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전국민이 중독되었던 전설의 유리병은 왜 사라졌을까?
발길 내딛기 힘들 때 - 이글루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어디를 가도 발견할 수 있다는 물건이 여럿 있죠. 어느 지역에서든 찾을 수 있다는 '인삼 수저'는 몇 천년 후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와 함께 인삼 무늬 수저로 박물관에 전시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죠.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어떤 집에 놀러 가도 자리를 지키던 유리병이 있습니다.
케이타운 일번가, 응답하라 1988 |
'응답하라 1988'에도 등장하는 델몬트 유리병은 90년대 대부분의 집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너희 집도 이거 쓰냐?"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죠. 1.5L 용량의 델몬트 오렌지주스를 다 마신 뒤면 당연하다는 듯이 다음날 차가운 보리 차를 담고 식탁 위에 올라와 있었죠.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델몬트 유리병은 이제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체 왜 사라진 걸까요?
전설의 유리병, 왜 사라졌을까?
기업공장전문부동산_네이버블로그 |
델몬트 유리병은 병 전체에 엠보싱이 되어있고 손잡이 부분에 홈이 파여있어 사용하기에도 좋고 저렴한 느낌이 들지 않았죠. 투명해서 음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파악하기도 쉬웠습니다. 거기에 유리 소재라 위생적이라는 인식도 있었죠.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당시 이만한 물건도 없었습니다.
소현(@so.hyeoni2) |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벅찬 물통이기도 했죠. 1.5L에 미끄러운 유리병에 담긴 보리 차를 먹기 위해서는 두 손으로 조심조심 따라야 했습니다. 혹여 손이 미끄러지거나 쏟을까 봐 매번 긴장해야 했죠.
@tkgid25 |
당시 많은 사람들이 델몬트 유리병을 사용했던 만큼, 유리병을 추억하며 왜 사라졌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인터넷에는 델몬트가 유리병을 판매하지 않은 이유를 회수가 잘되지 않아서라는 글이 많았죠.
SBS |
델몬트가 10번 재사용하기 위해 일반 유리병보다 높은 단가로 튼튼하게 제작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유리병을 재활용에 내놓지 않고 집에서 쓰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겁니다. 델몬트 유리병을 사용한 집이 많았던 만큼 이 추론은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죠.
델몬트 유리병 단종 사건의 전말
식품음료신문, @by_jjongorange |
하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자 SBS는 직접 롯데칠성음료를 찾아가 델몬트 유리병이 사라진 진짜 이유를 알아냈죠.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델몬트 유리병이 사라진 이유는 유리병이 회수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dtoday |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방문판매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백과사전, 위인전, 화장품부터 각종 음료수를 방문판매하곤 했죠. 집까지 음료수가 직접 올 때는 유리병의 무게가 문제시되지 않았지만, 방문판매가 사라져 소비자들이 직접 무거운 유리병을 들고 다니기엔 부담도 되고 위험했던 것입니다.
와중에 가벼운 페트병이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은 대형 유리병보다 가볍고 깨질 염려가 적은 페트병 음료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프리미엄 음료가 출시되어 대체재가 많아진 것도 한몫했죠.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미 사용할 유리병은 충분히 확보되어 깨트리지 않은 이상 굳이 무거운 병음료를 살 필요가 없었죠.
KBS, @r.new__ |
또한 델몬트 유리병을 여름철 실외에 장시간 방치했다는 유리병 자체가 터질 위험도 있었습니다. 주스 속 미생물이 증식하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인해 병 속의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죠. 이는 위기탈출 넘버원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안전상의 이유와 편의성 등 시대의 요구에 따라 사라지게 된 것이죠.
델몬트 유리병은 1987년 4월 도입되어 23년간의 여정을 끝마쳤습니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썬키스트 유리병은 좀 더 지난 2013년 단종되었죠. 하지만 인기는 여전히 시들지 않아 비슷한 디자인의 유리병을 판매하는 업체까지 생겨났죠. 이제는 사라진 전설의 유리병이 잠시 선사한 추억을 즐기고 소중한 기억으로 보내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