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일 근무, 점심시간 30분’ 고소득 전문직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변호‘사’,의‘사’, 검‘사’ 등 소위 사짜직업은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데요. 이들은 엄청난 양의 전문지식을 오랜 기간에 거쳐 습득해야 하기에, 되기 힘든 만큼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사 역시 그간 사짜 직업 중 하나로 고소득이 보장돼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직업군 중 하나였는데요. 약사는 더울 땐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추울 땐 따뜻한 히터 바람을 쐬며 깨끗한 약국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일할 수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있죠. 과연 약사의 업무환경은 소문처럼 정말 남부러울 게 없는 것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MBC ‘아무튼 출근!’에서는 5년 차 약사로서 현재 약국을 운영 중인 한성원의 하루가 담겼는데요. 그간 여러 약국에서 근무약사로 일하다 지난 2019년부터 직접 약국을 개업해 개국약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약사는 전문직이니 편하게 일할 것이다’라는 인식을 깨고자 직접 방송사 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개국 약사로서 그녀의 하루는 일찍부터 시작됐는데요. 오전 8시 30분에 약국 문을 열기 위해 7시까지 출근 준비를 마친 그녀는 약국에 도착해 정식 오픈을 하기 전부터 밀려드는 손님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이후 손님이 떠난 이후에도 2천여 개가 넘는 약들을 정리하고 매장 내부 곳곳을 청소하는 등 출근하자마자 잠시 쉴 틈도 없이 바삐 몸을 움직였는데요.
약국의 점심시간은 보통 인근의 병원 점심시간에 맞춰 해야 하기에 점심시간도 30분밖에 누리지 못했습니다. 한성원씨는 개국약사로서 기본적으로 약사가 하는 업무 외에도 청소, 재고관리, 처방 점검 이후 청구해야 하는 작업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밝혔는데요.
오전 8시 30분부터 밥 9시까지 하루 12시간 약국에 머무르면서 그녀는 화장실을 단 2번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장시간 근무를 위해 눕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약국 한편에 있는 ‘노란 장판’ 위에 그녀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본 패널들은 짠함을 숨기지 못했는데요.
한성원 씨는 개국약사를 전문직, 자영업자, 서비스직을 겸하는 셈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이토록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약사가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씨는 “다른 분들의 건강을 챙기느라 정작 제 건강은 챙길 여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밥벌이 만족도는 90%”라며 “약사와 자영업자 사이에서 아직까지 힘든 부분이 있지만 약국을 통한 밥벌이 만족도를 100%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한 씨가 방송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개국 약사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은데요. 오히려 한성원 씨처럼 약국에 손님들이 너무도 많이 밀려와 힘든 경우라면 상황은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큰돈 들여 약국을 오픈했음에도 손님이 찾지 않아 적자만 보고 있는 경우일 텐데요.
지난해 12월경 약국을 오픈했다는 약사 박모 씨는 근무 약사를 그만두고 개국약사를 한 것을 줄곧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가 약대를 준비할 당시만 하더라도 약국 개국하면 못해도 한 달에 500만 원 이상은 벌 수 있고 1000만 원의 수입은 보통이라는 말이 정설로 여겨졌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박 씨는 “일반약 하루 20만 원 남짓 팔아서 한 달에 약 400만 원 수입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월세, 전기세, 보험료, 세무비용, 대출 빚, 관리비, 약사회비 등등 빠져나가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없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당장이라도 운영하던 약국을 정리하고 근무약사로 전환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약국 개국을 위해 들인 돈이 1억 원이 넘어 당장 정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데요. 그는 “약국 개국할 돈으로 차라리 편의점이나 무인 아이스크림점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이 자주 든다”라고 토로했습니다.
특히 개국약사는 전문직이면서도 자영업자이기도 하기에 매출을 위해서 주 7일 근무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하는데요. 서울에 위치한 약국에서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다는 안모 씨는 “원래 주 6일이었는데 코로나19로 매출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마감시간을 좀 앞당기고 주 7일 근무를 이어오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외 약국 인근 병원의 갑질로 힘들어하는 개국 약사들도 있는데요. 강원 춘천시에서 약국을 하는 약사 A 씨는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으로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병원 인테리어비를 대신 내달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서울 중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B 씨는 코로나19 이전 직원이 수십 명에 달하는 인근 병원의 원장으로부터 회식비를 내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외 인근 병원의 관리비와 임대료를 대신 내주고 있는 약국의 사례도 있었는데요. 이 같은 일부 병원의 부당한 갑질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큰 피해를 본 경우라면 병원을 고발하는 제보가 많지 않아 근절하기도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 개국약사가 힘들면 다른 약국에 소속돼 일하거나 대형병원에 소속돼 일하는 근무약사로 일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약국 구인시장으로 인해 근무 약사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요. 약사생존전략연구회가 올해 초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 약사 10명 중 8명은 구직난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어렵사리 약대에 입학해 6년 치의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냈음에도 취업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인데요.
약사생존전략연구회 관계자는 “치열한 약사 국가시험을 치렀음에도 취직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라며 “코로나19로 구직난을 겪는 약사가 늘어나긴 했지만 2011년 약대 대규모 증원으로 인해 언젠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약사 과포화 현상이 신입 약사들의 채용을 더 힘겹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대를 나와 약사를 꿈꾸는 이들보다 제약회사에 취직하기를 꿈꾸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는데요. 약대생들 사이에서는 ‘삼녹셀’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하죠.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녹십자, 셀트리온 유명 제약 바이오기업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딴 것인데요. 실제로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실시한 최근 제약·바이오사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녹십자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좋은 업무환경을 지닌 것으로 오해받던 개국 약사들의 근무환경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현재 바이오기업들이 상종가를 치는 등 유망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약대 취준생들의 제약 바이오회사 선호 현상은 향후 더 짙어질 것으로 점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