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방송에 등장하며 모델들의 눈물을 쏙 빼놓게 하는 ‘호랑이’ 사진작가가 있죠. 여러 커뮤니티에 등장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보습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조선희 작가입니다. 전공도 아닌 낯선 곳에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사진업계에 뛰어든 그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죠, 이렇게 놀라운 재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왜관 촌년’이라 부르는 조선희 사진작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71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난 조선희 작가는 대학교에 가서 카메라를 접합니다. 수많은 톱스타들을 앵글에 담아온 그의 전공은 의생활학과였습니다. 우연히 사진 동아리에 들어간 그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반해 “평생 셔터 소리 들으며 살고 싶다”는 것이 그가 사진을 평생 직업으로 삼게 된 이유였죠.
오롯이 사진에 빠진 조선희는 ‘사진 아니면 백수’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원서 하나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사진에만 몰두하는데요. 대학 졸업 후 김중만 사진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프로의 세계에 뛰어듭니다.
전문 사진작가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희는 배우, 영화 포스터, 광고 등을 주로 해왔는데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를 스타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 계기는 바로 배우 이정재의 사진 한 장이었는데요. 1996년 담배를 피우는 이정재 사진으로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단숨에 올라올 수 있었죠. 이 사진은 이정재의 데뷔 20주년 특별전에도 전시가 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직설적인 성격을 가감 없이 보여준 조선희는 일부 시청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죠. 잘못된 점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호랑이 선생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조선희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선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며 “내 성격이 직설적이게 말하는 성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우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고 집요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업계에선 ‘인물 사진은 조선희가 최고’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패션 화보 사진에서도 이름을 날리며 조선희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진작가가 됐습니다.
완벽주의 덕분인 걸까요? 조선희 작가와 사진 작업을 희망하는 연예인들은 굉장히 많은데요. 이에 대해 그는 “상대방을 편하게 한 것 같다”며 “시골에서 자라 이 바닥 사람들이 냉정하고 이기적인 게 힘들어서 그렇게 살지 않기도 생각했다”는 말을 전했죠.
최근 조선희는 KBS2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와 4층짜리 건물을 소개했습니다. 월세 56만 원에 창문도 없는 지하에서 스튜디오를 시작했다고 말하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그는 “IMF 때 어렵게 시작했다”며 “월세가 자꾸 올라가자 열받아서 ‘내가 사 버리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는데요.
조선희가 월세에서 건물주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5년이라는 사실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는데요. 1998년 당시 작업 한 건당 800만 원을 받았다고 알려졌는데요. 자세히 말하면 컷 수에 따라 비용이 그보다 더 높아집니다. 조선희는 방송을 통해 현재 800만 원보다는 더 많이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죠.
2015년 조선희는 한 방송을 통해 자신의 한남동 집을 공개했는데요. 넓은 거실과 테이블, 집안 곳곳에는 사진들이 걸려있어 갤러리를 연상하게 했죠. ‘걸어 다니는 1인 기업 수준’이라는 그의 연봉은 약 10억이라고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