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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피클코

시청자 모두 기만하냐? 리얼예능으로 홍보하던 프로그램의 대본 수준

2009년 "패떴" 대본 공개 뒤 논란

농담, 감탄사까지 세세하게 적힌 대사

출연자·시청자 모두에게 예민한 문제

MBC 나혼자 산다

'개그콘서트'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콩트 중심의 예능 대신, 요즘은 연예인들의 리얼한 생활을 관찰하는 예능이 대세입니다. 각 프로그램마다 콘셉트와 규칙이 정해져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상황, 멤버들 간 대화, 케미, 그들의 행동은 모두 진짜일 것이라 믿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런 유의 예능을 '리얼리티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예능 작가들은 대체 어떤 일을, 어디까지 하는 걸까요? 오늘은 예능 방송에서 대본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농담까지 적혀있던 '패밀리가 떴다' 대본

방송문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창 정상을 달리던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는 논란에 휩싸입니다. 각 출연자의 대사까지 세세하게 적힌 대본이 공개되면서 시청자들이 "리얼이라더니 대체 뭐가 리얼이냐"며 배신감이 든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죠. 이 대본은 작가나 프로그램 관계자를 통해 실수로 유출된 것이 아닙니다. 한국 방송작가협회에서 매달 펴내던 잡지 <방송문예>의 '다시 보기-이 방송 글'이라는 코너에 정식으로 실린 것이 기사화되면서 시끄러워진 것이죠.

방송문예, SBS 패밀리가 떴다

해당 대본의 내용을 살펴보면, 각자의 콘셉트나 대략적인 대화 내용뿐 아니라 감탄사, 면박주기나 농담용 멘트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적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맨 하단에는 '그 외에 지난번 녹화 이야기, 서로에 대한 캐릭터 얘기 등 자연스러운 토크'를 하라는 디렉션이 있었죠. 이 대본 내용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시청자들은 "다 짜고 치는 거였냐", "배신감 느낀다"거나 "그럼 대본 없이 하는 줄 알았냐", "저런 예시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것" 등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투표 결과와 그에 대한 리액션은 '리얼'

다음 카페 시나리오 작가, MBC 무한도전

시나리오 작가들이 모이는 한 온라인 카페에는 무한도전 대본이 올라옵니다. 171회 '품절남 특집-무한 홈쇼핑'편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대본에는 각 장면을 촬영할 장소와 시간, 출연자, 게스트, 이들의 복장과 함께 상황 묘사, 오프닝 멘트, 진행 멘트, 게스트들의 반응 멘트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멤버가 어떤 벌칙 아이디어를 낼지까지 미리 정해져 있었죠.

다음까페 시나리오 작가, MBC 무한도전

다만 투표 결과, 순위 등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3위는 OOO 씨 (**표), 2위는 OOO 씨 (**표)'라고만 표기해 실제 투표 결과에 따라 대사가 달라질 수 있도록 했죠. 또한 순위에 대한 리액션 부분도 '순위에 대한 리액션'이라고만 표기해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도했습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리 인터뷰 부분에서는 행인의 대사까지 미리 정해두지는 않았고, 나올 수 있는 대답들, 그리고 그 대답에 따른 출연진의 반응을 적어두었죠.

방송 초반일수록 세세한 대본

레이디 경향

아무리 리얼 예능이라고 하더라도, 출연자들은 프로그램 전체와 각 회차를 결정짓는 큰 틀 속에서 움직입니다. 출연진의 진지하고 평범한 진짜 일상을 반복해서 보고 싶은 시청자는 극히 드물 테니까요. 특히 출연자들이 프로그램 형식에 익숙하지 않고 프로그램 인지도도 떨어지는 방송 초반에는 대본의 중요성이 더 중요한데요. 이때 작가들은 각 출연진의 캐릭터를 잡고, 캐릭터들 간 다양한 관계 설정을 한 뒤 반응이 좋으면 구체적인 대사를 써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예시 차원이고, 프로그램이 궤도에 오를수록 그 비중은 줄어든다네요.

PD저널, 더좋은이엔티

'GQ'의 기사에 따르면, 예능 출연자들 중에는 이런 대본의 존재에 민감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대본 따라 연기하는 연기자로 보이는 것과 억지로 설정된 느낌을 싫어하는 이들이죠. 만일 출연자가 현장에서 대본에 살을 붙여 자신의 느낌대로 풀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작가들은 상황에 따라 이를 더욱 부추기기도, 전체 콘셉트를 생각해 깔끔하게 끊기도 한다네요.

나영석 PD "예능은 다큐멘터리 아냐"

2017년, '꽃보다 할배', '윤식당', '삼시 세끼'등 수많은 예능을 성공시킨 나영석 PD는 칸 광고제 무대에 섭니다. '지루함의 힘, 평범함이 놀라움이 될 수 있다'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그는 "사람들은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환상'을 원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능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대본에 따라 만들어지는 일종의 환상입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삼시 세끼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도시 생활을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 놀고먹는 삶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죠.

MBC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 대본 공개 사건 때문인지, 이른바 '리얼리티 예능'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시청자들은 현실 예능에 대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더 이상 놀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예능의 상황에 몰입하는 이들에게 "예능은 예능, 방송은 방송일 뿐"이라며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하죠. 또 어떤 이들은 재밌는 상황을 짜고 다양한 캐릭터를 살려서 공감 가는 스토리를 끌어내는 것이 진짜 '리얼'이라며 "예능에 다큐 같은 현실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예능 대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글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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