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한국 떠나는 대기업 인재들 “왜 떠나나 했더니…”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누군가 막대한 연봉과 복지를 자랑하는 대기업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해외기업으로 가게 됐다고 하면 그제야 그 선택이 이해가 되는데요.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고급인력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기술선점의 관건은 단연 인력확보인데 고액연봉과 훨씬 좋은 연구인프라를 제안받았다며 줄줄이 빠져나가는 고급인력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죠. 대체 해외 기업들은 어떤 분야에서, 어떠한 이유로 한국의 인재들을 필요로 하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의 인재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데요. 특히 AI, 메타버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일찌감치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한 분야에서 국내 인재유출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캐나다AI전문기업 ‘엘리먼트AI’가 지난 2월 발간한 ‘2020글로벌 AI 탤런트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은 근 5년간 AI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만, 유입은 되지 않는 ‘프로듀서 국가’로 분류되는 불명예를 안았는데요. 즉 한국에서 실력을 쌓고 외국 기업에 취직해 ‘남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AI 업계의 한 임원급 관계자는 “실리콘밸리 업체들의 평균 연봉과 국내 대기업 평균연봉 차이가 두세 배 이상으로 벌어지고 있다”라며 “해외에서 이미 인정받은 개발자들이 많다 보니 요즘은 외국 기업이 수시로 온라인을 통해 개발자들에게 이직 제안서를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메타버스의 경우 국내에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는데요. 지금 상황으로선 해외에서 걷고, 달리기를 시작할 때 한국은 여전히 걸음마를 못 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드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인재 유출이 심각하다는 것인데요.
메타버스는 이상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 와 우주 혹은 세상을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데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기술로 앞으로 차세대 디지털 전쟁터로 손꼽히는 분야입니다. 오는 202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약 15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죠.
특히 메타버스 산업에선 확장 현실을 뜻하는 XR 기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인데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XR기업의 절반 이상이 고급인력 부족을 기업 운영의 가장 큰 어려운 점으로 뽑은 바 있습니다.
일찌감치 XR 인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글로벌 기업들은 XR관련 분야라면 묻지도 따지지 않는 공격적인 합병에 나섰는데요. 특히 미국 기업들의 XR 인수 합병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치 ‘XR기업 쇼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지금은 우리와 친숙한 VR조차 생소하던 시기 2014년 VR 기기를 만드는 오큘러스를 시작으로 메타버스와 관련된 총 5개 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애플 역시 AR(증강현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 메타이오를 비롯한 총 10개의 메타버스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구글도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지난 2014년부터 아이플루언스, 퀘스트비주얼 등 XR 기업을 사들였죠.
기업 합병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메타버스 분야에 관한 전문가라면 전 세계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인 영입에 나섰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요. 국내 메타버스 기업 관계자는 “근 3년간 해외로 나간 메타버스 전문인력만 20명이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학생에까지 손을 뻗었는데요. 메타버스 인재를 육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소재의 모 대학 연구실에서만 최근 3년간 2명의 연구원이 페이스북으로 이직했다고 합니다.
메타버스 전문가들은 현재 메타버스에 관해선 인력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읍니다. 아직 XR에 필요한 모든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국내 기업이 나오지 않은 데 비해, 해외는 3억원대의 높은 연봉을 제안하는 데다 이미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으니 이직 제안을 받은 이상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향후 메타버스 산업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선 국내에서 인재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현재 네이버는 2018년 8월 ‘제페토’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출시해 메타버스 산업을 키워가고 있고,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최근 메타버스 공부에 푹 빠졌다고 언론에 알려진 만큼 국내 빅테크 기업들이 메타버스 인재 유출이 아닌 유입국이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떤 환경을 조성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