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대에 800억 원을 태운다고? 페라리 250 GTO
페라리 250 GTO는 두 말할 필요 없는 세계 최고가 차량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해외에서 클래식카는 대표적인 투자 자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오래되고 소장가치 있는 자동차는 단순한 공산품이 아닌, 문화재이자 예술품 대접을 받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 와인, 시계, 보석, 미술품 등과 더불어 클래식카 투자 열풍이 불 정도입니다.
이 차의 가격은 자그마치 7,000만 달러, 한화 805억 원에 달합니다. |
국내에도 외신을 통해 종종 고가의 클래식카 경매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는데요. 여러 차들이 경매를 통해 거래되지만, 그 중에서도 감히 '지존'이라 할 수 있는 차가 있습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꼽히는 걸작, 페라리 250 GTO입니다. 경매는 물론 개인 거래에서도 역대 최고가 기록을 보유 중인데, 그 금액은 자그마치 7,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하면 805억 원에 달합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실텐데요. 250 GTO의 공차중량이 950kg입니다. 같은 무게의 순금을 산다면 약 635억 9,000만 원(*작성일 기준) 정도니까, 말 그대로 '금보다 비싼 차'인 셈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차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요?
레이스에서 탄생한 로드카, 다시 레이스카가 되다
250 GTO의 V12 엔진. 지오아키오 콜롬보가 개발한 이 V12 엔진은 오랫동안 여러 모델에 탑재됐습니다. |
우선은 그 원형인 페라리 250 시리즈에 대해 알아봅시다. 1952년부터 1964년까지 다양한 배리에이션으로 제작된 250은 페라리 초기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었는데요. '250'이라는 이름은 V12 엔진의 실린더 당 배기량(250cc)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레이스카와 로드카를 불문하고 모두 3.0L V12 '콜롬보'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베이스 모델인 250 GT SWB. 이 차 역시 현재는 엄청난 소장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
페라리가 레이스 할 돈을 벌기 위해 레이스카를 로드카로 개조해서 팔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250도 다르지 않아서, 애당초 레이스카로 만들어진 250을 바탕으로 로드카 버전인 250 GT 모델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던 1960년, 페라리는 250을 FIA 그룹 3 GT카 레이스에 내보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룹 3는 프로토타입이 아닌 양산차 기반 레이스였기 때문에 12개월 간 100대 이상 생산된 차만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페라리는 이에 250 GT SWB를 바탕으로 그룹 3 규정에 맞춘 로드카 겸 레이스카의 개발에 착수합니다.
왼쪽부터 엔초 페라리, 카를로 키티, 지오토 비짜리니. 키티와 비짜리니는 하술할 사건으로 페라리를 떠나게 됩니다. |
차량의 개발은 페라리 책임 엔지니어였던 지오토 비짜리니(Giotto Bizzarrini)가 맡았습니다. 우선 고쳐야 할 건 디자인이었습니다. 250 GT는 이미 잘 달리는 스포츠카였지만, 갓 출시된 재규어의 신차(이자 그룹 3 라이벌), E-타입과 비교하면 공기역학 성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에 공기역학 전문가였던 비짜리니는 250 GT에도 비슷한 유선형 바디를 얹기로 합니다.
'250 GT 르망 베를리네타 스페리멘탈레'라는 긴 이름으로도 불리는 250 GTO의 첫 테스트카. |
비짜리니는 피사 대학교의 시설을 빌려 풍동 테스트를 진행하는 한편, 아예 자신의 자가용 250 GT를 유선형으로 개조해 도로와 트랙에서 테스트합니다. 섀시번호 #2643GT, '비짜리니의 못생긴 오리'라고도 불리는 이 테스트카에는 250 GTO와 비슷한 엔진과 차체 사양이 적용됐는데요.
비짜리니는 이 테스트카를 1961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까지 출전시키며 부족한 점을 면밀히 다듬었습니다. 특히 고속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드라이버의 지적에 앞부분을 더 날렵하게 다듬고 리어 스포일러를 추가해 신차의 디자인을 완성해 나갔죠.
250 GTO의 디자인을 완성한 세르지오 스칼리에티. 훗날 2+2 GT카 '612 스칼리에티'가 그의 이름에 헌정됩니다. |
하지만 완성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비짜리니를 비롯한 페라리 고위 임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엔초 페라리와의 갈등으로 집단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고, 프로젝트의 마무리는 당시 고작 27살이었던 신입 엔지니어 마우로 포르기에리(Mauro Forghieri)와 카로체리아 디자이너 세르지오 스칼리에티(Sergio Scaglietti)에게 맡겨졌습니다.
당시로선 프로젝트가 좌초될 수도 있었던 큰 위기였지만, 지금에 와선 250 GTO의 가치가 크게 오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결과적으로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 개발자였던 비짜리니와 아름다운 탄성곡선을 사용하던 스칼리에티가 협업한 세기의 합작품이 됐기 때문입니다.
GT 레이스를 휩쓴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250 GTO는 최강의 로드카이자, 최강의 레이스카였습니다. |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차에는 250 GTO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GTO는 '그란 투리스모 오몰로가토(Gran Turismo Omologato)', 즉 호몰로게이션 그랜드 투어러라는 뜻인데요. 일반도로용 GT카이자 동시에 당장 레이스에 출전할 수 있는 레이스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250 GTO의 단면도. 250 GT에 바탕을 뒀지만, 철저히 레이스를 위해 세팅됐습니다. |
차의 구성은 그야말로 화려했습니다. 경량화된 튜뷸러 프레임 구조에 아름다운 유선형 알루미늄 바디가 얹혔고, 앞서 비짜리니가 테스트했던 드라이섬프 방식의 티포 168/62 3.0L V12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 즉 리터 당 100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냈습니다. 여기에 새로 개발된 5속 수동변속기가 맞물려, 당대 최강의 페라리 로드카 겸 레이스카로 완성됐습니다.
250 GTO는 1962년 세브링 12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처음으로 레이스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당시 드라이버들은 최상위 클래스에 출전하는 프로토타입 레이스카 250 테스타로사가 아닌 GT카 클래스에 출전한다는 사실을 불쾌해 했지만, 하위 클래스였음에도 테스타로사의 뒤를 바짝 쫓아 종합 2위, 클래스 1위로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250 GTO의 성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질주 중인 섀시번호 #3647GT. 60년대 초 GT카 레이스는 250 GTO의 독무대였습니다. |
250 GTO는 이후 3년 간 전 세계 그룹 3 레이스를 휩쓸고 다닙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재규어나 애스턴마틴, 쉘비 코브라 등은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고, 250 GTO들끼리 포디움 쟁탈전을 벌이는 게 일상이었죠. 1967년 모든 차량이 그룹 3 레이스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250 GTO가 거머쥔 우승 트로피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섀시번호 #3413GT. 1962년 생산됐지만 시리즈 II의 바디킷으로 컨버전됐습니다. |
1962년부터 2년 간 250 GTO는 총 33대 생산됐습니다. 1964년에는 새로운 전면 디자인과 몇몇 개선사양이 적용된 '시리즈 II'가 3대 만들어졌고, 400 슈퍼아메리카의 4.0L 엔진이 얹힌 스페셜 모델, '330 GTO'도 3대 제작됐습니다. 이렇게 3년 간 총 36대(330 GTO 포함 시 39대)의 생산을 끝으로 250 GTO는 단종됩니다.
그런데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뭔가 이상한 점을 찾으셨나요? 바로 생산대수죠. 분명 그룹 3는 12개월 간 100대 이상 생산된 차만 출전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36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250 GTO가 레이스에 나갈 수 있었을까요?
250 GTO의 호몰로게이션에 관해선 루머가 무성했지만, 사실 오해에서 비롯된 낭설입니다. |
이 때문에 엔초 페라리가 FIA를 속이려고 일부러 250 GTO의 차대번호를 중구난방으로 찍어냈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이는 규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낭설입니다. 당시 그룹 3 호몰로게이션 규정은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고, 250 GTO는 그저 원판인 250 GT SWB의 파생 모델 정도로 간주됐습니다. 250 GT SWB는 이미 1960년부터 호몰로게이션을 충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250 GTO는 그 인증을 바탕으로 레이스에 출전할 수 있었던 거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가 된 이유
레이스에서 은퇴한 250 GTO의 가격은 이내 무섭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
레이스에서 은퇴한 250 GTO는 잠시 가격이 떨어지나 싶더니, 이내 소장가치를 인정받고 가격이 치솟습니다. 역사적 거장들이 참여한 개발 과정, 완벽에 가까운 유선형 디자인, 페라리의 브랜드 가치와 모터스포츠에서의 눈부신 활약, 희소성 높지만 거래가 충분히 이뤄질 만한 생산대수 등 여러 요소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250 GTO의 가격은 '역주행'을 시작하는데요.
250 GTO의 가격은 12년 만에 신차 가격을 넘어섰고, 그로부터 12년 뒤에는 40배 더 올랐습니다. |
1962년 출시 당시 250 GTO의 신차 가격은 1만 8,500달러였습니다. 그리고 1974년 2만 8,000달러에 거래되면서 12년 만에 신차 가격을 넘어섭니다. 불과 4년 뒤인 1978년에는 5배 가량 뛴 12만 5,000달러, 또 8년 뒤인 1986년에는 8배 오른 100만 달러에 거래됩니다.
가격은 더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1989년에는 처음으로 1,000만 달러에 거래됐고, 90년대 한때 시세가 진정됐다가 2004년 이후에는 1,000만 달러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30여 년 전에 100억 원 넘는 가치를 인정 받은 거죠.
앞서 소개했던 섀시번호 #3413GT.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556억 원에 낙찰된 주인공입니다. |
2013년에는 5,200만 달러(한화 약 597억 원)에 개인 거래되며 역대 최고가 자동차 거래 기록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본햄즈 경매에서 3,811만 달러(한화 약 438억 원)에 낙찰돼 역대 최고가 자동차 경매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이 깨지는 데에는 4년 밖에 안 걸렸죠. 2018년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4,840만 달러(한화 약 556억 원)에 낙찰돼 경매 신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개인 거래에서는 자그마치 7,000만 달러(한화 약 805억 원)에 팔리며 기록을 경신합니다.
전 세계의 250 GTO들은 10년마다 모여 기념행사를 여는데, 가격을 생각하고 이 사진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죠. |
이처럼 250 GTO는 몇 년 째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로 군림 중입니다. 마치 반 세기 전 경주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카 시장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이죠. 엄청난 가격만큼 차주들도 대단해서, 전 세계의 대부호와 재벌들이 소유주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소유하고 있던 걸로 알려집니다.
250 GTO에서 시작된 페라리 슈퍼카 계보는 288 GTO를 거쳐 오늘날 라페라리로 이어집니다. |
'레이스를 위한 호몰로게이션 GT카'라는 250 GTO의 개발 이념은 1984년 그룹 B 출전을 위해 탄생했던 슈퍼카 288 GTO가 계승합니다. 또 페라리의 창업 40주년 한정판 F40이 그 후계자라 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오늘날 라페라리로 이어지는 페라리 한정판 슈퍼카 계보의 시작이 바로 250 GTO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로 여길 수 있겠지만, 250 GTO의 가격표에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습니다. |
누군가는 오래된 차에 붙은 수백억 원의 가격표가 부자들의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50 GTO가 이렇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건 그 안에 담긴 페라리와 자동차 산업, 모터스포츠 역사가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미권에 비하자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올드카와 클래식카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요.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250 GTO같은 매력적인 클래식카들이 활발히 거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