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라는 미국 격언이 있는데요. 곤궁한 변호사가 불법으로 돈을 쉽게 벌려고 한다면, 이들은 법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사회적으로 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간 국내 사회에서 변호사는 돈 잘 버는 전문직종 중 하나로 ‘곤궁함’, ‘배고픔’이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죠. 그러나 ‘변호사 3만명 시대’가 열리면서 한 달에 한 건의 사건도 맡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고소득 전문직’ 중 하나였던 변호사가 어쩌다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4월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경력
3~5년 차 변호사를 월급
250만원
~300만원 수준에 사내 변호사로 채용하겠다는 공고가 올라와 논란을 빚었는데요
.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연봉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연봉을
3~5년 차 변호사에게 주겠다는 내용이라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갔습니다
. 일부 변호사들 사이에선
“차라리 법 공부 하지 말고 바리스타나 될 걸 그랬다
”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
변호사의 몸값 낮추기는 이제 더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사건 수는 감소하는데 변호사 수는 급증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1906년 국내 1호 변호사가 탄생한 뒤 그 수가 1만명으로 늘어나기까지 대략 100년이 걸렸는데요. 이후 2만명, 3만명으로 늘어나기까진 각각 8년, 5년으로 텀이 짧아졌습니다. 올해 3월 법무부가 밝힌 자료로는, 현재 활동 중인 변호사는 2만9724명에 달하는데요.
이처럼 변호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변호사들의 전통적 먹거리라 할 수 있는 소송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 법조계에 따르면
, 2014년
650만
844건이었던 소송건수는
2018년 약
1.3% 늘어난
658만
5580건에 그쳤는데요
. 그나마 최근
4년간은 소송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변호사들이 월평균 사건 수임 건수가 3건은 됐지만 , 2019년이 되면서 1.26건으로 뚝 떨어졌다 ”라고 밝혔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등기 ·세무 등으로 업무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법무사 , 세무사들 사이에서 변호사들에 대한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사건이 저절로 들어오고 특별한 홍보활동 없이 억대 연봉을 올리는 변호사 이미지는 이제는 완전히 옛말이 됐죠
. 젊은 변호사들은
1만원을 받고 전화상담을 통해 고객을 끌어모으는 등 직접 영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
8년차 변호사
A 씨는
“활동 초기만 해도 일반 민사사건 최소 수임료가
400만원에서
500만원 선이었는데 요즘은
200만원 안팎을 오간다
”라며
“한 달에 한 건 수임하기도 힘든데 사건 하나당
2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하면 여기다 세금 떼면 정말 남는 게 없다
”고 토로했습니다
.
한 명의 고객이라도 끌어모으기 위해 아예 일부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변호사들도 있는데요
. 2년 전 서초동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변호사
B 씨는
“30만원 정도 받던 내용증명 업무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라며
“변호사협회에서는 무료 상담은 지양하라고 하지만 일단 서비스를 무료로 받은 고객은 본인이나 지인이 송사에 휘말렸을 때 무료로 서비스받은 변호사를 먼저 떠올릴 테니 잠재적 고객 유치 차원에서 하고 있다
”라고 밝혔습니다
.
이밖에
‘리걸테크
’시장은 변호사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는데요
. 리컬테크는 법률과 기술의 결합으로 비교적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비스지만
, 법조계에서 빠르게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데요
. 예컨대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AI가 판례와 법령을 분석해주면서 그간 변호사들이 해 온 법률자문 등의 업무를 대체하는 식입니다
. 로톡을 비롯한 온라인 기반 법률상담 플랫폼의 증가도 변호사들의 수임료를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인데요
.
올해
4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유료사이트
‘네이버 엑스퍼트
’ 법률 코너에는
‘10분에
3천원으로 개인회생 절차 상담 가능
’이란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 아무리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상담이라고는 하나
, 충격적으로 낮은 가격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요
.
최근 헬스장 PT 환불 관련 문의를 ‘네이버 엑스퍼트’를 통해 진행했다는 김모 씨는 “10분 상담에 9900원이라고 나와 있어 별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변호사가 직접 약관규제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줘 큰 도움 됐다”라며 “실제 상담은 30분 가까이 한 것 같고, 네이버가 제공한 쿠폰을 적용했더니 무료로 상담받았다”라고 전했습니다.
변호사들이 1만원도 안 되는 상담료를 받고도 네이버 엑스퍼트를 이용하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인데요 . 국세청의 자료에 의하면 2018년 변호사의 종합소득 평균 신고금액은 1억 1천만원 정도입니다 . 그러나 해당 통계에는 허점이 많은데요 . 변호사는 전문직 시장 가운데서도 소득 양극화가 극심한 편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 한 법조계 전문가는 “대형 로펌변호사는 1년에 수억원은 어렵지 않게 벌어들이지만 로스쿨 출신 개업 변호사 중에선 월 200도 못 버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라고 전했습니다 .
이러한 상황을 변호사 업계에선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업계 내부에서는 생계 어려움을 호소하는 변호사가 늘다 보면, 공적 이익 대신 사적이익만 추구하는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경고하는데요.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가 사기로 거둔 수익 약 1%를 받는 조건으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나왔습니다.
이임성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조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로스쿨 결원 보충제를 폐지하고
,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향후
1천명까지 줄여야 한다
”라고 지적했는데요
. 결원보충제도는 로스쿨의 엄격한 학사관리로 매년 일정 수준의 중도 탈락자가 발생하니
, 이를 총 입학 정원의
10%범위 내에서 다음 연도 신입생으로 충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 해당 제도를 폐지해서라도 변호사 수 증가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죠
. 지금까지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변호사들이 위상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 변호사들이 노동에 대한 적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법률시장의 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지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