보기 아까워서, 친구들을 설득해서 글을 주변 학교에 포스트잇으로 붙였어요. 그 과정에서 가해 청소년이 찾아와서 피해 청소년에게 사과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도 목격했죠.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로 전하고,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282북스라는 일을 고민하게 된 계기였죠.
“고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소중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노트에 하소연하듯이 적은 글이 나를 일으켰다
고립의 시기에는 좌절을 이겨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가족들한테도 창피해서 얘기를 못 했고, 친구들한테도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했으니까요. 대신 펜을 들고 노트에 적으며 하소연하기 시작했죠. 집에 있던 책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나의 고민을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머릿속에 얽혀 있는 복잡한 생각들이 글로 정리됐고, 그걸 읽으면서 자신을 좀 더 이성적으로 볼 수 있었어요.
고립은 다시 일어나기 위한 준비의 시간
누군가는 고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소중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고립되어 있던 시기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거든요. 20대 중반이 돼서야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돌아본 거죠. 어렸을 때는 그저 흘러가듯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제야 나와 친해지는 시기를 가졌어요.
살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지금 사회에서 고립·은둔 청년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 친구들이 ‘나는 왜 이렇지? 나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그 상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상태고,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고립의 기간을 잘 활용해 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난 사람들은 내면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꼭 자기 잘못처럼 자신을 혼내는 모습을 봤어요.”
언젠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며 책을 펴내요
저희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당장의 시급성을 띠고 있는 이야기들은 아니에요. 공연을 하고 전시를 해도 바로 주목받지는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저희의 책을 만났을 때 ‘책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 ‘용기를 얻었다.’라고 많이 말씀하세요.
282북스를 출판사로 시작한 이유는 책이라는 형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예요. 책으로 이야기를 기록하면 당장 찾는 사람이 없더라도 언젠가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아픈 거예요
프로젝트에서 소수 그룹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지만, 특별하게 ‘소수 그룹에만 관심을 가져야지.’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가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였을 뿐이에요. 저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끼거든요. 저희 활동의 기본이 되는 생각은 ‘모든 이의 이야기는 소중하다.’에요.
제가 만난 사람들은 내면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꼭 자기 잘못처럼 자신을 혼내는 모습을 봤어요.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세상 밖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데, 방법도 없고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도 모르니 병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 모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찾았으면 좋겠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해요. 누군가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춤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걸 위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예요. 저희가 제안할 수 있는 예술 활동으로 표현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거죠. 그렇게 자기만의 이야기 방식을 찾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요.
“외부적인 위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찌저찌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 안에서 일어난 문제들은
이겨내기 힘들더라고요.”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가 가장 큰 위기였어요
해마다 위기가 있었는데 가장 큰 위기는 올해였던 것 같아요. 2019년, 처음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 창고에 불이 나서 1년 동안 준비한 책이 불타버리기도 했고, 메시지로 저희에게 온갖 저주의 말들을 보내던 사람도 만나봤어요. 이런 외부적인 위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찌저찌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 안에서 일어난 문제들은 이겨내기가 조금 힘들더라고요.
탈가정 청년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1년 차에 위기가 시작됐어요. ‘과연 내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내가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건가?’,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다 보니 저의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결국 문제는 당사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탈가정 청년 프로젝트 참가자들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저의 고민을 많이 나눴어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한지에 대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제가 겪고 있던 혼란들이 정리되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해하는지 기록해놨거든요.
그 노트를 펼쳐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어요.”
타인을 대하는 친절함으로 스스로를 대해야 해요
누군가를 위로할 때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하고, 선물을 주기도 하고, 좋은 곳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먹여주잖아요.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대하듯이 위로를 전해야 해요. 맛있는 밥을 사주고, 푹 쉬는 시간을 주고, 좋은 곳도 데려가 줘야죠.
마음이 지칠 때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면서 이겨냈어요.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해하는지 기록해 놓았거든요. 그 노트를 펼쳐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어요. 고민이 많아 힘들 때는 그중 하나를 저에게 선물해요. 꽃을 살 때는 꼭 노란색 꽃을 사고,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어요.
올해는 잠깐 저를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14년간 같이 살았던 강아지가 암 진단을 받아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결국 떠나버렸거든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사라지고 나니 도저히 저를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고 자꾸만 울컥 화가 났어요.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 친절히 대해줄 수 없겠냐’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맞아. 나는 스스로를 따뜻하게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왜 안 하고 있지?’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를 챙기고 있어요.
행운을 기대하기보다, 매일의 소소한 행복을
저의 가장 친한 언니가 “미선아, 나는 올해까지만 살고 싶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너무 놀라서 계속 마음이 쓰였죠. 어느 날 그 언니가 클로버 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는 걸 봤어요. ‘언니에게 네잎클로버를 선물로 줘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저도 열심히 네잎클로버를 찾았죠. 그런데 잘 안 보이더라고요.
문득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게 생각났어요. 수많은 세잎클로버들 중 돌연변이로 네잎클로버가 나오는 것처럼, 수많은 행복이 있어야 그 사이사이 행운이 오겠구나 싶더라고요. 행운을 기대하며 살기보다는 매일매일 느끼는 소소한 행복에 더 집중하고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매일매일의 작은 행복들을 찾고 모으며 살고 있어요.
강미선 님의 ‘내 마음을 회복시켜 준 것들’
• 글쓰기
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준 도구예요. 글을 쓰며 나라는 사람을 고민할 수 있었고, 새롭게 시작할 마음이 생겼죠. 여전히 제 활동의 기반이 되고 있어요.
•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이 가진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여요. 예전에는 좁은 세상에서 나만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마음이 넓어졌어요.
• 일상의 행복
큰 행복, 행운만을 쫓으면 불행해지기 쉽거든요. ‘오늘 점심 정말 맛있었다.’처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들을 모아요.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모여야 행운이 왔을 때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