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와 나
서필훈 커피 연재 #1
내 이름은 마리오. 니카라과 라스 세고비아 지역에서 아내 마리아, 9살 클라우디아, 7살 에르네스토와 함께 라에스페란자La Esperanza(희망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작은 커피 농장을 하고 있다. 이 농장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왔다. 80년대 내전 당시 큰 농장주들이 농장을 거의 버리다시피하고 미국과 멕시코로 피난을 떠났지만, 우리는 워낙에 작은 농장이었고 외국에 아는 친척도 없어 그냥 이곳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 시절에 어려운 희망과 만연한 절망이 어디에나 웅크리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내전이 끝나자 대농장주들이 돌아와 좌파 정부가 소농들에게 분배했던 예전 농지들을 대부분 되찾아 갔다. 우리 동네에서 그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다. 내가 어릴 적 일이고 동네 어른 누구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아 사실 나는 그 시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나라고 처음부터 커피 농사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창 젊었을 때는 나도 또래들처럼 미국에 돈 벌러 갔다. 아메리칸 드림. 처음에는 마이애미에서 그 다음에는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더 큰 엘에이에서 일했다. 영어를 못했지만 일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주로 호텔이나 식당에서 청소 일을 도맡아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돈도 제법 모아 부모님께 송금도 해 드릴 수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새벽 호텔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깐 잠이 들었다. 창문 너머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에 깨어보니 벌써 해가 넘어가는 어스름이었다. 식당 뒷정리를 하러 슬슬 나가봐야 하는 데 그날 따라 유난히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호세야, 저녁 먹자" 옆 집 뚱땡이 아줌마가 창문을 힘차게 열어 젖히며 우렁찬 목소리로 공놀이에 여념 없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네, 엄마" 아이가 달려 오는 소리...
미국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그냥 소박한 저녁 상 앞에서 가족과 함께 식전 기도를 올리는 정적이 나는 더 간절했을 뿐이다. 커피 농사는 녹록치 않았다. 아버지를 도와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산비탈에서 일해도 일 년에 단 한 번 커피를 팔아 돌아오는 소득은 언제나 턱없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비료와 농약을 사는데 필요한 비용은 커녕 부모님 병원비와 우리 가족 생활비도 늘 부족해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5년 전 나날이 몸이 더 약해지시는 부모님을 위해 미국에서 가져왔다가 남은 마지막 돈으로 읍내에 작은 구멍가게를 내 드리고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농장 일을 꾸려 나가고 있다.
내가 필Pil을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겨울이었다. 하루는 내가 파치먼트 가공과 보관, 판매를 위탁한 베네피시오Beneficio(일종의 커피 가공/판매 회사)의 루이스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 바이어가 내 커피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데 같이 방문하겠다는. 필은 빡빡머리에 눈이 찢어진 것이 우리가 눈이 작은 이곳 친구들을 부르는 별명인 치노Chino(중국 사람)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커피와 관련한 스페인어를 통역 없이 대략 알아 들었고 커피 재배와 가공 관련한 질문들도 간단하게나마 내게 직접 물어봤다. 나는 그에게 우리 농장 곳곳, 특히 지난 봄 농장의 가장 높은 산비탈에 고생하면서 심은 마라카투라 품종의 어린 나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필을 애써 모른 척 하며 가파른 나무 숲 사이로 난 좁은 길들을 신이 나서 올라갔다. 사실 처음에는 무언가 면접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가 꼭 우리 커피를 사줬으면 하는 조바심에 초조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같이 농장을 둘러보며 나는 그가 우리 농장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그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고 이내 마음이 놓였다. 필은 산등성이 비탈에 위치한 농장인데도 일조량과 통풍이 좋다고 했다. 내게 비료를 몇 번 주냐고 물어 봤고 커피 나무 이파리의 탄력과 윤기를 보더니 나무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칭찬해줬다. 나는 "산비탈의 경사와 지형 방향에 따라 일조량이나 통풍에 큰 차이가 있고 경사 때문에 땅이 곧잘 침식되는 어려움이 좀 있긴 하지만, 산 위쪽 토양으로부터 좋은 영양분을 가진 물과 거름기가 한 데 모이는 곳이다 보니 맛있는 커피가 난다"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커피 체리의 점액질을 발효시키는 탱크와 파치먼트 건조장을 둘러봤다. 필은 두 손으로 파치먼트를 들어올려 향을 맡았다. 얼마나 오래 파치먼트를 건조하는 지 물어봤고 내가 답하자 아주 적절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농장을 둘러보고 집으로 내려오니 아내가 점심을 준비해 줘 필, 루이스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필은 아들 에르네스토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나보고 "조만간 에르네스토와 거래를 하게되겠군" 농담을 던졌다. 나는 그의 농담이 따스하다고 느꼈다.
그가 엘살바도르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스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루이스에게 위탁한 로트 3개 중 2개를 필이 너무 좋아해서 바로 구매 예약을 했고 ‘희망’이라는 우리 농장 이름 그대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며 축하한다고 전했다. 필이 제시한 가격은 아주 흡족했다. 그가 우리 커피 모두를 사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고, 모두 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 커피가 헐값에 넘어가 이름도 없는 커피 포대에 아무렇게나 담겨 팔리지 않아도 된다니 성모 마리아님께 감사할 일이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필은 잊지 않고 매년 우리를 방문한다. 작년부터는 첫 해에 같이 둘러봤던 마라카투라 나무도 제대로 결실이 맺히기 시작해서 그가 전량 구매하고 있다. 그는 우리 커피를 로스팅할 때 우리 가족과 고생스러웠던 산비탈을 떠올린다고 했다. 사실 요즘 그가 우리 농장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뿐이다.
"작년에도 좋은 커피를 보내 줘서 너무 고맙다, 한국 소비자들이 당신 커피로 행복해 했고 나는 그 덕분에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이 얘기 하러 왔다. 밥이나 먹자."
"얘들아, 너희 코레아노, 필 알지? 작년에도 봤잖아"
클라우디아가 답했다. "그럼 알지, 진짜 치노인걸?"
필은 클라우디아와 에르네스토가 그 사이 많이 크고 더 예뻐졌다며 소세지를 다 삼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오면 곧 필이 오겠구나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이 든다.
그는 올해도 우리 커피 세 로트를 구매했다. 여전히 커핑만 해 보고 구매하지 않은 로트도 있다. 클린컵이 좀 떨어진다나. 다 똑같이 정성들여 재배했고 다 품질 좋은데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여전히 그의 말이 잘 이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올해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우리 커피를 구매하는 한, 적어도 커피를 어디에 팔아야 할지, 돈을 얼마나 쳐 줄지 걱정하지 않고 커피 나무들을 기르는 데만 집중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이제 아이들도 학교에 들어갔고 양가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니 돈이 더 필요한 시절이 오고 있다.
가끔, 어려운 희망이란 무엇이고 절망은 왜 아직도 늘 곁에 있는지 예전 아버지 말씀이 궁금하다.
내 이름은 서필훈. 커피 리브레의 대표이자 주로 하는 일은 산지에 커피 사러 다니는 일과 로스팅이다. 산지에서는 나를 필Pil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한 음절 이름이 마음에 든다.
90일. 작년에 내가 산지에서 보낸 날들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 거창한 목표나 의미를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커피를 둘러싼 다양한 비지니스 가운데 스페셜티 커피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았다. 외국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회사들 하는 것을 눈 여겨 봤더니 다들 다이렉트 트레이드 하더라, 멋있더라, 좋은 품질의 생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나. 어찌 보면 참 미덥지 못한 시작이었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녹록치 않았다. 지지리도 없이 시작한 사업에,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위한 최소 구매 수량을 채우기 위해 이리 저리 어렵게 돈을 꾸러 다니며 생두를 들여왔다. 하지만 정작 장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신통치 않았다. 농장 가족들을 생각하니 한 번 시작한 농장과의 거래를 내가 어렵다고 그만 둘 수 없어서 그 다음 해에 더 많은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두 욕심에 매년 더 많은 나라의 농장들과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갔다.
지금은 사업이 많이 안정되어 고객분들과 여러 도움을 준 주변 지인들께 감사한 마음뿐이지만 아직도 나는 빚이 산더미 같다. 그 팔 할은 다이렉트 트레이드에 대한 내 욕심 때문이고 나머지 이 할은 내 무능한 경영 탓이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의 얼마간을 좋은 커피를 재배한 농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로스터로서 정말 맛있는 커피를 볶아서 내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저 마다 제 갈 길이 있듯이 나는 언제부턴가 로스팅은 내 내면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녹슨 청동거울을 하염없이 닦는 내 안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로스팅은 그저 농장 가족들의 노고와 열정을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맛있게 전달하는 메신저의 일일 뿐이라 생각했다.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여러 농장 커피를 로스팅 할 때마다 난 아직도 그곳의 기억을 영롱이게 하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마리오. 그는 니카라과 에스페란자 농장의 주인이다. 그는 말 수가 적지만 미소가 단아한 부인 마리아, 말괄량이 딸 클라우디아, 그리고 수줍음이 많은 막내 아들 에르네스토와 함께 커피 농장, ‘희망’을 일군다. 4년 전 루이스의 베네피시오에서 여러 종류의 커피 샘플들을 두고 커핑을 했는데 유독 마음에 드는 커피가 서너 개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중 두 개가 마리오의 커피였다. 그 커피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화사하고 밝은 산미가 폭발적인 커피는 아니었다. 오히려 맛이 단아하고 은은해서 지나치기 쉬운 커피였다. 색감이 화려하거나 향이 풍부한 꽃 말고 뭐랄까 발 밑을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제비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루이스에게 그 농장에 방문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나는 트럭 뒷켠에 올라타 먼지 날리는 비포장 산 길을 한 참이나 오르내린 후에야 그의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리오는 덩치가 크고 구레나룻이 있었다.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왠지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농장의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녔는데 덤불을 헤치며 그의 걸음을 뒤 쫓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그만 올라가자는 말이 헐떡이는 숨과 함께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점점 신이 나서 어느새 환하게 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접었다.
나는 그의 농장이 오랫동안 정성 들여 가꿔 온 결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커피 나무들은 매우 건강했고 쉐이드 트리 관리도 잘 되고 있었다. 비탈진 곳의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한 세심한 버팀목들도 농장주의 열정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마리오는 미국에서 살다와서 그런 지 소비국에서의 커피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한국의 커피 문화에 대해서도 질문을 많이 했다. 커피 밭을 둘러보고 다리가 거의 풀려 내려왔다. 그 사이 마리아가 점심을 준비해 놨다. 점심은 여느 중미에서처럼 지겨운 또르띠야와 맛 없는 빨간콩, 퍽퍽한 치즈, 느끼한 바나나 튀김이었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인지라 맛있게 먹었다. 우리 온다는 데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마리아가 수제 소세지를 좀 사왔다며 화로에 구워 내왔다. 점심이 맛 없다며 투정하던 마음이 부끄러워 목이 메었다. "아구아Agua, 아구아(물)!"
이제 마리오와 거래한 지도 4년 차다. 올해 그의 농장에 갔더니 산꼭대기에 있는 마라카투라 나무들이 멋지게 자랐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알기에 핑계를 대고 거절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빛나는 눈을 본 순간 말을 꺼내는데 실패했다. 오늘은 7살 에르네스토가 길을 따라 나섰다. 어린 녀석이 힘들지도 않은지 아버지를 따라 산 길을 잘도 올라갔다. 나는 차오르는 숨을 겨우 달래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저 꼬맹이가 조금만 더 크면 노쇠해진 나를 이끌고 이 길을 오르겠구나"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산지에 다녀오면 꼭 한 번씩 아프곤 한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러고 보면 늘 부족해서 희망이고 익숙한 것 중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절망이라 부르고 있는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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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훈 대표 인터뷰 #1 보기
어느 일요일 오후, 새벽 호텔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깐 잠이 들었다. 창문 너머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에 깨어보니 벌써 해가 넘어가는 어스름이었다. 식당 뒷정리를 하러 슬슬 나가봐야 하는 데 그날 따라 유난히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호세야, 저녁 먹자" 옆 집 뚱땡이 아줌마가 창문을 힘차게 열어 젖히며 우렁찬 목소리로 공놀이에 여념 없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네, 엄마" 아이가 달려 오는 소리...
미국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그냥 소박한 저녁 상 앞에서 가족과 함께 식전 기도를 올리는 정적이 나는 더 간절했을 뿐이다. 커피 농사는 녹록치 않았다. 아버지를 도와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산비탈에서 일해도 일 년에 단 한 번 커피를 팔아 돌아오는 소득은 언제나 턱없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비료와 농약을 사는데 필요한 비용은 커녕 부모님 병원비와 우리 가족 생활비도 늘 부족해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5년 전 나날이 몸이 더 약해지시는 부모님을 위해 미국에서 가져왔다가 남은 마지막 돈으로 읍내에 작은 구멍가게를 내 드리고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농장 일을 꾸려 나가고 있다.
내가 필Pil을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겨울이었다. 하루는 내가 파치먼트 가공과 보관, 판매를 위탁한 베네피시오Beneficio(일종의 커피 가공/판매 회사)의 루이스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 바이어가 내 커피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데 같이 방문하겠다는. 필은 빡빡머리에 눈이 찢어진 것이 우리가 눈이 작은 이곳 친구들을 부르는 별명인 치노Chino(중국 사람)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커피와 관련한 스페인어를 통역 없이 대략 알아 들었고 커피 재배와 가공 관련한 질문들도 간단하게나마 내게 직접 물어봤다. 나는 그에게 우리 농장 곳곳, 특히 지난 봄 농장의 가장 높은 산비탈에 고생하면서 심은 마라카투라 품종의 어린 나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필을 애써 모른 척 하며 가파른 나무 숲 사이로 난 좁은 길들을 신이 나서 올라갔다. 사실 처음에는 무언가 면접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가 꼭 우리 커피를 사줬으면 하는 조바심에 초조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같이 농장을 둘러보며 나는 그가 우리 농장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그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고 이내 마음이 놓였다. 필은 산등성이 비탈에 위치한 농장인데도 일조량과 통풍이 좋다고 했다. 내게 비료를 몇 번 주냐고 물어 봤고 커피 나무 이파리의 탄력과 윤기를 보더니 나무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칭찬해줬다. 나는 "산비탈의 경사와 지형 방향에 따라 일조량이나 통풍에 큰 차이가 있고 경사 때문에 땅이 곧잘 침식되는 어려움이 좀 있긴 하지만, 산 위쪽 토양으로부터 좋은 영양분을 가진 물과 거름기가 한 데 모이는 곳이다 보니 맛있는 커피가 난다"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커피 체리의 점액질을 발효시키는 탱크와 파치먼트 건조장을 둘러봤다. 필은 두 손으로 파치먼트를 들어올려 향을 맡았다. 얼마나 오래 파치먼트를 건조하는 지 물어봤고 내가 답하자 아주 적절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농장을 둘러보고 집으로 내려오니 아내가 점심을 준비해 줘 필, 루이스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필은 아들 에르네스토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나보고 "조만간 에르네스토와 거래를 하게되겠군" 농담을 던졌다. 나는 그의 농담이 따스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필은 잊지 않고 매년 우리를 방문한다. 작년부터는 첫 해에 같이 둘러봤던 마라카투라 나무도 제대로 결실이 맺히기 시작해서 그가 전량 구매하고 있다. 그는 우리 커피를 로스팅할 때 우리 가족과 고생스러웠던 산비탈을 떠올린다고 했다. 사실 요즘 그가 우리 농장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뿐이다.
"작년에도 좋은 커피를 보내 줘서 너무 고맙다, 한국 소비자들이 당신 커피로 행복해 했고 나는 그 덕분에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이 얘기 하러 왔다. 밥이나 먹자."
"얘들아, 너희 코레아노, 필 알지? 작년에도 봤잖아"
클라우디아가 답했다. "그럼 알지, 진짜 치노인걸?"
필은 클라우디아와 에르네스토가 그 사이 많이 크고 더 예뻐졌다며 소세지를 다 삼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오면 곧 필이 오겠구나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이 든다.
그는 올해도 우리 커피 세 로트를 구매했다. 여전히 커핑만 해 보고 구매하지 않은 로트도 있다. 클린컵이 좀 떨어진다나. 다 똑같이 정성들여 재배했고 다 품질 좋은데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여전히 그의 말이 잘 이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올해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우리 커피를 구매하는 한, 적어도 커피를 어디에 팔아야 할지, 돈을 얼마나 쳐 줄지 걱정하지 않고 커피 나무들을 기르는 데만 집중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이제 아이들도 학교에 들어갔고 양가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니 돈이 더 필요한 시절이 오고 있다.
가끔, 어려운 희망이란 무엇이고 절망은 왜 아직도 늘 곁에 있는지 예전 아버지 말씀이 궁금하다.
내 이름은 서필훈. 커피 리브레의 대표이자 주로 하는 일은 산지에 커피 사러 다니는 일과 로스팅이다. 산지에서는 나를 필Pil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한 음절 이름이 마음에 든다.
90일. 작년에 내가 산지에서 보낸 날들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 거창한 목표나 의미를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커피를 둘러싼 다양한 비지니스 가운데 스페셜티 커피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았다. 외국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회사들 하는 것을 눈 여겨 봤더니 다들 다이렉트 트레이드 하더라, 멋있더라, 좋은 품질의 생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나. 어찌 보면 참 미덥지 못한 시작이었다.
지금은 사업이 많이 안정되어 고객분들과 여러 도움을 준 주변 지인들께 감사한 마음뿐이지만 아직도 나는 빚이 산더미 같다. 그 팔 할은 다이렉트 트레이드에 대한 내 욕심 때문이고 나머지 이 할은 내 무능한 경영 탓이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의 얼마간을 좋은 커피를 재배한 농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로스터로서 정말 맛있는 커피를 볶아서 내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저 마다 제 갈 길이 있듯이 나는 언제부턴가 로스팅은 내 내면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녹슨 청동거울을 하염없이 닦는 내 안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로스팅은 그저 농장 가족들의 노고와 열정을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맛있게 전달하는 메신저의 일일 뿐이라 생각했다.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여러 농장 커피를 로스팅 할 때마다 난 아직도 그곳의 기억을 영롱이게 하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마리오. 그는 니카라과 에스페란자 농장의 주인이다. 그는 말 수가 적지만 미소가 단아한 부인 마리아, 말괄량이 딸 클라우디아, 그리고 수줍음이 많은 막내 아들 에르네스토와 함께 커피 농장, ‘희망’을 일군다. 4년 전 루이스의 베네피시오에서 여러 종류의 커피 샘플들을 두고 커핑을 했는데 유독 마음에 드는 커피가 서너 개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중 두 개가 마리오의 커피였다. 그 커피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화사하고 밝은 산미가 폭발적인 커피는 아니었다. 오히려 맛이 단아하고 은은해서 지나치기 쉬운 커피였다. 색감이 화려하거나 향이 풍부한 꽃 말고 뭐랄까 발 밑을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제비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루이스에게 그 농장에 방문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나는 트럭 뒷켠에 올라타 먼지 날리는 비포장 산 길을 한 참이나 오르내린 후에야 그의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리오는 덩치가 크고 구레나룻이 있었다.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왠지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농장의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녔는데 덤불을 헤치며 그의 걸음을 뒤 쫓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그만 올라가자는 말이 헐떡이는 숨과 함께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점점 신이 나서 어느새 환하게 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접었다.
이제 마리오와 거래한 지도 4년 차다. 올해 그의 농장에 갔더니 산꼭대기에 있는 마라카투라 나무들이 멋지게 자랐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알기에 핑계를 대고 거절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빛나는 눈을 본 순간 말을 꺼내는데 실패했다. 오늘은 7살 에르네스토가 길을 따라 나섰다. 어린 녀석이 힘들지도 않은지 아버지를 따라 산 길을 잘도 올라갔다. 나는 차오르는 숨을 겨우 달래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저 꼬맹이가 조금만 더 크면 노쇠해진 나를 이끌고 이 길을 오르겠구나"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산지에 다녀오면 꼭 한 번씩 아프곤 한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러고 보면 늘 부족해서 희망이고 익숙한 것 중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절망이라 부르고 있는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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